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65)바람바람바람 ②실패한 민란과 전봉준의 눈빛

말년일기 제1266호(2021.3.6)

이득수 승인 2021.03.05 15:19 | 최종 수정 2021.03.08 00:47 의견 0
1894년 12월 체포되어 한성부로 압송되는 전봉준 (교자에 포박되어 앉아있는 이)
1894년 12월 체포되어 한성부로 압송되는 전봉준. 불꽃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이다.

전에 우리 인간이 살아감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눈을 맞추고 냄새에 취하여 저도 몰래 뿌리는 페르몬이란 바람이 좌우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한 무리의 부족이나 집단이 살아감에는 먹거리와 입을 거리와 놀 거리와 특히 사내가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 즉 바람의 입김에 달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구가족이 살아가는 이 거대한 지구의 지붕은 그 중심에 강이 흐르고 들판이 펼쳐진 것이 아니라 몽고사막과 모래언덕, 아라비아사막과 사우디사막과 칼라히리사막이 그 중심이자 지붕이 되고 말을 달리든 낙타를 타든 그 사막을 자장 잘 횡단하는 용감한 장사꾼이나 용사(勇士)에 의해 거대한 바람이 되어 동서남북을 횡행하며 세계사의 흐름을 이끄는 것이라는 설명도 드렸고 그 가운데에서 특히

0. 아마 편견도 없이 자연스런 민족 간의 혼혈을 통해 동서의 인종과 문화와 종교와 예술을 하나의 부드럽고 편리한 삶의 양식으로 통합하려다 너무 어려 병들어 죽은 저 마케도니아의 소년 황제 알렉산더
0. 당시의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마(騎馬)군단을 거느리고 콧대 높은 서양인을 단숨에 제압하고 방방곡곡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려 현생인류 10%이상의 유전자와 염색체를 점유한 징기스칸이 있고
0. 그 어떤 사례도 비교도 없이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속임수와 살륙(殺戮)의 티무르
0. 한고조의 흉노정벌에 밀려 유럽으로 진출해 전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고 동유럽과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원인(遠因)이 된 흉노 아틸라 등 

수많은 영웅과 악한들이 바람으로, 그것도 보통의 생명체들은 차마 눈도 못 뜨는 뜨겁고 사나운 모래바람으로 명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사의 가장 큰 흐름은 저 거대하고 거친 지표의 중심지 사막을 거쳐 가는 바람, 그 황막한 땅을 지배하는 자의 입김 같은 것이며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는 속담으로 수많은 사내와 왕국을 무너뜨린 절세미인들을 역사의 변수로 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모래바람에 비하면 전장(戰場)의 한 모퉁이에서 죽은 가장 늙은 병사의 콧김보다도 더 미약한 그저 심심한 자들의 이야기꺼리일 뿐입니다.

그럼 수많은 외침과 전쟁에 시달려온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비록 반만년의 긴 역사라 하여도 그 대부분은 기록보다는 전설에 가까운 신의 통치이야기고 삼국시대이후 비로서 전쟁다운 전쟁이 벌어지지만 그 규모가 작고 같은 민족간의 내전(內戰)이란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부여하기가 힘든데 조선시대에 와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커다란 두 위기와 외침이 있었고 온갖 굴욕을 참아가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한 조선에서 그래도 전쟁이 끝나면 수많은 공신이 책봉되어 도탄에 허덕이는 민생을 뒤도 돌아서지 않고 곧바로 착취했으니 그냥 비참하고 서글픈 역사일 뿐입니다.

