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78) 팬지꽃, 그리움의 마을에서 보내온 편지
말년일기 제1279호(2021.3.19)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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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8 16:36 | 최종 수정 2021.03.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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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오면 맨 먼저 팬지꽃이 이 도시에 진주(進駐)합니다. 길가에 놓인 화분과 가로화단은 물론 공원과 광장을 어김없이 점령하는 그 노란빛 선명한 꽃은 마치 나비가 날아가듯 붉은 빛 반점이나 갈색 점이 촘촘히 찍힌 날개(꽃잎)를 나풀거립니다.
그러나 팬지꽃 피는 초봄은 아직 너무 쌀쌀해서 찾아오는 벌, 나비도 없을 뿐더러 웅크린 도시인의 가슴에 솜구름 같은 희망이 일어 창공으로 펼쳐지기엔 시기상조의 꽃입니다.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은(春來不似春) 이 시기가 사람에 따라선 왠지 더 춥고 허전한, 그래서 일 년 중에 가장 심하게 외로움을 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 즈음 빈 골목길이나 후미진 공원을 걸을 때 뭔가 외로워지는 마음은 어느 듯 고향마을과 유년시절, 눈동자 해맑던 소녀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팬지꽃은 <그리움의 마을에서 보낸 편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그리움에 젖어보았습니까? 또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써보았습니까?
온혈동물인 인간은 심장의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쩌면 언제나 누군가를 그리워해야하는 숙명을 타고 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생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그리움이란 <산이라면 넘어가고 강이라면 건너가는> 그 옛날 백년설이란 가수가 불렀던 대중가요 <산 팔자 물 팔자>의 가사처럼 어떻게도 떨칠 수 없는 그런 무엇이며 아지랑이 아롱대면 현기증으로, 장대비 내리면 폭포수 되어 우리 곁에 다가오는 절대자입니다.
그리하여 불과 1,20년 전의 우리는 날마다 골목어귀 빨간 우체통에 누구에겐가 보낼 편지를 넣고 가슴마다 작은 우체함 하나 매달고 누군가가 보내줄 새알처럼 따뜻한 엽서 한 장을 기다리던 존재였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메일과 메시지에 포위당한 편지와 엽서와 우체통과 우편함이 모조리 절멸한 적막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혹시 아직도 가끔 편지를 쓰거나 투박한 관제엽서에 그립다는 말을 적어보는 분이 계십니까? 어쩌면 우리네 삶이란 엽서 한 장 크기의 꿈에 젖거나 우표 한 장 크기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그런 연연한 그리움이 바탕색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각자 마음속의 빨간 우체통과 동그란 우편함을 오래오래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새삼스럽겠지만 이 봄에 누구에겐가 편지 한 장을 써보지 않으시렵니까. 아니면 공원이나 광장의 팬지꽃을...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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