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촌리에 귀촌을 해서 깜짝 놀란 일 중의 하나가 주변에 뜻밖에도 재혼한 부부가 많은데 그 대부분이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시골의 전원주택을 짓거나 사서 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70대 초반의 사내와 보통 60대 중후반의 커플로 이루어지는데 같은 마을에서 식당이나 슈퍼를 하는 혼자 사는 부인에게 가게 손님으로 자주 들리는 영감님과 두 가정의 살림살이와 자녀문제까지 잘 알고 또 자녀들까지 서로 의논을 해 두 가정 네 자녀와 열 명 정도의 손자 등 근 20명의 대가족이 오손도손 잘도 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지인의 경우 벼농사, 밭농사에 소 키우기까지 억척이던 한 농부의 아내가 상당한 시골재산을 모아놓고 죽자 아직 70대 초반의 아버지를 위해 2남2녀의 자녀들이 적당한 새어머니 감을 찾았는데 이웃마을 친구어머니로 60대 중반의 깔끔하고 부지런하며 중학교도 나온 멋쟁이라 미리 계약을 하기로 결혼과 동시에 영감님이 부인의 두 자녀에게 엄마를 데려가는 인사비조로 몇 일정금액을 건네고 앞으로 영감님이 죽고나면 그간 동거한 연수(年數)에 따라 10년에 약 1억, 15년에 약 2억의 보상금을 정해놓았는데 지난해 영감님에게 폐암이 와서 얼마 후면 좋은 재혼사례와 뒤처리의 모범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매우 재미있는 케이스가 하나 있는데 살림이 넉넉한 대농가의 영감이 이웃마을의 점잖은 미망인을 알고 점을 찍어 말을 붙이기로
“내가 당신명의로 2억짜리 아파트 하나 사고 우리 둘이 연락이 될 때 밖에서 식사나 구경도 가지만 가끔은 거기서 커피나 라면도 끓여먹고...”
하고 제의해 마침내 가끔은 자고 올 정도로 발전했는데 그게 부러운 이웃사내들이 자신의 아내가 몸이 아프면
“당신이 죽으면 나도 현금 2억이 있어 아파트를 하나 사야 새 장가를 갈 수 있으니 현금 2억을 모으기 전엔 절대로 죽으면 안 돼.”
하고 못을 박는다는 농담이 언양 장터를 중심으로 번져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흔이 좀 넘은 제 막내누님의 지인하나는 문화회관에서 인상이 좋은 영감하나를 만나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가끔 만나 외식도 하고 구경도 하고 호시절을 보냈는데 어느 날 아침 영감님의 전화를 받고 콧소리를 팡팡 내며 애교를 한창 부리는 순간 마침 50대의 장남이 방에 들어와 들통이 난 후로는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어떤 경우에도 전화를 받지도 하지도 않고 심지어 두 집의 자녀들이 떼거리로 몰려 와 사귀라고 해도 꿈쩍을 않는 것이 부끄러움도 많지만 명예를 지키려는 마음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매우 안타까운 사례는 한 때 언양 장터를 풍미한 이야기로 읍에서 산 하나를 넘어 어느 마을에 키가 크고 인물이 멀쩡하고 솜씨가 좋아 농기계를 잘 다루며 벼농사, 밭농사에 소 키우기까지 잘해 홀아비형편에 자녀들의 김장은 물론 용돈까지 주는 알뜰한 영감님이 마침 산 너머 마을에 허리가 꼿꼿하고 인물이 훤한데다 집안도 편하고 많이 배우기까지 한 멋쟁이여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중간에 사람을 넣어 사귄지 한 1년이나 되어 이제 저 사람하고 살 생애 마지막 신혼집을 짓는다며 사방이 툭 트인 언덕위에 초록빛 2층집을 지어 준공을 며칠 앞둔 날 신이 나서 수억 원이 든 통장을 꺼내 보이며
“여기에 니 돈도 넣고 내 돈도 넣어 같이 여행도 다니고 1등육 소고기도 먹고...” 하며 신명을 내자
“아, 그러먼요.”
하고 맞장구를 치고 간 멋쟁이 할머니가 다시는 전화도 받지 않고 행방을 감추어 식음을 전폐한 아버지가 딱해 모인 자녀들이 그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여기에 니 돈 넣고 내 돈 넣고>라는 발언이 문제로 얼핏 생각하면 맞는 말 같지만 요즘 100% 영감님이 돈을 내어도 따라다니는 할머니가 잘 없는 판에 <여기에 니 돈 넣고 내 돈 넣고>라는 말 자체가 교묘하게 할머니의 돈을 자기 통장으로 흡수하려는 잔꾀로 탄로가 났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대농가에 종손인 이 할아버지는 총각 때 인물이 좋은 데다 대학을 다녀 시골의 모든 처녀들이 말만 붙여도 얼굴을 붉히고 시집오는 처녀가 살림을 좀 가지고 오는 것(엣날에는 전답과 하녀는 물론 오동나무 장롱과 수많은 귀금속까지) 익숙해 새 부인을 얻으면 당연히 부인의 재산도 제 것이 된다는 시대착오를 한 것이지요.
그래서 일대의 마을에서 귀공자대우를 받던 그 신수가 훤한 영감님은 천려일실(千慮一失), 단 한마디의 실수로 재혼은커녕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슬픈 소식인데 저 덩실한 초록색 2층집은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걱정이 태산이랍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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