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34)바람의 영토5 - 「풀세이돈 어드벤처」

이득수 승인 2020.06.09 21:18 | 최종 수정 2020.06.09 21:38 의견 0
지난 4월의 강풍에 뒤집어진 비닐하우스(사진을 확대해서 보아야합니다.)
지난 4월의 강풍에 날려와 바들못에 뒤집어진 채 빠져 있는 비닐하우스 일부. [사진=이득수]

2014년 가을에 명촌리에 땅을 사 부지런히 집을 지어 이듬해 여름에 입주했으니 명촌리 사람이 된지도 얼추 5년이 됩니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산야에서 유년기를 보낸 만큼 그 동안 꾸준히 자연을 관찰하며 축복이랄까 이변이랄까, 아주 특별한 발견과 경험을 꽤나 했는데 그걸 열거하면 

1.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철새 '후투티'의 암수와 번식지를 발견한 일
2. 멸종위기 2급으로 어깨와 배의 주황색 무늬가 너무나 고운 육식 맹수 '담비'를 만난 일
3. 한국의 육식조류 중 가장 덩치는 작지만 기가 막힌 비행술이 있어 어리석은 까마귀나 까치, 비둘기나 어치, 직박구리에게 비행술을 시범보이며 유혹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놈을 잡아먹는 조그만 매 '새호리기'의 시험비행 먹이활동을 발견한 것
4. 청회색 날개와 꼬리깃이 길어 아주 우아하게 날아가는 귀부인 새 '물까치' 집단을 수시로 구경한 것
5. 간월산과 밝얼산 일대에 가득히 핀 송화가 바람이 적당하게 부는 어느 오후 일시에 송화가루를 바람에 발사하여 누런 구름이 피어오르는 장관(壯觀)을 발견한 일(이건 거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 한 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보내더라도 표지에 실릴 만한 일입니다.)

6. 너무나 아름답고 귀한 야생화 '용담'과 '각시붓꽃'을 발견한 일
7.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름조차 엉뚱한 들풀 '솜방망이꽃'의 너무나 황홀한 황금빛 자태를 만난 일 등입니다.

반면에 아주 기가 차고 황당한 일을 가끔 목격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 1월 말에 발견한 거대한 비닐하우스로 어디인지도 모르는 먼 곳에서 바람에 날려  바들못에 꺼꾸로 처박힌 장면입니다(사진과 함께 〈바람의 영토1〉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월 초에 포토 에세이에 올린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3개월 가까이 지난 15일경 바들못을 지나는데 세상에나 철골 무게가 적어도 1t도 더 나갈 그 비닐하우스가 이번에도 바람에 들려 한참 뒤의 못둑 아래에 발랑 배를 뒤집고 널브러진 것이었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어느 고장, 어느 마을 할 것 없이 그 지역의 산이나 골짜기의 이름을 딴 아주 강한 바람들이 있기 마련이라 영남알프스의 운문산을 넘어 오는 상북바람, 또는 명촌리의 바람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는데 올해는 유독 그 횡포가 심해 어찌 보면 시골살이의 가장 큰 공포(恐怖)의 대상인 것입니다.

지난 1월 어디선가 날아와 처박힌 거대한 비닐하우스
지난 1월 어디선가 날려와 바들못에 처박혀 있는 비닐하우스 일부. [사진=이득수]

강풍, 태풍, 해일, 용오름 등은 원래 바다가 그 주 무대로서 동양문화권에서는 강풍을 용왕님의 분노로 보고 어촌을 중심으로 용왕제, 풍어제를 지내며 숭상하지만 늘 평화롭고 고요한 초록들판 명촌리에 이 무슨 이변일까요?

그리스 신화(神話)에 보면 전(前)시대 식인거인(食人巨人)의 주신 '크로노스'의 세 아들 중 맏이인 제우스가 아비들의 형제를 제압하여 '주신(主神)'이 되고 그 아우 포세이돈이 바다와 풍랑과 바람을 관리하고 막내 플루톤이 명계(冥界), 즉 저승을 관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고요한 초록의 들판에 포세이돈이 나타날 일은 없을 터,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풀빛만 가득한 이곳에 어쩌면 포세이돈의 배다른(異腹) 동생 '풀세이돈'이 잠입한 것이 아닌지, 문득 아주 젊을 때 본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도 떠오르고 해서 명촌리의 강풍을 저 혼자라도 「풀세이돈 어드벤처」로 부르기로 하였답니다.
 
단지 한 줄기의 강한 바람이 아닌 우주의 분노랄까, 인간의 힘으로는 함부로 대적할 수 없는 대 자연의 위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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