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현대의학의 모든 치료를 끊고 자유인이 되어 조금씩 몸을 추스르다보니 이제 재 몸속의 각 장기들이 저마다의 자유랄까 입장을 주장하며 더러 농성을 불려 병통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탈이 난 간을 선두로 위면 위, 장이면 장, 콩팥이면 콩팥, 그 조용하고 충직한 장기들이 무려 70년의 봉사와 노력 끝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오히려 이미 망가진 옆에 있는 장기의 역할을 맡아야 하니 얼마나 화가 뻗칠 일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 재채기가 나고 코가 막히는 일, 소화가 잘 안 되고 변비가 되는 일, 그러다 갑자기 급진좌파처럼 맹렬한 설사로 밀이붙이는 내 몸속의 반란군, 가끔 재 종아리에서 격렬하게 농성을 하는 혈행(血行)의 아우성에도 잠자코 귀를 기울여 아스피린 한 알을 먹습니다. 이제 제 몸은 누구나 자기의 불만을 터뜨리는 광화문광장이 되었지만 제겐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같은 대비책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모처럼 변비약의 효과를 보고 한결 몸이 가뿐하고 기분이 상쾌해진 저를 위해 아내가 신이 나서 쇠고기를 조금 굽고 재첩국에 미역무침으로 상을 차리다 간신히 구했다는 재래식 <돌김>을 구워 기쁜 마음으로 상에 앉으려는 저가
(...?)
어떤 알 수 없는 뱃속의 흐름, 먹기는커녕 내 몸의 모든 것을 뱉어낼 것 같은 느낌에 아랫배를 부여잡고 식탁에 앉으며 가장 만만한 재첩국에 밥을 서너 숟가락 떠서 먹고는
“미안해. 점심 때 많이 먹을 게.” 약 먹을 물그릇을 들고 일어나니
“...”
실망이 가득한 눈빛의 아내의 식사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제가 아침용 당뇨약과 진통제를 다 먹고 침대에 눕자 식탁을 팽개친체 거실바닥에 자리를 깔고 저와 나란히 누워 걱정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다
“거 봐. 아침마다 두 뺨의 홍조가 안 지워져.”
손으로 더듬어보는지라
“열은 없을 거야.” 급히 체온계를 가져와 36.2도를 확인하고 한숨을 돌렸습니다.
“미안해. 정성들인 음식을 잘 먹지 못 해서.”
“아니. 환자의 입맛을 맞추지 못해 내가 미안해.”
“아니야. 이렇게 힘든 나보다 옆에서 보는 당신이 더 힘들 거야.” “아니. 암만 그래도 아픈 환자, 당자가 더 괴롭지.” 그리고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
'오늘 따라 유난히 아들이 보고 싶다. 그 애를 마지막 본 것이 일 년도 훨씬 더 지났구나.' 하는 말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요즘 종편방송의 대세가 <트로트>라면 몇 년 전까지 한 동안은 <먹방>이 대세를 이루어 많이 먹고 맛있게 먹고 특별하게 먹고 좀 점잖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식(寄食)과 괴(怪)식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본래 무엇이든 먹어보려는 본능이 있어 아무리 거칠어도 먹고 몸에 해로워도 먹어 수많은 사람이 독으로 죽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독을 이겨낸 강한 종(種)의 동물이 되어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50년대 농촌에서 자란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거칠고 이상한 먹거리를 다 먹어본 사람입니다. 멋의 차이는 있지만 맛이 덜하다고 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먹어도 죽지 않는다면 그 모두가 다 소중한 자원이었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신(神)이자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거친 음식, 조식(粗食), 해로운 음식, 악식(惡食)에도 아주 익숙한 편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옆길로 샜습니다만 저는 참 식욕을 좋게 타고 난데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 취미가 많은 아내를 만나 참으로 맛있는 음식을, 그것도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많이 먹어 식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인생의 본체를 맛과 멋으로 나누고 누구는 맛에 열중해 요리사가 되니 이마가 벗어지고 허리가 굽어진 멋없는 사람이 되고 누구는 멋있는 사람이 되려고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해서 요즘 젊은 여성들은 거(拒)식증, 목구멍에서 음식을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풍성한 식욕, 특히 푸짐하고 맛깔난 안주를 좋아하던 저는 이제 자신의 가장 소중한 능력이자 자랑인 식복 즉, 맛에 대한 손상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뽈뽈 길 때부터 타작마당의 닭똥을 주워 먹고 자라면서 배탈 한 번 안 난 그 왕성한 생명력으로 언젠가 다시 식욕을 회복하고 밥그릇, 국그릇을 깨끗이 비워 설거지하는 아내가 기뻐할 날을 획책(劃策)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의 제목도 <맛의 상실>이 아닌 <맛의 손실>로 내 곧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닥치는 대로 잘 먹는 그 <식티>의 길로 들어서기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음식은 축복입니다. 모두들 푸짐한 맛의 하루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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