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81)내 평생의 고집과 후회 ②청백리도 아닌 것이

말년일기 제1282호(2021.3.22)

이득수 승인 2021.03.20 14:16 | 최종 수정 2021.03.23 13:38 의견 0
카드 한 장이면 무엇이나 가능한 세상, 제게도 무려 2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우리 자랄 때의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세대의 공동과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소설가의 꿈을 가진 야간대학생으로서 낯선 도시 부산에 진출한 저는 금방 가정교사자리를 구하든지 월부 책을 팔더라도 2학기의 학비를 버는 일에 지장이 없을 줄 알았지만 어림없는 일 마침내 그해 가을 다시 공무원으로 취직을 했고 박봉으로 학비도 대고 생활비도 있어야하니 매일 숙직실에 자면서 생활해도 늘 수중에 돈이 떨어져 삼순구식(三旬九食)이라는 말처럼 굶기도 꽤나 굶었읍니다.

스물다섯의 제대군인으로 다시 부산바닥에 버려진 저는 이게 그 힘겨운 고학을 포기하고 순하고 착한 아내를 얻어 두 아이를 낳아 그냥 건전한 생활인으로 살아야 했는데 아직도 단간 월셋방에 사는 저에게 연년생 다섯이 있는 세 째 매형이 소를 산다, 논을 주겠다고 속여 제 일 년 치 봉급을 가져가 술과 노름으로 없애는 바람에 저는 사십이 넘도록 셋방살이를 면치 못 했는데 그 안에 세 번째 아이가 전치태반이란 병에 걸린 아내와 사별할 위기를 맞기도 하고 몸이 약한 딸에게도 돈이 들어 우리 집은 늘 한 달, 한 달이 팍팍한 살림이었는데 가끔씩 업무로 정이든 통장이나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이 행사를 마치고 반주를 겸한 저녁을 먹으며 열심히만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 말을 하고 살 날이 온다면서 헤어질 때 사과 한 봉지나 쇠고기 몇 근을 끊어주어 집으로 가져가면 아내의 얼굴에 발갛게 떠오르는 부끄럼이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참 알 수 없는 일, 제가 서구청 공과금계장이란 한직에 있을 때 전임감사계장이 부정을 저질러 물러나자 가장 청렴한 6급 공무원을 물색하다 마침내 아직도 셋방살이를 하는 제가 졸지에 600명 공무원의 포도대장(捕盜大將)인 감사계장으로 발탁되었고 이후 그와 비슷한 이유로 부산항의 모든 선박의 세금을 다 거둔다는 황금방석 중구청의 세무과장과 서구청의 세무과장에 기획감사실장, 총무과장, 총무국장에 이르도록 연간 1천억이 넘은 예산을 주무르는 세입징수관, 예산담당과 지출관과 경리관을 지내는 약 10여 년간 저와 제 부하 중에서는 단 한명도 뇌물이나 독직(瀆職)사건이 없는 것은 제가 청렴하기 보다는 제 부하직원들이 참으로 애로사항이 많은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꿈에 어리던 목민관(牧民官), 남부민1동장이 되었을 때는 천마산꽃길조성, 산수도개발, 산토끼복원사업등 전국의 매스컴을 타는 스타동장이 되기도 했지만 산복도로 달동네 판잣집에 혼자 살아가는 수많은 할머니들, 돈도 가족도 없어 명절에 영감제사를 수십 년째 못 지낸다는 말을 듣고 저는 관할인 공동어시장주변 수많은 냉동어상과 청과시장회장을 만나 협조를 얻어 그 할머니들이 이번 명절에 영감제사를 한번 지내게 해주자며 생선과 과일을 동사무소마당에 가득히 찬조를 받아 동직원과 청년회, 부녀회원들이 모여 사내들은 꽁꽁언 생선박스리 생선을 께고 여자는 과일3종류와 생선5종류를 검은 봉투에 담아 집집이 배달해주었는데 그게 소문이 나 부산mbc의 <자갈치아지매>에도 여러 번 소개 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퇴근을 하니 고1 짜리 아들이 볼이 잔뜩 부어 자기는 우리아버지가 부산에서 제일 청렴한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선이 바리바리 뇌물로 들어오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 생선은 냉동어상 회장이 기왕이면 생선도가 동장님인 우리 동장님이 이번엔 비록 냉동어지만 아주 커다란 생선으로 제사를 한번 지내게 해주자고 저도 몰래 우리 집에 실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진2. 호의호식, 마초의 자존심 닭고기과자와 쇠고기 통조림
마초의 자존심인 닭고기과자와 쇠고기 통조림.

그리고 세무과장을 지내면서 부터 쭈욱 <공직자재산등록>을 해야 되었는데 명색 사무관이 너무 가진 게 없어 참으로 민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공아파트에 아반테중고승용차에 시민주 <부산은행주> 12주까지 있어 구색은 다 갖추었다고 담당직원들이 웃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살아온 보람이 있어 아내와 저는 마침애 아들과 딸을 취업이 아닌 적성을 살려 서울과 부산의 대학을 졸업시키고 사위와 며느리를 보아 명예퇴임을 하게 되었는데 퇴임사에서
“늘 박봉에 시달리며 아이들을 공부시키며 살아온 제가 결코 청백리하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저와 세무과와 감사실 등 금력과 권력부서에 오래 근무한 제 부하들이 금전문제로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이 공직을 마쳤으니 과히 탐관오리라는 오명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40년 긴 세월동안 단 한 번의 체임도 없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감사드립니다.” 하여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두 내외가 살아가기에 모자람이 없는 연금을 받아 마초의 간식까지 사 먹이며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맙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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