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88) 꿈이여 다시 한 번
말년일기 제1289호(2021.3.29)
이득수
승인
2021.03.26 15:35 | 최종 수정 2021.03.3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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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2015년 늦가을 명촌별서의 건물을 짓고 급한 대로 입주는 했지만 대문과 울타리, 화단등 제대로 된 주택형태를 갖추지 못 하고 늘 일에 파묻힌 날 아직 6개월도 안 된 마초를 데리고 골안못을 돌다 문득 아스라이 눈앞을 막아서는 초강도 경사의 악산(惡山)봉우리를 뭣에 씌기라도 한 듯 갑자기 올라본 날에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다 시피 물론 아주 평온한 늦가을로 아직 병이 나지 않은 저는 아무 준비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중에 알기로 무슨 콧등으로 불리는 급경사 지름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한 절반쯤 지나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끊기고 여기저기 높이 3, 4미터의 병풍 같은 바위가 가로막아 이리저리 돌아돌아 가는데 기가 찬 건 당시 불과 한 5, 6개월된 어린 마초가 옛날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코로 킁킁 냄시를 맡으며 밝얼산 정상 738미터를 단번에 안내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제 아무리 사서삼경을 읽고 육두벼슬을 하는 자라도 야생에서는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보다도 그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불각(不覺)중에 병이 와 수술을 하고 복대를 맨 체 골안못을 돌던 이듬해 봄, 저는 휴대폰의 사진(당시의 낯선 등산객이 찍어준 것임)을 들여다보며 나 이제 금방이라도 몸이 좀 나아지면 이번에는 등산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대로 순정리 뒷길 정아바위를 돌아 옛 길천리와 배내리의 가장 빠를 지름길 (捷徑) <긴등길>을 올라갈 것이라 결심했고 가끔 농사일을 도와주러 우리 집에 오는 심명섭이란 농업학교 동창에게 이야기 하니 날씨만 좋으면 자신이 스스로 안내자 겸 보호자가 되어 잘 자란 마초의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4월 다시 제 암검사 사진이 좀 수상하다고 담당의사가 미간을 좁히더니 마침내 갈비뼈에 암이 전이 되었다고 해서 갈비뼈 3개를 적출하는 수술을 받고는 다시 오를 엄두를 내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끈질기고 모진 것이 인간의 꿈, 자신이 무언가 해보겠다는 그 희망인 모양으로 그 후 볓 번의 위기를 맞아 죽니사니 하는 판에도 저는 골안못에만 가면 저 밝얼산 정상을 오르는 꿈을 꾸었는데 그건 원래 제가 오리지널 시골출신으로 늘 화려한 도시를 동경하며 자란 점도 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때 너도 나도 유행처럼 부르짖었던 그 <꿈은 이루어진다는 주술, 그래서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그 마술이 이루어짐으로서 우리 한국인은 대부분 꿈의 중독자(中毒者)가 되기도 하도 한 듯이 무슨 일만 있으면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부르짖었고 저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투병기간이 길어지다 못 해 이제 5년이라는 방점 하나는 찍었지만 점점 여기저기가 불편하고 간단하게 한 30분 걷는 일도 힘이 들면서 부쩍 밝얼산에서 마조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를 되뇌다 어느 날 부턴가는 문득 흘러간 가수 현인의 <꿈이여 다시 한 번>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꿈, 그 참 아름답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런 다시 돌아가거나 이룰 수 없으면 더 아름답지요. 그래서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픔이 되고 그렇게 한(恨)이 되어버린 꿈들은 싸늘한 겨울하늘의 별이 되고...
아마도 이제 다시 저 밝을 산에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짤고 단순한 주문(呪文), 저는 아직 그 주문을 외우며 저 덩그런 밝얼산을 계속 바라볼 겁니다.
현인의 <꿈이여 다시 한 번>의 가사를 올립니다.
꿈이여 다시 한 번 / 조남사 작사, 이인권 작곡, 노래 현인
꿈이여 다시 한 번
백합꽃 향기 속에그리움 여울지어
하늘에 속삭이니일곱 빛깔 무지개가
목메어 우네꿈이여 다시 한 번
내 맘속에 피어라.꿈이여 다시 한 번
사랑의 가시밭을봄여름가을겨울
눈물로 다듬어서다시 만날 그날까지
기도 드리네꿈이여 다시 한 번
내 맘속에 피어라.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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