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92)세상만사 새옹지마3
말년일기 제1293호(2021.4.2)
이득수
승인
2021.03.31 17:16 | 최종 수정 2021.04.0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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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한 달에 두어 번 꼭 우리 집에 들르는데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더니 어느새 아내와 제 큰 누님의 모든 보험의 효율성을 따져 몇 개는 해약하고 또 꼭 필요한 몇 가지는 새로 가입해 마치 우리 집 보험관리자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제 포토에세이집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를 주니 또 너무 기뻐하며 사인을 받아가더니 사과인가 뭔 과일을 한 상자 보냈습니다. 또 올해 추석에는 제가 먹으라고 녹용제품 한 상자를 보내주었습니다. 제 딸 슬비보다 여남은 살이 적은 막내딸이 하나 생긴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살이가 참 표한 것이 그 엉뚱한 사건으로 우리는 보험료라는 망외의 소득을 제법 올렸습니다. 사고 한 달이 훨씬 지나 은미양이 말한 지급기간이 지난 것 같아 보험회사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조만간 찾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더니 또 한동안 소식이 없어 어느 날 제가 전화를 걸어
“예, 어르신 워낙 사고건수가 많고 바쁘다보니...”
하고 얼버무리는 것을
“지금 상담원 이름이 누구라고 하셨죠?”
해서 이름을 받아 적은 뒤
“박선생, 당신 회사는 보험지급대상이 만약 시골사람이나 노인이면 우물쭈물 시간만 끌다 대충 합의보라는 지침이 있나요?”
“아, 아닙니다.”
“내가 행정기관에서 수십 년 감사업무와 민원업무를 봐서 아는데 이런 사고는 그 경우에 따라 건별 처리기한과 처리 매뉴얼이 있는 줄 아는데?” “예. 매, 매뉴얼!”
깜짝 놀라는 판에
“본 건 보험료 지급 건이 회사의 망침 즉 메뉴얼에 의한 것인지 담당지 박선생이 일부러 늦춘 것인지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내일 보험감독원으로 민원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 그의 상관이란 사람이 전화로 정중히 사과를 하더니
“사실 우리는 이렇게 큰 인명피해가 없는 경우 질질 끌다 1인당 한 50만 원씩 지급하는데 어르신께는 1인당 80만 원씩 16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하는 걸
“이건 이미 보험액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담당자가 해당 매뉴얼을 지켰는지 아닌지 준법여부가 문제이지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튿날 보험회사로 부터 지조지종을 들은 은미양이
“어르신, 1명당 200만 원씩 최종 400만 원이 나왔는데 이는 제가 보기에도 과분하게 많이 나온 금액입니다. 세상에 보험담당자에게 매뉴얼을 들먹여 꼼짝 못하게 하는 시골할아버지가 다 계시다니 말입니다.”
하고 깔깔 웃었습니다. 다음 물피, 즉 아직 세 자동차에 대한 피해보상도 단 60만 원을 준다는 걸 조금 항의를 했더니 인적피해담당자와 상의를 했는지 단번에 최고의 액수라면서 200만 원을 지급해 졸지에 600만 원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러 가다가 죽을 번은 했지만 비싼 주사 <옵띠브>의 두 달 치를 번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부지불식간에 벌어전 일종의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지불한 옵띠브의 약효가 없어 이제 저는 <카보진티납>이라는 최후의 신약을 먹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리 어떤 처방도 없지만 다행히 병세자체는 조금 누그러진 것 같은데 함암제의 부작용이 심해 손발가락이 헤어지고 숨이 가쁘고 늘 어지러운데다 식욕이 없어 밥그릇을 대하면 진땀부터가 납니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또 올해 한해를 살아 어느 듯 법적 완치 만 5년을 맞게 되고 순간적인 교통사고로 저승문턱에도 갔다 오고 또 적잖은 보험료를 받아 병원비를 보태기도 했지만 약효가 없었으니 그 또 한 허무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인연 사고자와 피해자가 아닌 은미양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새로운 가족관계 하나가 탄생했으니 인생, 그것 참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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