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 : 봄날은 간다 - 백설희가 간다
본지에 포토에세이 '명촌리 일기'와 '일흔 한 살의 동화'를 연재하시던 이득수 시인께서 5일 새벽 별세하셨습니다.
본지는 이득수 선생님의 문학혼을 기리기 위해 지난 5년간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쓰신 포토에세이 유작을 연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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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5 14:33 | 최종 수정 2021.05.0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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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0대 젊은이들은 <봄날이 간다>라는 노래가 있는 줄 아무도 모를 게다. 40대가 되면 언젠가 들은 듯도 하며 50대가 되면 시집간 큰누님이나 친정어머니가 떠오르고 60, 70대가 되면 전주곡만 흘러나와도 가슴이 먹먹할 것이다.
그래 많이 가난했고 외로웠지. 삶은 날로 피폐하고 꿈은 오래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우리네 고모와 누님들은 낯선 곳 낯선 사내에게 시집을 가고 다시 눈빛에 서러움이 고인 딸들을 낳고...
보릿고개 시절보다 더 오래 전 왜정시대와 조선시대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도 이 땅의 여인네들은 늘 외롭고 고단했고 손수건에 눈물을 훔쳐야 살아있음을 실감했었지...
꽃피는 봄마다, 잎이 지는 가을마다 그 많은 여인네들의 서러움과 그리움, 회한과 절망이 반만년이나 맺혀 어느 봄날에 한 곡의 노래로 피어났으니 김소월의 넋두리와 탄식이 천의무봉의 시가 되듯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는 전주부터가 울렁거림이 되고 탄식이 되고 안타까움이 되고 서러움이 되고...
억장이 무너지는 외로움과 서러움, 끝없는 기다림 끝의 절망, 굳이 원망은 않지만 그래도 차마 잊을 수 없는 원(怨)과 한(恨)과 탄식(歎息), 전주곡하나에 천만가지 서러움이 솟아나는 노래, 그러나 밉다, 곱다, 원망스럽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소월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듯> 조용히 <봄날은 간다.>로 잦아지는 절절한 가락과 아련한 여운...
오붓한 마을의 샘터에 모여앉아 흰옷을 빨아 널며 서로 탄식과 위로를 나누며 이 땅에 살다간 가녀린 여인들, 모진 시집살이를 하거나 한 번쯤 소박을 당한 어미와 딸들로 이어진 반만년 묵은 한들이 모두 엉긴 것 같은 깊고 깊은 슬픔들...
올해도 봄이 오는데, 백설희의 봄이 가는데 아아, 나는 올해도 백설희의 봄날을 앓고 있는데...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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