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 끝으로 스치는 바람이 사이다처럼 상쾌한 가을밤 제가 좋아하는 프로야구의 승패가 대충 가려진 9시를 지나 간혹 마초를 앞세우고 고래뜰로 산책을 나갈 때가 있습니다. 전에 여러 번 말씀드린 것과 같이 고래뜰에서 바라보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 아스라한 신불산 공룡능선의 칼바위와 오목한 간월재에서 이어지는 동그란 간월산의 정경은 어둑한 달빛 아래 더욱 신비감을 풍기면서 포근하게 길손을 반깁니다. 거기에다 귀뚜라미와 여치 같은 풀벌레가 울고 간혹 지렁이가 뚤뚤거리기도 하고요.
그 아늑하고 포근하다 못해 그윽한 가을밤을 문득 타닥타닥 총이라도 쏘아대는 소리와 함께 남쪽하늘이 환하게 밝아지며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울산의 대표적 축제인 <영남알프스 산악영화제>의 전야제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간월계곡은 본래 고요하고 청아한 계곡인데 문득 거뭇한 밤하늘을 찢으며 요란하게 폭죽을 터뜨려 고이 잠든 짐승들을 깨워야버리는 것입니다.
영화제가 어느 정도는 화려한 행사여야지만 그 본질은 영상미를 통하여 인간세상의 사랑과 서정을 찾아내는 일일진대 저렇게 소란을 피워야할까요? 아니면 사람들만 모이면 웃음띤 악수로 지지를 호소하는 현직 단체장이 뜬다고 공무원과 관변인사가 억지춘향으로 졸졸 따라다니고 일년에 단 한 번 서울에서 내려오는 축제위원장이 축사를 하는 그런 고답적(高踏的)인 행사가 목적인지 회의가 생깁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과 부천 등의 유명영화제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영화제가 벌어지는 간월폭포 아래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를 낮에 방문하면 우선 널찍한 주차장과 몇 개의 아담한 기념관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악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과 빨치산의 뼈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도 있고 울산지방의 몇 개의 폭포를 형상화한 조그만 소공원도 짜임새가 있습니다. 이 센터를 짓기 위해 울창한 숲을 베어내고 국제클레밍장 같은 생소한(그러니까 저 위에 공룡능선과 천길바위 다 두고) 인공시설을 만들어야 되는 건지 의심되지만 주말에 외지인을 끌어들이는 자체로는 꽤 유용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복합웰컴센터에서 저 앞쪽 오목한 간월재, 또는 신불산정상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 오목한 숲속의 비경 홍류폭포(간월폭포), 신불산 공룡능선과 칼바위, 신불평정의 억새와 철쭉단지 등 많은 볼거리가 있고 수많은 관광객이 모일 겁니다. 그러나 그 표면적 이유인 지역개발과 주민소득 증대의 반대급부, 저 푸르디 푸른 숲과 계곡의 훼손과 오염, 호젓한 등산로 낙동정맥의 번잡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 저는 신불산 정상에 대한 묘한 외경심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언양 사람들은 더 없이 헌걸차고 늠름한 신불산을 <큰산>이라 부르며 과히 그 정상을 범접(犯接)(오르지)하지 않습니다.
제 아니 쉰이 다 되어 부산의 산악회원들이랑 처음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신불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동이란! 비에 갇힌 구름 저 아래 보탕바우와 옥산을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조그맣게 보이는 제 생가 버든마을과 앞세메와 조그만 우리 집! 그만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일은 그 정상에는 마치 라마교나 티벳불교의 기도처처럼 가로로 한 4, 5미터 폭 1, 2미터 높이 2미터 정도의 비스듬한 돌탑이 있어 색색의 헝겊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헝겊조각은 멀리 망국 신라의 복원을 꿈꾸던 고려시절의 반란자, 임진왜란 때 단조성에 웅거하던 의병들, 일제암흑기 숯쟁이를 가장한 애국지사와 사상범, 한국전쟁 당시의 빨치산들이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이 이어지기를 갈구하며 돌을 쌓고 헝겊을 매단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듬해 다시 그 정상에 올랐을 때 등산로란 등산로엔 모두 목재의 계단을 설치하며 그 선인의 숨결이 가득한 돌담을 헐어버리고 동그랗고 반듯한 현대식 공작물을 볼링공모양의 탑(塔)으로 쌓아놓았던 것입니다. 자연이 훼손되든 ,역사와 전통이 무너지든, 이게 철이 없는 건지, 어리석은 건지, 그저 기가 막힐 뿐인데 거기 또 케이블카까지 다니고 수많은 인파가 모이면 그 선거중독자 정치꾼들이 또 무슨 일들을 벌일지...
옛사람들은 산에 오를 때 스스로 산을 올라 정상을 정복하는 등산(登山)이라고 하지 않고 그윽한 대자연에서 잠깐 초록빛 숲의 기운과 청아한 바람을 즐기며 계곡물에 가볍게 발을 씻는 세족(洗足)으로 만족하고 산에 들어가는 자체를 입산(入山)이라 불러 산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외경(畏敬)심을 표하며 늘 공손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심마니나 화전(火田)꾼, 숯쟁이처럼 산에 기대어 살지 않는 사람들이 늘 입산을 삼가듯이 체력과 시간이 다 충분한 사람이라면 조용히 산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넉넉한 품에서 호연기기를 키우고 거기에 오를 체력이 안 되는 사람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조용히 그 풍광을 즐길 일입니다.
굳이 자연을 오염시키고 소음으로 산짐승을 깨우고 반들반들하게 굳어지는 등산로와 계단으로 뱀과 지렁이와 곤충의 이동로가 끊기고 산란과 먹이의 제공자인 토종식물의 훼손으로 희귀한 나비나 새가 절멸하는 그런 사태도 예방해야 하고요.
아무튼 개발과 보존의 문제는 닭과 계란의 선후(先後)문제처럼 정답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 번 백 번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되어야 하며 되도록 원상이 보존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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