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4)진짜 야생화 각시붓꽃

 포토 에세이 935, 일흔 살의 봄날들34 

이득수 승인 2020.04.12 00:46 | 최종 수정 2020.04.14 00:33 의견 0
각시붓꽃

저는 국민학교시절부터 소를 먹이고 소똥을 줍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무쇠밥솥, 양은국솥, 당꾸(탱크)쇠죽속 아궁이 세 구멍의 나무를 당(當)하러 갈비와 까둥구리(전라도 말로 고주백이)를 캐러 다니며 매일 접하는 야생화에 한 번도 관심을 가질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촌놈으로 산 게 밑천이 되어 40이 넘어 시를 쓰면서 의식의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보랏빛 도라지꽃, 보랏빛의 용담, 또 황갈색의 산나리꽃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저도 몰래 슬그머니 꺼내 쓰는 자신을 발견하곤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위 사진의 각시붓꽃은 귀촌한 제가 등산길의 무덤가에서 발견하고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홀딱 빠져 새삼 다시 야생화를 좋아하게 된 꽃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꽃과 풀을 찍어 포토 에세이를 올리는 동기가 된 의미 있는 꽃입니다. 

3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 외진 오솔길이나 무덤가 잔디밭에 아주 나지막이 숨어 피는데 모든 색상 중에서 가장 신비한 보랏빛에다 호젓하고 산뜻한 맛이 더해 모든 야생화의 으뜸이란 생각이 듭니다.  

평리(平里) 선생

사족(蛇足)을 하나 붙인다면 40대 젊은 사무관시절 한 번은 상관으로부터 야생화학습원을 만들자는 제의(사실상 지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야생화란 보고 싶은 사람이 제 발로 산야로 찾아가서 구경하는 거지 굳이 멸종위기 고산식물·습지식물을 도심에 옮겨와 말려 죽이면 안 된다고 반대했습니다. 

대신 관내 구덕산의 저수지에 붙은 가까운 산기슭에 몇 백 평 울타리를 치고 부레옥잠, 물억새에서 굴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대표적 자생식물에 대한 분포도와 안내판만 세우자고 제안했다가 엄청 욕을 먹었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고집불통으로 낙인(烙印)이 찍히고 야생화화단사업은 불발되었답니다. 지금도 그 소신은 여전하고.

 미세먼지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19에 포박(捕縛)된 이 갑갑한 봄에 저 신비한 각시붓꽃을 보면서 한숨 돌리시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