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12)꽃보다 새순2

이득수 승인 2020.04.27 20:41 | 최종 수정 2020.04.27 20:52 의견 0

 

너무나 밝고 투명한 어린 감나무 새순. [사진=이득수]

 꽃, 새, 나비, 무지개, 햇빛에 비친 아침이슬, 새털구름과 노을, 초승달과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의 은빛 비늘!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시골생활을 하면서 접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아름답나요? 또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혹시 빠진 것은 없는가요?

명화(名畫)나 명곡(名曲)은 아는 만큼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처럼 시골 살아도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애착, 또 조그만 변화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심미안(審美眼)이 있어야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는데 무슨 기술이나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닐 터, 단지 눈앞의 자연을 얼마나 찬찬히 살피고 은은한 색깔, 옅은 향기와 함께 가끔 등골을 찌르르하게 흘러내리는 전류처럼 강렬한 자연에의 끌림도 감지(感知)하고 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위에 열거한 통상적인 아름다움 외에 특별히 고와하는 것은 바로 방금 움트는 <새싹>과 그 새싹이 노란 <새순>이 되어 조금씩 햇빛을 받아 연한 연두 빛에서 연한 초록 새순으로 변해 마침내 온 들판과 산하를 신록(新綠)으로 물들이는 마침내 녹음(綠陰)으로 침잠하는 과정 전체를 좋아하는데 그 핵심은 역시 <새싹과 새순>입니다. 

모든 동물의 새끼, 심지어 맹수(猛獸)인 사자는 물론 둔하고 미련하다는 식탐대장 돼지도 새끼일 때는 귀엽다고 하듯 식물세계의 모든 새순도 모두 다 아름답습니다. 화단에서 피어나는 일반적인 화초는 자세히 관찰하면 살며시 흙바닥을 찢고 마치 칼끝 같은 뾰족한 삼각형으로 올라와 이내 진한 초록색으로 변하며 또 하나 삼각형의 칼끝을 내밀려 키를 키웁니다. 

그런가 하면 무, 배추 같은 떡잎식물은 볼펜심 같은 뾰족한 새순 하나가 올라와 금방 양쪽으로 갈라져 두개의 동그란 떡잎이 되고 다시 두 장의 속잎이 나오는데 그 본 잎이 4-6장으로 제법 식물의 형태를 갖추면 떡잎은 제 소임을 다하고 누렇게 말라 떨어집니다. 또 못자리의 볍씨를 살펴보면 하얗고 가는 실 같은 것이 씨눈에서 나와 금방 노랑, 연두, 초록 순으로 싱싱하게 변해갑니다.

그 모든 새순 중에선 제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상도에선 돼지풀이나 고마이대라고 부르는 <고마리>라는 잡초로 주로 작은 도랑가나 언덕 밑의 습기가 많고 축축한 땅에서 잘 자라는데 이른 봄 아직 아무 생명체도 없는 시커먼 흙을 뚫고 올라온 바늘 촉 같은 새순이 금방 동그랗고 귀여운 새싹 둘을 대칭형으로 매다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생긴 모습이 우리가 음악시간에 배운 짝짝이(캐츠다네츠)와 같아 금방 ‘새파란 수평선 흰 구름 나르는...’의 <진주 조개잡이> 한 곡이 흘러나올 것만 같습니다. 

갯버들 새순 [사진=이득수]

또 이른 봄 시골의 대밭이나 담장 아래 피는 노란 꽃나무 죽단화(매화꽃처럼 다섯 개 꽃잎을 잘 갖추면 황매화, 풀방구리처럼 둘둘 말린 재래종은 죽단화)의 새순은 그 생김새가 꼭 조그만 종이비행기 같아 방금 한 떼의 제비새끼가 나뭇가지를 박차며 포르르 날아오를 것 같은 귀여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제가 좋아하는 새순은 봄볕이 따뜻한 날 이제 새싹에서 새순으로 변하며 조금씩 이파리를 펼치는 새순인데 연한 연두 빛이 너무나 투명해 손을 대면 손가락은 물론 가슴에 까지 노랗게 물들 것만 같습니다. 제가 감히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새순은 모과나무, 감나무, 다래나무, 팔손이나무, 석류나무 등입니다.
 
굳이 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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