지난 초파일에 그 정도의 소득을 거두고 돌아온 뒤 올해 봄 <간월산 산책> 에세이 연재를 올리려니 그 내용이 참으로 특이하고 재미있긴 하지만 뭔가 좀 미진한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음력으로 윤사월 초파일(양력 5월 29일로 쇠는 초파일)에 다시 아내와 함께 용화사를 찾기로 했습니다.
일단 늘 궁금했던 황금빛 그 금동불의 사진을 찍고 나서 불제자라기보다는 독성(獨聖, 그러니까 독불장군)에 가까운 저는 옛날 어느 스님이 '불제자나 절식구가 될 팔자가 아니니 어쨌거나 한 100곳 이상의 절이나 암자의 산신각에 참배하면 큰 출세는 아니더라도 무난한 생애를 보낼 것이라'는 말씀대로 우선 산신각을 찾아 참배키로 했습니다.
그래서 법당 뒤쪽을 둘러보니 지은 지는 얼마 안 되지만 굵고 오래 된 싸리나무 원통기둥에 얹힌 단정한 연목(椽木)사이에 황토를 이개 넣어 고색창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북극전(北極殿)이라는 조그만 전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절에 다니며 산신각, 용왕각, 삼성각, 독성각, 조사전들 별별 전작을 다 보아도 북극전이라는 전각은 처음이라 이게 북극성을 기리는 건지 뭔지 궁금했지만 수많은 신도들과 축등과 음식에 둘러싸여 한창 바쁜 스님께 물어볼 입장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도 보통 산신각과 다름없이 차를 달이는 동자(童子)옆에 호랑이를 꿇어앉힌 신선(산신)의 탱화 앞에 공손히 절을 하고 나오니 마음이 한결 상쾌했습니다.
이 아무튼 사투리로 걸가, 표준말로 개울가라는 뜻의 천전(川前)리란 마을 이름처럼 산이나 바위에 기댈 곳이 없어 평평한 평지에 산신각을 짓기가 좀 뭣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일단은 아내가 있는 식탁으로 돌아가 맛있게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났을 때 마침 옆자리에 팔순도 훨씬 넘은 두 할머니가 이미 공양과 후식인 과일과 떡까지 다 먹고 식혜까지 마신 뒤 천천히 솜사탕을 핥아 먹는 걸 보며
'옳다구나! 저 할머니들은 뭔가 알 거야.'
싶은 생각에
“할머니들 이 마을에 사세요?”
“그럼. 그러니까 이 마실 절에 왔지.”
“혹시 제 처 이모두 김필한 씨라고 아는지요?”
“알지. 하룡이 아부지 김필한 씨, 자전거 타고 경로당에 잘 갔다 와서 갑자기 죽은 지 한 5년이 됐나?”
“그럼 우리 처이모도 알지요?”
“알지. 그 왈바리(성격이 괄괄한 사람) 필란이할매.”
“알고 말고. 요새는 통 못 만나지만 다음 주에 경로당 문 열면 날마다 볼 걸.”
두 노파의 다발총 같은 이야기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용화사 부처 속에 돌부처 미륵이 들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들었어. 그런데 우리가 열일곱쯤 이 마을로 시집올 땐 어느날 갑자기 걸(개울)에서 부처가 솟아올랐다고 하더구먼.”
그렇구나! 조선시절 가렴주구의 원인이 된 미륵불이 조선말이나 일제 때 어느 홍수에 강바닥에 묻혔다가 해방 후 어느 홍수에 다시 땅위로 솟은 거지.
어릴 때 강가마을 '버든, 버드나무가 많은 버드내란 뜻'에 살아 강바닥이 파이거나 매몰되고 물길이 바뀌는 걸 여러 번 목격한 경험에 할머니들의 나이 등을 따져 대충 1959년 사라호 태풍 때(61년 전이니까 80 넘은 할머니들의 나이하고도 대충 맞음)임을 짐작하고
“그래서 그 돌부처를 보았나요?”
“아니 우린 새색시 때라 빨래터 출입도 어려운 때라.”
“그래서요?”
“집집이 보리쌀을 모아서 조그만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하도 못살던 시절이라 쌀을 낸 집은 한 집도 없었다고 들었어.”
“그럼 그 돌부처가 저 새 부처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 맞을까요?”
“모르지. 우리 젊을 때 부처가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새 부처 뱃속에 들어갔다는 말도 있었어. 아무튼 오래된 돌부처의 공덕으로 이 용화사의 기도발이 억수로 세다고 하데.”
“아, 그렇군요. 할매 고맙심데이.”
하고 다시 곰곰이 그 전말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기구한 사연의 돌부처는 진작 어느 부잣집 정원의 장식용으로 이미 팔려나갔을 수도 있고 또 지금의 새 부처(금동불) 속에 들어있을 수도 있기는 한데 그러기에는 금동불이 너무 작아 보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또 다시 긴 상념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마을사람들이 나름대로 소원을 묵묵히 들어주며 때로 풀어주기도 하며 마을의 평안을 지키던 석불, 때로 백골징포의 장본이 되기도 했던 그 석불이 지금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만에 하나 한 사찰 또는 주지의 사유물처럼 으리으리하게 장식한 초현대식 금부처의 뱃속에 먹혀도 되는 것인지, 군청의 문화재담당은 알고나 있는지...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과연 그 석불을 어떤 모습일지, 그 석불이 띤 미소는 어떤 표정일까 오래오래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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