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18)지칭개, '나는 너를'

이득수 승인 2020.05.11 22:56 | 최종 수정 2020.05.11 23:14 의견 0
무리지어 핀 지칭개
무리지어 핀 지칭개

사진에 보이는 식물이 '지칭개'라는 야생화입니다. 산과 들에 흔하지만 별 특징이 없어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개의 조밀한 꽃송이 하나하나의 연한 자주 빛이 볼수록 매력이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 꽃의 아름다움은 너무 진한 원색이나 선홍색보다 분홍빛을 중심으로 약간 보랏빛을 띠면 신비감을 더하고 자주 빛을 띠면 선정적인 느낌을 일으키는데 그 대표가 아름답다 못해 요망하다는 복사꽃입니다. 저 지칭개처럼  자주 빛을 띤 엉겅퀴, 우엉, 오동나무 꽃에는 꼭 손톱보다도 더 큰 대추 벌이 윙윙거려 것으로 보아 특별한 향의 꿀이 있는 모양인가 봅니다.

이 지칭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강한 생명력입니다. 늦가을에  잎이 떨어지면 앉은자리에서 바로 납작한 잎을 피워 한겨울에도 초록색 잎을 줄기차게 펼칩니다. 그게 바로 가급적 바람을 덜 타고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한 자세로 그 모양이 마치 장미꽃 꽃송이 같아 로제타(Rosetta)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양력 2월 말쯤이면 아기 손바닥만 한 넓이에 냉이처럼 하얗고 긴 뿌리를 가진 이 지칭개, 사투리로 '청국씬냉이'는 이른 봄 곧 농사일에 투입될 소의 쇠죽솥에 넣어 삶아 먹이는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변신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농촌아이들은 봄이 되면 다들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저 청국씬냉이를 캐러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쓴냉이(씀바귀)처럼 사람은 먹을 수가 없어 청국(오랑캐)이라는 못마땅한 접두어를 붙여준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두 번째 사진을 보십시오. 어쩌다 하나씩 외톨이로 피는 '지칭개'는 목을 길게 뽑아 작은 꽃송이를 방사선형태로 넓게 펼쳐 얼핏 파리의 '에펠탑'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마초네 할배에게는 진작부터 '명촌리의 에펠탑'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어느 날 간월산 줄기 밝얼산 기슭에서 에필탑을 닮은 외톨이 지칭개를 찾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한 포기가 싹이 터 두어 뼘 자라 자주 빛 꽃을 피워 올렸는데 아뿔사, 뿌리에서 줄기까지 새까만 해충(害蟲) 비루가 먹어 전체가 비쩍 말라버렸습니다.

'지칭개'의 입장으로 보아 저 새까만 '비루, 일반적으로 개나 고양이등의 피부에 작은 기생충이 번져 얼룩덜룩 털이 빠지는 현상, 무, 배추나 채소에도 저렇게 작고 검은 비루가 생김'는 백척간두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지만 식물은 발이 없어 도망갈 수가 없으니 곧 다시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루'의 입장으로 보면 어떻게든 자기가 먹고살며 알을 낳아 번식할 숙주(宿主)식물 지칭개를 만나야 되는데 한해 내내 기다려 간신히 딱 한 포기 지칭개를 만났으니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는 입장입니다. 

 홀로 피어 비루먹은 지칭개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미워해도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증불별고(憎不別苦)의 부처님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마치 어쩌다 연(緣)이 닿아 결혼을 해 오롱조롱 아이들은 낳았으나 생각과 취향, 심지어 몸에서 나는 냄새까지 상극(相剋)이라 평생을 원수로 사는 부부처럼 죽어도 벗어날 수 없는 악연(惡緣)을 차마 버리거나 이별할 수 없는 경우, 그러니까 애달픈 노래 제목 '나는 너를'의 경우가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닭과 지네, 돼지와 새우처럼 절대로 공존할 수 없고 서로가 기어이 상대를 죽어야 하는 상극(相克)이 있는데 사람도 동료(同僚), 동업(同業)자, 동복(同腹)형제, 동지(同志)처럼 같을 동(同)자를 쓰면서도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마침내는 서로 원한을 품고 갈라서야만 하는 악연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쟁터의 적장(敵將)이나 링 위의 적수(敵手)처럼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고 그렇지 못 하면 자기가 죽어야 하는 모진 인연이 있는데 저 '지칭개'와 '비루'가 바로 그런 사이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카인'과 '아벨'은 동복형제이면서도 하나는 여호와의 선택을 받고 하나는 받지 못해 마침내 형이 동생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 '카인'으로 이 세상을 원죄(原罪)의 바탕색을 채워놓았고 게으르고 꾀 많은 아우 '야곱'은 속임수로 아비를 속여 형 '에서' 대신 상속자가 되기도 합니다.

또 삼국지를 보면 오(吳)의 맹장(猛將) 주유가 촉(蜀)의 모사(謀士) 제갈공명에게 판판이 속아 손해를 보자 그 죽음에 이르러 

“신이시여, 하늘아래 이 주유를 두고 어찌 또 제갈공명을 내어 저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입니까?”

하고 통탄한 적도 있답니다.

대중가요에도 이런 사연을 닮은 〈나는 너를〉이 제목이 되거나 가사가 되 노래가 많은데 우선  장현의 〈나는 너를〉의 가사를 보면
 
시냇물 흘러서 가면
넓은 바다 물이 되듯이
세월이 흘러 익어간 사랑
가슴 속에 메워 있었네.

그토록 믿어온 사랑
내 마음에 믿어온 사랑
지금은 모두 어리석음에
이제 너를 떠나간다네...

...모두 다 잊고 떠나가야지
보금자리 찾아가야지.

결국 그 못 이룰 사랑으로부터 떠나가려 하지만 미련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배호의 〈비내리는 명동거리〉를 보면

  ...
 나는 너를 사랑했다 이 순간까지 
 나는 너를 믿었다 잊지 못 해서
 외로운 가슴속에 비가 내린다.

죽도록 사랑하고 그 믿음을 버리지 못 했지만 끝끝내 어떤 긍정적 결말도 이루지 못 하고 외로운 가슴속에 비만 내리는 종말을 맞이하고 맙니다.

평리(平里) 선생

여러분, 부부는 전생에 가장 많은 포원(抱冤)을 진 앙숙끼리 이승에서 그 업장(業障)을 갚기 위해 만난다는 말이 있고 부모자식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도 시도 때도 없이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며 하다 못 해 바가지를 긁고 가정폭력을 일으킬 정도로 세상 누구보다 부부 간이 가장 많이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이랍니다. 또 살다 보면 내 어쩌다 저런 악연을 만났나 싶은 동료나, 친구, 이웃도 많고요.

여러분은 하루 몇 번이나 〈나는 너를〉을 되뇌며 살아가나요,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는 정말로 아무런 걸림 없는 배필(配匹)인가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랍니다.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이랍니다. 인간의 삶이, 생명의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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