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20)간월사 대웅전 금당터

이득수 승인 2020.05.15 21:18 | 최종 수정 2020.05.15 21:31 의견 0
사진1은 금당터지 축대
간월사 금당터. 가운데는 축대로 추정된다. [사진=이득수]

입구 여래좌상전을 돌아가면 뒤쪽으로 앞이 확 트이면서 나지막한 축대하나가 나타나는데 바로 간월사의 대웅전자리 금당(金堂, 금당은 아마도 대웅보전, 급부처가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란 뜻 같습니다.)터 입니다. 굳이 사진에 보이는 평면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3대 사찰 불보(佛寶) 통도사의 적멸보궁, 법보(法寶) 해인사, 승보(僧寶) 송광사의 대웅전에 비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로 큽니다. 

건립 당시가 선덕여왕 때라면 방관자 비슷하게 양다리를 걸친 고구려의 눈치를 흘낏거리며 신라와 백제가 대야성(지금 합천)을 중심으로 영호남의 곡창을 뺏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던 때라 이만한 불사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건 아마도 당시 철의 제국 가야를 흡수한 지 얼마 안 되는 부족국가 사로국(옛 서라벌)이 본격적인 고대국가 형태를 갖추며 옛 영토의 끝이자 점령지의 출발인 이 지점에 불국토를 상징하는 큰 절을 지은 것 같기고 하고요.

저는 풍수지리나 음양오행설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래된 절이나 성당, 크고 잘 장식된 묘지에 가면 공통적인 특징인 탁 트인 전망과 포근한 지력(地力)을 느낄 수 있는데 이곳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금당 터 뒤쪽으로 진산(鎭山)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라한 간월산의 능선과 천길바위가 이곳이 그야말로 봉황포란(鳳凰抱卵)(봉황이 알을 품는 듯)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구비구비 흘러내리는 꽃내(花川)가 저 아래 언양의 명산 봉꼴산과 옥산사이의 작괘천 좁은 계곡으로 스며드는 작천정의 아스라한 전망이 근래 온천이 개발되면서 들어선 모텔들로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점입니다. 그리고 맞은 편 광대고개를 너머 가는 완만한 언덕길옆에도 자꾸만 찻집과 모텔이 들어서는 것도 그렇고.

간월사 금당터 약도

 

석조여래좌상전을 돌아 금당터를 오르는 밋밋한 언덕에서 저 뒤쪽 금탕터 축대 위로 보이는 간월재와 간월산의 능선, 깎아지른 천길바위를 보면 이곳은 굳이 절터가 아니라도 금계포란 또는 봉황포란의 길지임을 느끼게 할 만큼 먼 산은 아스라하고 줄기줄기 산줄기는 오목하며 눈앞의 정경은 고즈넉이 온기가 풍깁니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솔숲에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면 그 속에는 호국불교 신라의 향기와 젊고 의욕에 넘치는 화랑들의 싱싱한 숨소리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땅이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마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아무튼 경치 하나만 절경이지 농토도 좁고 인구도 적은 이 외진 곳에 이만큼 큰 절이 있었다는 것은 나라에서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시 했다는 이야기가 되긴 하지만 언양읍에서 작천정을 너머 꽃내를 따라, 또 상북면에서 모래골과 강도고개를 넘어 수많은 신도들이 남부여대 쌀자루를 이고 지고 향과 꽃을 들고 긴 줄을 이어 넘어오던 모습이 연상 됩니다. 

문득 제 자신도 거기 남부여대(男負女戴)한 중생, 그 중에서도 머리가 허연 처사(處士)가 되어 자비와 은혜가 가득한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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