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7)무릉도원의 입구에서

포토 에세이 938, 일흔 살의 본날들 38

이득수 승인 2020.04.14 22:43 | 최종 수정 2020.04.15 00:59 의견 0
여기가 무릉도원 입구인가!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돌 복숭아 꽃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복사꽃입니다. 우리 집이나 과수원에는 물론 들메라는 산에 지천으로 피어 하나같이 다 곱지만 제가 이 꽃을 으뜸으로 치는 이유는 계곡에 자리 잡아 <이 강산낙화유수 흐르는 물에>를 넘어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입구>인 것 같아서입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복사꽃 옆의 철제구조물이 홍수시의 계곡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넓은 웅덩이에 모였다 <마치 세월처럼> 자연스럽게 천천히 넘게 하는 세월(歲月)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월이 시간의 마디인 <해와 달>이란 뜻이며 그 탈 많은 <세월호>의 선명(船名)이기도 합니다. 

마침 맞은 편 언덕의 하얀 산 벚꽃의 흰 꽃이 사과 꽃을 닮아 최무룡의 <외나무다리>에 나오는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내 고향>을 찍으려다 자꾸만 화면에 나타나는 마초를 쫓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오자마자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저는 분신(分身)인 마초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도 없고 마초가 없는 천국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처럼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모쪼록 이상적인 국가는 그 크기가 밤에 이웃마을의 개짓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작고 다정해야 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의 천국엔 복사꽃뿐 아니라 애견 마초도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사꽃은 지고... 

※며칠이 지나 귀촌해서 사귄 후리마을의 백성봉 교장선생님을 놉 해서 마초와 같이 있는 사진을 찍으러 갔습니다만 비바람에 이미 복사꽃이 지고 없었습니다. 속인(俗人)이 도원(桃源)에 이른다는 건 역시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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