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14)옥산(玉山)과 자수정동굴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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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6 21:46 | 최종 수정 2020.05.0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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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아마 '경주(慶州) 돌이면 다 옥돌이냐?' 라는 속담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겁니다. 서울사람들이 말하는 속담 속의 경주는 사실 70리 떨어진 언양을 지칭하는 말로 우리가 산책 중인 간월산의 맨 끄트머리인 작천정의 앞산, 조그만 옥산이 대한민국 자수정 생산량의 9할, 지구상의 모든 자수정의 8할 이상을 생산하는 산으로 이름마저 '옥산(玉山)'인 것입니다.
부산에서 고속도로나 국도로 서울방향으로 달리다 통도사 앞을 넘어서 11시 방향을 바라보면 나지막한 산봉우리 하나가 온통 달의 화산 분화구처럼 파헤쳐지고 거기에 엉뚱하게 골프연습장의 파란 펜스가 보이는데 그곳과 지금 '자수정 동굴나라 쥬라기공원' 자리가 바로 옛날 언양옥돌 자수정을 생산했던 광산자리입니다. 지금은 자수정동굴로 개발되어 그 안에 각종 전시장과 오락시설이 두루 갖추어진 동화(童話) 속 같은 놀이공원으로 개발되었지만.
저처럼 보릿고개에 유년기를 보낸 가난한 언양땅의 소년들에게 저 옥산은 잘 하면 일확천금을 하고 잘못 하면 패가망신을 하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 같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답니다. 그 이유는 군국주의의 일본이 반도침공을 위해 조선 땅을 탐낸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실질적인 이익, 그야말로 노다지인 평안도 은산광산을 비롯한 한국의 금, 은, 동, 철, 석탄에 중석으로 불리는 텅스텐에 이르도록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에 눈독을 들인 것이었지요.
또 보다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이권은 연평도의 조기, 울릉도의 오징어처럼 사철 싱싱한 은비늘이 번뜩이며 어족(魚族)이 넘치는 바다였고 일제가 민비시해, '을사늑약'등으로 우리나라를 조금씩 잠식할 때 해마다 8도(道)의 어업권 하나씩을 수탈하면서 마침내 지구에서 가장 큰 고래 흰수염고래와 사나운 범고래, 귀여운 돌고래가 날마다 회유하는 포경업의 낙원인 우리의 동해바다를 점령, 당시 유행하던 노르웨이식 포경법으로 울산의 방어진과 장생포 땅을 지구상 포경업의 메카로 발전시키면서 인근의 자수정광산 옥산 역시 놓치지 않고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옥산은 보탕바우로 나무하러 가는 가달고개의 일부일 따름이었는데 어느날 오갈 데 없이 몰락한 한 떠돌이 사내가 달랑 곡괭이 한 자루를 들고 당시 아무도 들어가지 않아 박쥐가 퍼덕거리는 폐 광산에 들어가 질 좋은 자수정을 한 자루나 캐나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곡괭이 한 자루를 둘러매고 폐 광산을 뒤지자 산주가 나타나 광산에 들어가 하루 동안 자수정을 캐는데 아주 헐값의 입산료를 받기 시작했고 소문을 들은 전국의 가난한 모험가, 몽상가들이 끝없이 몰려와 더러 부자가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득한 천장에서 폐쇄된 공간으로 떨어지며 높은 압력을 가하는 낙석(落石)에 죽거나 병신이 되곤 했답니다. 거기다 더욱 놀라운 일은 우리 마을의 친구 삼촌인 천만이 아재가 하룻밤에 자수정을 무려 세 자루나 캐 집 사고 논 사고 장가까지 들어 온 마을 사람들을 들뜨게 한 일도 있었답니다.
그 때 우리의 통학로인 35번 국도 남천내 공굴(콘크리트다리)가 끝나는 지점의 물문껄(홍수 때 읍으로 넘어오는 물을 막는 목재 수문(水門)거리)에서부터 4거리 차부 좌우까지 한 스무 곳의 자수정판매소가 들어서 전국의 보석상과 배불뚝이 부자들(당시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배가 나온 사람과 안경을 쓴 사람들은 일단 부자로 치부되었음)이 드나들어 한때 언양 땅에는 강아지도 수표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답니다.
그렇지만 옛날이나 지금도 늘 가난한 빈농집안인 저와는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황홀한 일확천금의 나라에서 제가 자라났다는 사실 하나만은 퍽 재미있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제 자식과 손녀들을 여러 번 자수정동굴에 구경을 보내면서 정작 저는 단 한 번도 그 곳에 가지를 않았답니다. 왜냐고요? 그 황홀한 일확천금의 공상(空想)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지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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