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8)숲에서 보는 마을 사진
포토 에세이 939, 일흔 살의 봄날들 39
이득수
승인
2020.04.15 19:03 | 최종 수정 2020.04.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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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경사진 산길을 오르다 숨이 가빠 멈추면서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아랫마을과 들판 건너 강과 국도 건너편 고헌산의 기슭이 모자이크처럼 언뜻언뜻 보이는데 평소 개활지에서 훤하게 보던 모습보다는 훨씬 살갑고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하산 길의 언덕 위에서 아까 보던 들판과 강 건너 마을을 보면 덩그러니 다가오는 고헌산과 국도를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새삼 낯설고 써늘한 풍경으로 보입니다.
왜 그럴까 싶어 다시 오솔길로 들어가 얼기설기한 몇 개의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을 보면 다시 포근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며 강 건너 초등학교와 면사무소가 있는 국도 앞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마치 성냥곽으로 만든 장난감처럼 다시 다정해지기 시작합니다. 나뭇잎 사이로 얼른얼른 비치는 마을 우물가에 몸피가 넉넉한 여인이 하나 물동이를 이고 가고 볼우물이 예쁜 소녀나 귀엽게 생긴 강아지도 따라갈 것 같고...
환하게 펼쳐진 광경, 똑 바로 보이는 풍경보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들판과 마을이 훨씬 정겹게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자신이 그런 마을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오르고 누군가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고 간간 기명통에 수저와 밥그릇을 헹구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마을, 나와 같이 사춘기를 보낸 친구들이나 건너 마을의 목덜미가 하얀 소녀를 다시 만날 것만 같은 느낌에 그런 것일까요?
덧없이 늘어가는 나이, 갑갑한 세월이 아쉬울 때 문득 어느 산기슭의 나뭇가지나 이파리 사이로 강 건너 마을을 이윽히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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