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72) 원수여, 너를 찾아가는 쬐끄만 이 휴식1

말년일기 제1273호(2021.3.13)

이득수 승인 2021.03.12 13:41 | 최종 수정 2021.03.14 18:46 의견 0

제가 처음 간암수술을 받고 명촌리에 돌아왔을 때 가장 어려운 일이 밤에 잠이 드는 일인데 그건 어둡고 껌껌한 밤이 되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하나, 간암에 걸리면 5년을 생존할 확률이 단 9% 보험공단에서 안내가 왔는데 아무 준비도 없는 내가 어떻게 적군처럼 기습한 이 간암을 받아들여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는가, 평생 내가 이룬 일, 아직도 한창 써나가고 있는 내 일생의 과업인 대하소설 신불산, 나는 그 신불산을 완성하고 죽어갈 수가 있을까,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는 휴지 쪽이 되어 쓰레기와 함께 굴러다닐까...

번민이 끝이 없어 일부러 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당신, 잠이 안 와? 이 세상에 암환자가 당신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 우선 여유를 가져.”
“아, 알았어. 내 조금만 생각하게 당신 먼저 자.”
“아니, 응급실에서 RH-A 혈액을 못 구해 수술을 못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당신은 아들딸에게 유언도 다 하고.
“음, 그랬지.”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살아만 있는 것도 기적인 거야. 주종수 박사는 60대 후반에 그렇게 체력이 좋은 사람, 심지어 한 쪽 구석에 간암이 걸려 터져 수술을 해도 나머지 90% 이상의 간이 생생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하긴.”

기어이 저를 자리에 눕히고 자신도 먼저 잠이 든 듯 푸, 한숨을 내 뱉다 숨을 멈추고 일어나 앉아 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는 자는 척하면서도 방금 기침이나 숨통이 터질 것 같아 억지로 참다 아내가 다시 누우면 또 골똘히 미구에 닥칠 죽음의 공포에 빠지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불면의 연속으로 보내다 이러다 간암보다는 불면, 의사가 지어준 면역강화제, 아내가 큰돈을 들여 마련한 가리비탕과 첫물정구지의 효력마저 허사가 되고 금방 암체포가 전이가 되거나 재발이 되어 나는 배가 동산처럼 부르고 눈동자가 노래지는 황달(黃疸)이 오고 다음 얼굴이 숯빛으로 검어지며 복수를 빼내는 흑달(黑疸)이 와서 마침내 죽게 되고...

 사진1. 나의 회상 절대 1번 우리 아버지
 나의 회상 절대 1번 우리 아버지

그렇게 밤새 뒤채던 어느 새벽 문득 저와 같이 밭에 가던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쟁기를 지고 나는 소를 몰고 진장 밭에 가서 한 나절에 사래가 긴 400평 밭을 다 갈고 밭둑에 한창 피어나던 참꽃(진달래)를 한 움큼 따서 아주 조금 달고 시면서 그냥 싱그러운 바람과 봄 향기가 가득한 삘긴 꽃잎과 노란 수술을 씹으며 돌라오던 길....

그렇게 아버지와 지내던 시절의 이런저런 일들과 다정한 이야기와 돌아가시기 직전 물을 데워 아버지의 발을 씻겨주던 일...

이렇게 회상에 빠진 저는 거짓말처럼 깊은 잠에 빠진 모양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가

“당신, 어제 새벽에 귀신처럼 잘 자던데, 그러다가 단번에 병이 낫을 것 아냐?”

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다 이내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라 무릎을 쳤습니다. 오늘 저녁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잠이 들기로 하고 그날은 종일 어머니와 함께한 즐거운 일, 행복한 일을 떠올리다 잠자리에 들자말자 너무 쉽게 잠이 들었는데 아내가

“당신이 살기는 살 사람인가 봐. 그렇게 눕자말자 입을 헤 벌리고 잠이 들다니.”

했습니다. 그래서 제 3일째는 아내를 생각하며 잠이 들기로 하고 어디서 탁상달력을 하나 구해다 다음 날은 딸, 그 다음 날은 아들, 또 그 다음날은 아무 조건 없이 나만 보면 기분이 좋아 무언가를 주고 싶어 못 살던 큰누님 두째 누님을 적고 그 뒤로는 내게 거쳐간 소중한 인연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 동료와 선배를 적었는데 차마 이름을 못 적은 <그 사람>도 10 안에 포진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념을 다 지우고 아직도 기억에 남은 다면 쉬이 잊어지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사진2 처음 시작한 내게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
처음 시작한 내게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

그 뒤 한 사람씩 적어가는 고마운 사람, 다정한 사람이 점점 멀어져 어떤 부서와 함께 큰 프로젝터를 진행한 동료들을 차례로 적거나 초등학교 반창, 고등학교의 반창, 스물 명에 가까운 생질의 이름을 적다 아무래도 그 의미도 효과도 떨어져 이번에는 제 평생에 이상하게 사서건건 방해를 하고 태클을 걸던 사람들, 심지어 자신의 정치적 행보 민선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다 귀양살이를 한 저 같은 측근을 나중에 당선이 되고 재선이 되어 권력의 맛에 취하자 매 선거가 끝날 때마다 어떻게든 당선자의 측근이 되어 밤낮으로 졸졸 따라다니던 아부꾼들의 질시와 견제, 심지어 시인이라서 상관도 모르는 건방진 사람이라는 모함과 사사건건의 밀고에 마침내 나를 버리고 한 4년 모질게, 참으로 모질게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악덕과 핍박을 하며 시인의 영혼에 재를 뿌리는 김모구청장이 떠올라 그 이름을 적고 어디선가 읽은 미당의 시 

원수여, 너를 찾아가는 쬐끄만 이 휴식

구절을 수십 번이나 외우다 잠이 들었는데 한 동안의 그 모진 사람의 측근들, 시어머니보다 더 미운 시누이 같은 이름을 적고 이를 갈다 잠이 들기를 반복하며 한 6개월이 지나 마침내 이젠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고도 잠이 들 정도로 심리상태나 건강이 많이 안정되어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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