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아내의 꽃 다알리아

통산 1001호(2020.6.12)

이득수 승인 2020.06.12 06:48 | 최종 수정 2020.06.13 21:07 의견 0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달리아꽃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달리아꽃

5월말이 되자 우리 집 화단에 달리아(우리 어릴 때는 다알리아로 불렀음)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나팔꽃, 해바라기 등과 함께 달리아는 옛날 농촌화단이 대표적 꽃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구마처럼 커다란 뿌리를 겨울철에 보관하기가 힘들어 여간해선 구경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40대 중반을 넘어 <마흔일곱 이씨는>이라는 연작시에 매달리던 어느 날 여행길에서 새빨간 달리아를 보고 가슴이 찌르르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통 불타듯 붉은 선홍빛 꽃잎에 그 끄트머리만 눈부신 하얀 빛을 띠는 달리아는 초록색 선명한 이파리와의 대비로 매우 강렬한 느낌으로 명멸(明滅)해  바야흐로 마흔아홉 살 세상만사가 다 허전한 사내의 가슴을 레이저를 쏘듯 파고든 것이었지요. 그래서 즉흥적으로.
     
       다알리아        

누군가를 오랜 세월 사랑하기란
동그란 구근(球根) 하나 가슴에 심기.
달리아, 달리아, 다알리아.

기나긴 기다림이 봄을 앞질러
뾰족한 그리움이 지각(地殼) 허물어
조그만 떡잎 두 장 손을 비비면
아지랑이 스멀대고 빗방울 돋아
달리아 속잎 나며 꽃대 섭니다.

천둥이 격정(激情)으로 울부짖는 날
마침내 달리아 꽃망울 벌면
흰 꽃, 붉은 꽃, 붉은 꽃, 흰 꽃,
송이송이 달리아 요염합니다.

흰 점, 붉은 점, 붉은 점, 흰 점,
어질어질 달리아 황홀합니다.

시를 써나갔지만 겨우 8줄을 써놓고 그만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는 유복자로 태어나 천지강산을 떠돌다 늦게 결혼을 하고 7남매를 낳았지만 너무나 감성적인 아버님 슬하에 자라서인지 유독 애련한 연시를 많이 써 부산의 동료문인들로부터 연시전문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눈만 뜨면 너무나 아름다운 시골에서 자란 소년이라면 누구나 한 두 번 목덜미가 희고 볼이 붉은 소녀들에게 미혹되어 첫사랑을 느끼기 마련이고 성인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툴툴 털고 낯선 도시여자를 만나 삘기속 같은 아들딸을 낳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이 세상 모든 외로운 사내의 대표주자나 된 것처럼 오래오래 사랑 병을 앓아온 것입니다.

중년의 문인, 특히 시인들이 낙엽이 지는 가을밤 작은 술집에 모여 앉으면
 <무릇 시인으로 살아가는 자, 사내로서 술에 빠지지 않거나  사내에 빠져 실연의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여자는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라며 술 마실 핑계를 찾곤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내로서 저는 늘 술독에 빠진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나이 쉰이 다 되도록 줄기차게 연시(戀詩)를 쓰니 그 두 가지 <시인 병> 모두 앓은 셈입니다.

달리아꽃밭에서 아내 파우스티나)
달리아꽃밭에서 아내 파우스티나

그런 가운데서 날이 새면 자동인형처럼 출근을 하고 밤이 되면 또 기계처럼 술집에 앉으며 40대를 넘긴 저는 딸을 시집보내고 외손녀까지 본 쉰다섯쯤 여전히 미완으로 남았던 <달리아>시를 간신히 아래와 같이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도 달리아는 꿈을 꿉니다.
깜깜한 지심(地心)에서 설계한 슬픔,
그리움의 새끼를 잉태합니다.
누군가를 한 평생 그리워하는 그런 구근
또다시 싹틔우려고 갈수록 더 뾰족한 그리움으로,
흰 점, 붉은 점, 붉은 점, 흰 점, 가로 세로 빗금무늬, 방사선무늬,
알록달록 달리아 꿈을 꿉니다.

달리아 꽃이 제게 특별히 눈부시게 다가오는 것은 그 도도록하고 조밀한 꽃잎들이 가로로, 세로로, 또 빗금과 방사선으로 어질어질 시선을 흩뜨리며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리아 꽃을 한참 들여다보면 마치 어지러운 조명의 무대를 보는 것처럼 정신이 아뜩하며 그 꽃잎하나하나가 마치 텔레비전의 수만 개 화소(畫素)처럼 번뜩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근 20년이 흘러 오늘 유독 달리아를 좋아해 수십 종의 구근을 통신판매로 사다 심은 아내의 뜨락에서 달리아 꽃을 새삼 눈부시게 다가옵니다. 그 달리아들은 늦가을이 될 때까지 아내를 위한 거대한 꽃다발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썼던 연시의 주인공이나 모티브가 젊은 시절 마치 열차가 출발할 때 승강장에서 누군가에게 잠깐 손을 흔들던 여인처럼 짧게 스쳐간 불특정의 여인들이 아니라 40년도 훨씬 더 넘게 동고동락한 제 아내, 저와 함께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고 네 손녀의 조부모가 되어준 아내, 바로 그 사람이 지금 제 옆에 서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좀 늦게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나의 전부이며 운명임을 실감한 그 사람과 더불어 명촌리의 뜨락을 가꾸며 또 한동안 또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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