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13)등억온천단지의 명암

이득수 승인 2020.05.03 13:08 | 최종 수정 2020.05.06 22:05 의견 0
숲속에 잠겨 적막한 낮 풍경
숲속에 잠긴 등억온천단지. 낮에는 적막한 풍경이다. [사진=이득수]

작천정 안쪽에 깊숙이 숨겨진 '간월계곡'은 봄가을 한 해 두 번씩 소풍을 다닌 언양 출신들도 수정처럼 맑은 물이 맴도는 호박소와 끝없이 펼쳐진 반석만 알 뿐 저 위쪽에 깊디깊은 간월계곡이 있고 꽃내(화천)마을이 있다는 생각을 잘 못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는 부산에 가는 버스가 다니는 35번 국도변 옛날 덕천역이 있었던 수남부락에서 작천정 계곡 입구까지 이어지는 벚꽃터널(일제에 의해 역참제와 봉화제도를 철폐하고 35번 국도를 닦던 1890년대 일본인이 심은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당시 언양지방의 동학지도자 마산부락의 곽씨 성 가진 접주가 심은 것이라고 필자의 향리선배 김영호 선생님이 알려오셨습니다.)과 그 끝에 있는 날아갈 듯 아름다운 정자 작천정이 전부였지요.

들 가운데의 마을 '버드내'에 살아 저처럼 나무를 하러 다니는 사람을 빼고는 굳이 작천정지나 화천마을 지나 간월산 기슭을 찾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 어릴 때 기억으로 화천마을을 지나 간월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 왼쪽으로 겨우 주먹 크기의 조그만 재래종 배(씨앗부분이 너무 두꺼워 먹을 수 있는 부분은 겨우 1-2cm두께)가 심어진 배밭이 있고 그 속에 우뚝한 3층 석탑 하나가 보였는데 그게 바로 요즘의 등억온천단지와 간월사지였습니다. 
 
나무꾼들은 보통 작천정을 지나 화천뜰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지금 자수정동굴 방향의 가달고개를 한참 올라가다 오른 쪽 전방에 노출된 커다란 바위 '보탕바우, (길마를 푼 소를 쉬게 하는 나무꾼의 집결지 바탕)'에서 오른 쪽 넓은 골짜기인 '동자골'(그러니까 지금 등억온천단지 윗부분)에서 주로 잘 마른 솔가지나 생나무줄기인 물거리나 알차리라는 나무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보탕바우가 신불산 공룡능선의 시작지점이었습니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등억온천단지. 

그리고 간월사지 올라가는 3거리 위쪽은 입구에 민가가 한 둘 있는 안간월로 그 위에 한 번 들어가면 절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험한 계곡인 '저승골'이 있어 아무도 더 이상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그 숨겨진 비경 간월계곡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울산에 공단이 들어서고 주말마다 언양의 불고기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던 70년대 말에 이르면서 입니다. 당시 순진한 등억리와 언양사람들은 사람의 피부나 위장에 좋은 등억온천이 개발되면 피부병, 위장병에 다 좋은 엄청난 약수,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옛날 신혼여행지로 유명했던 온양온천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휴양도시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지요. 
 
그렇게 시작한 온천개발사업은 온천수의 분출량이 적어 몇 번이나 중단되기를 반복하며 근근이 완공을 했을 때 수십 군데 들어선 목욕시설을 갖춘 모텔이 저마다 100% 온천수를 자랑했지만 진짜 온천수를 사용하는 곳은 신불산온천을 비롯한 단 두 곳이었고 지금까지 대중탕으로 손님을 받는 곳도 단 두 곳뿐입니다.

처음 신불산온천이 문을 열었을 때 언양 촌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넓고 쾌적한 욕탕에 식당과 슈퍼까지 편의시설이 고루 갖추어지고 남탕에는 노천탕까지 있는 최신식 '신불산온천'에 열광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 넓은 주차장에 자동차가 가득하고 몇 백 간의 되는 옷장이 모자랄 정도에 때를 밀고 이발을 하는 사람이 줄을 서고, 하다 못 해 휴게실에 누워 잠을 자거나 맥반석계란을 사 먹는 자리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뿐, 나라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사람의 생활이 나아져 고기를 먹고 목욕을 하고 나이트클럽에서 낯선 남녀들이 춤을 추며 피로를 풀던 유흥의 시절이 닥치자 이 조그만 온천단지는 단번에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보다 시설이 크고 더 화려한 쇼가 벌어지고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창녕의 '부곡하와이'가 나타나면서 대부분의 욕객이 떠나자 등억온천단지는 졸지에 수많은 모텔들만 거느린 한적한 '모텔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옹(進翁) 시인

비록 지금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를 짓고 영화제를 열기는 하지만 그건 가을 한 철 잠깐이고 사시사철 밤만 되면 수많은 모텔의 붉고 푸른 간판만 반짝거리는 불야성, 아무 생산성이 없는 단순한 소비시설을 넘어 자꾸만 구약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성'이 연상되는 낯 뜨거운 골짜기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그 깊고 그윽한 계곡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온천은 인체에 좋은 미네랄이나 유익한 성분의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그런 대자연의 선물 같은 것이지만 현대의 온천이란 땅에서 솟아나는 물의 수온이 25도 이상만 되면 비록 구정물이 나와도 수질이나 약효와 관계없이 모두 온천(온천법에 의해서)이라 부른답니다. 따라서 예로부터 화산이 잦았던 반도, 지금도 거대한 화산대가 여럿 펼쳐진 우리나라는 군 단위마다 거의 모든 고장에 온천, 온정 등의 마을 이름이 있고 그런 지명의 땅을 파기만 하면 어느 정도 더운 물이 솟아나 바야흐로 온천공화국이 되다 못해 한 때 온천개발이 부동산투기와 사기의 키워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울산이 공업화가 되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으로 맨 먼저 영향을 받아 자연이 훼손되고 인심이 박해진 반촌 언양, 그 깊고 그윽한 간월계곡이 모텔로 불야성을 이룬 사실은 뭐라고 말할 수도 없이 고약한 일, 절로 “난감하네!” 소리가 튀어나올 일인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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