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4)간월계곡과 작괘천(酌掛川)

이득수 승인 2020.04.20 17:47 | 최종 수정 2020.04.20 22:33 의견 0
언양 작천정 앞 작괘천. 너른 바위는 통바위 반석으로 불린다. [사진=이득수]

언양읍 쯤에서 바라보면 옆의 신불산이 웅장한 남성미가 넘치는데 비해 간월산은 매우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성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여성적 산 아래로 흐르는 계곡이 한 때 전국에서도 맑은 물로 다섯 손가락에 드는(1980년대 조선일보 기획보도) 간월계곡의 '작괘천'입니다.

작괘천의 발원지(發源地)는 해발 1,000미터에 근접하는 간월산 서봉과 배내봉 사이의 깊고 으슥한 계곡 '저승골'입니다. 경사가 심하고 돌부리가 험해 누구나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오리지널 언양 촌놈을 자처하는 저도 배내봉에 올랐을 때 한 번 도전하려 했으나 급경사의 계곡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를 보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직업 자체가 프로 등산가가 아닌 만큼 어쨌거나 목숨을 부지해야 제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발원한 작괘천의 원래 이름이 '꽃내'입니다. 해마다 간월산 기슭에 가득히 핀 야생화와 돌복숭, 돌배나무 꽃들의 낙화가 바람에 날려 흐르는 물에 떠가는 개울이란 뜻의 '화천(花川)'으로 불렸고 마을 이름 역시 꽃내, 즉 화천마을입니다.  

그래서 우뚝한 '천길바위'와 아름다운 '꽃내'를 보며 자란 화천마을의 총각은 사내답고 처녀는 미인이 많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답니다(지금 법정 지명 등억(登億)리는 오르고 또 오르고 그러니까 이 고장 사투리로 억수로 올라간다는 말이니 그 또한 묘미가 있습니다.). 

언양군 상북면 등억리 안간월에서 본 저승골.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 정도로 깊다고 해서 붙여진 저승골은 작괘천의 발원지이다.  

그 '꽃내'가 흘러내려 드넓은 반석이 광장처럼 펼쳐지고 호박소가 있어 산뜻하고 아름다운 정자 '작천정'이 들어선 곳에서부터는 작괘천으로 불립니다. 작괘(酌卦)의 뜻은 수정처럼 맑은 물이 뱅뱅 도는 호박소에 옛 선비들이 술잔을 띄우고 시회(詩會)를 열었다는 퍽 낭만적인 이야기에서 따온 것 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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