사진2. 온 세상의 인류를 어떤 이념의 억압도 없이 단 안 갈래로 묶으려고 애를 썼던 마케도니아의 소년왕 알렉산더 이미지.)
온 세상의 인류를 어떤 이념의 억압도 없이 단 한 갈래로 묶으려고 애썼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사학가도 철학가도 인류학자도 아닌 한갓 시골선비인 마초할배가 보기에 우리나라 이 좁은 반도에서도 조선말에 와서 비로소 두 번의 바람, 사람이 나라의 근본이요 주역이라는 사상, 그래서 그 주역인 사람은 모두가 하나로 자랑스럽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랑, 저 사하라나 몽고사막에 수천 년 불어도던 그 바람과 말발자국소리와 무명병사의 함성 같은 변화, 3천년 된 모순 주자학과 양반을 불태우려는 커다란 바람이 있었으니 그 첫 번째가 함경도을 휩쓴 홍경래의 난이며 두 번  째가 바로 동학란, 바로 녹두장군이 일으킨 갑오농민전쟁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홍경래의 난>을 살펴보면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사신과 물화가 들어오는 평안도는 나름 선비문화가 발달한 개화된 땅에다 골짝골짝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제 나름대로 한 글을 하고, 한 칼을 하고, 한 힘을 쓰고 한 마디를 하는 장한(壯漢)들이 많은 고장이라 이조말의 끝없는 당파싸움과 세도정치의 탐학에 지친 그 <숲속의 사내>들이 떨치고 일어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또 그 평안도는 산이 높고 숲도 짙으니 바람 역시 끈질기고도 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사신이 드나드는 선진지에 만주와 개성의 상인들이 연결되는 장사꾼의 땅이기도 한 이 희대의 민중저항의 땅에는 첫째 인구나 장정이 너무 적고 고을고을 웅거한 협객(俠客)들의 연락망이 쉽지 않은 데다 한성의 강력한 정복으로 끝내 저 아득한 산능선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겨울만 되면 빨간 산불로 타오르는 그런 민중의 눈빛과 함성으로 사라지고 말았겠지요.

이에 비하면 가도가도 붉은 땅 전라도의 구비구비 김제, 고부, 고창, 영광으로 흘러내린 이 황토땅의 민란은 우선 경주 용담골의 신인(神人) 수운 최재우의 이념이자 깃발인 <후천개벽>과 <인내천>, 곧 사람이 하늘이고 밥이 사람이라는 정신적 무장을 한데다가 가도 가도 밋밋한 야산인 전라도 땅에서 마치 들불이 번지듯이 가는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우우 함성을 일으키며 번지다 가끔 강풍이 불면 저승보다 더 황홀한 불꽃을 일으켰지요.

그렇지만 금수강산 반도 삼천리의 이 땅은 불행하게도 하나의 혁명이 성공하기에, 즉 민중의 꿈과 함성이 하늘에 닿고 궁중을 넘기에는 너무 좁은 땅이라 대부분의 혁명은 관군에 의해 무너지기 마련인데 이 나라 최후의 민란이자 민중의 함성인 동학란도 마침내 무력한 정부 어리석은 왕에 의해 비롯된 청과 일의 개입으로 5천년 민초의 꿈과 혁명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전쟁과 혁명과 정변이 있었고 그 대부분이 사막을 깨우던 바람이나 초원을 쳐들어가든 들불처럼 꺼지고 마는 것이지만  필자는 감히 지금껏 이 땅에서 벌어진 어떠한 혁명이나 항거보다도 또 세상의 지붕이자 중원이 된 그 넓디넓은 사막을 거쳐 간 그 수많은 낙타나 말발자국과 그 정치세력보다도 우리의 동학란(東學亂)(갑오농민전챙)은 가장 목마른 자의 아우성이오, 가장 비참한 자의 몸부림이었으며 마지막엔 그 모든 꿈이 사라진 고요, 허무와 외로움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혹시 부하의 배신에 의해 관군에 체포되어 가마위에 포박되어 압송되는 전봉준의 사진을 본 기억이 있습니까? 망해버린 전쟁보다 더 피폐한 입성과 머리채, 그리도 마지막 순간까지 후천개벽의 꿈, 인내천의 염원을 버리지 않으려고 꽉 다문 입술과 불빛이 이글거리는 눈동자...
 
저는 이 세상의 어떤 혁명이나 염원보다도 더 강렬한 바람, 울고 싶고 몸부림치고 싶도록 절실한 바람(望)과 실패와 좌절과... 그런 전봉준의 눈에는 전라도 땅 무덤가를 스쳐 비호처럼 타오르던 들불의 불꽃과 연기가 있고 말과 낙타와 대군을 휘몰아치던 정복자들의 함성, 그 함성이 문득 하루아침에 수포가 된 절망과 쓸쓸함 가장 처절한 염원이 있는 것입니다.

전라도 고부 땅의 땅딸막한 접장 전봉준, 그의 꿈이 아무리 원대하고 절실했던 그는 이제 한갓 실패한 역도(逆徒)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그 호랑이처럼 이글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외로움과 절망이 교차된 그 눈빛은 이 세상 누구도 다시 지을 수 없고 이 세상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거대한 바람과 불꽃인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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