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74)꽃을 찾아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말년일기 제1275호(2021.3.15)

이득수 승인 2021.03.14 17:56 | 최종 수정 2021.05.01 21:11 의견 0
사진4. 마침내 찾아낸 참꽃(진달래)와 아내 파우스티나. 
아내 파우스니타가 마침내 찾아낸 참꽃(진달래) 

매일 오후 명촌리임도의 <늘뫼>에서 <새목등>까지 하늘이 가려져 햇빛이 부서져 들어오는 솔갈비 갈비가 노랗게 펼져진 황금카핏을 아내와 함께 걸은 지 한 열흘이 지나가 얼굴이 많이 밝아지며 오후가 되면 저 먼저 내게 산책을 조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황금솔잎에만 취해 침엽수림 위의 얼음처럼 깨끗한 하늘이나 짙은 숲의 가지사이로 저 멀리 산업단지공단의 얼룩얼룩한 지붕이나 양지바른 곳 마다 아늑히  자리 잡은 무덤들을 그냥 지나가더니 요즘은 이것저것 산책 중에 몇 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그걸 수긍하거나 소녀처럼 까르르 웃기도 합니다. 

오늘은 숲길의 노란 새순 하나를 잡고 

“여보, 이게 뭐지?”
“색깔이 연두 빛이 섞인 노랑 색인 것으로 보아 봄에 맨 처음 피는 생강꽃 꽃눈 같아. 강원도 지방에선 동백꽃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맞아. 그러고 보니 우리집 화단에는 벌써 꽃봉오리가 제법 통통하던데.”

하고 한참을 가다 

“요기 다닥다닥 붙은 눈은 버들강아지지.”

진달래와 파우스티나

모처럼 가슴을 쫙 폈지만

“미안하지만 돌 복숭아 꽃눈이야. 한 달만 되면 이 일대를 무릉도원으로 만들어주지.”
“그래. 그럼 올해는 모처럼 돌 복숭아를 따다 술이나 담궈 봐.”

하며 저를 보다 멈칫하는 걸 보고

“괜찮이 담기만 하면 누가 먹어도 꼭 같지.”

하면서 올해 봄에는 제가 제 작년에 <무릉도원의 입구>라고 포토에세이에 올린 골안못 딸기뜸 입구의 돌 복숭아가 만발한 사진과 <들뫼>의 넓고 화려하며 송이송이 요염해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로 구나 싶은 꽃 세상을 함께 찍어 포토에세이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걷다

“이 파란 이파리들은 눈에 익은 것인데.”
“맞아. 우리 집 화단에도 있는 인동초야.”
“그런데 왜 다래 순처럼 연하게 돋아나는 놈도 있고 초록색 넓은 이파리도 있는데?”
“연두 빛 새순은 겨울에 움을 틔워 조금 자란 것이고 초록색 넓은 이파리는 지난 가을에 낙엽으로 지기를 거부하고 그 추운 겨울을 간신히 넘기고 저렇게 허름한 모습으로 지친 거야.”
“맞아. 우리 영감처럼 잘도 겨울을 넘기지.” 

하고 오늘은 모처럼 둘 다 컨디션이 좋아 숲길 끝의 무덤에서 산허리를 감고 한참 더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외손녀 둘을 키우면서 <키즈 팡팡>이란 사이트에서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부부가 동시에 허밍으로
 

사진3. 한해 겨울을 견뎌낸 인동초와 새 인동초의 순
지난겨울을 견뎌낸 인동초(오른쪽 짙은 색)와 인동초의 새순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찾아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장단을 맞추는데 얼마 못 가 30도가 넘은 경사에서 숨이 차 소나무 등걸을 잡고 헥헥거리는 저를 비켜 몇 발을 더 가던 아내가

“야, 빨간 꽃! 여보 저게 참꽃이야? 진달래야?”

아내가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얼른 쫒아가 꽃가지 옆에 아내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지만 석양의 솔 그늘로 시꺼멓게 나와 <꽃을 든 여자>의 사진은 실패하고 그냥 참꽃만 다시 찍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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