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6)그림 같은 작천정

이득수 승인 2020.04.23 17:08 | 최종 수정 2020.04.23 17:36 의견 0
작천정 앞 계곡의 통바위 반석. 위쪽 매끈한 바위에 새겨진 한시가 보인다.

옛 속담에 물 좋고 정자(亭子) 좋은 곳이 잘 없다고 하는데 이곳 작천정은 드물게 산과 계곡, 반석과 정자가 잘 어우러진 그림 같은 정자라 언뜻 옛 선비들이 신선을 꿈꾸던 신선의 나라(仙界)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정자의 특징을 꼽으라면 산과 물, 전망이 좋아 선비들의 시상이 떠오를 만한 곳으로 어느 정자나 지방의 선비들이 시회를 열어 뽑힌 시나 당시의 실권자인 수령방백의 시를 새긴 액자를 걸어두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거기다 물이 맑으면서도 반석과 바위가 많은 이곳은 특히 시를 새기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이라 주변의 바위는 물론 가끔은 계곡물에 잠기기도 하는 호박소 주위의 바위에 까지 수많은 시와 이름을 새겨 과히 시의 천국이라 할 만합니다.  그 중에서도 정자의 전면기둥인 4개의 주련(住蓮)에 새겨진 시가 특히 운치가 깊어 음미(吟味)할수록 시흥이 일어날 만합니다.
  
 서툰 솜씨지만 이를 번역해보기로 하겠습니다.

 楊柳春雨池塘
 柱花秋月樓臺
 家在淵明記裡
 身居摩詰圖中

 양류춘우지당
 주화추월누대
 가재연명기리
 신거마힐도중

 봄비에 못가의 버들이 우거지고
 가을 달 정자 기둥에 그림처럼 비치면
 내 마음 도연명의 글(桃花源記)속에 자리 잡고
 몸은 이미 왕유의 그림 속에 있는구나.

 

아래 정자사진의 오른쪽부터
작천정. 네 개의 기둥에 한시가 구절이 붙어있다.

#1. 연명기(淵明記) : 연명(淵明)은 남북조 시대의 낭만시인 도잠(陶潛)의 호. 오두미(다섯 말의 쌀)를 위해 벼슬에 묶일 수 없다며 평택현령의 인끈을 풀어 던지고 귀거래사를 외치며 전원으로 귀가, 국화와 술로 평생을 마침. 무릉도원을 꿈꾸는 <도화원기(桃花源記)>와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잘 알려진 당시(唐詩)의 선구자. 즉 연명기(淵明記)는 도연명의 도화원기

#2. 마힐도(摩詰圖) : 마힐은 성당(盛唐)시절의 시인이자 화가 겸 관리인 왕유(王維)의 호. 고아한 성품으로 시와 그림, 불도와 신선도에 두루 능하며 고적한 산수를 잘 그려 <시중유화, 화중유시>, 즉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풍경시와 산수화의 대가를 이루었으나 황제의 미움을 받아 허리가 잘리는 요참(腰斬)형으로 죽음. 즉 마힐도(摩詰圖)는 왕유의 신선도(神仙圖).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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