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60) 언양장터의 3·1만세운동

말년일기 제1261회(2021.3.1)

이득수 승인 2021.02.28 15:13 | 최종 수정 2021.03.02 11:34 의견 0
 언양장터 3.1 만세운동 기념 행진
 언양장터 3.1 만세운동 기념 행진

오늘이 제102주년 삼일절입니다. 군국주의(軍國主義)적 침략과 폭압적 지배에 혈안이 된 일경의 총칼 앞에 아무런 무장도 없는 흰옷 입은 우리의 백성들이 반만년 역사의 조선 땅, 대한제국이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자주국임을 선포하는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참석한 모든 군중이 하나가 되어 만세를 부르며 어떤 무력행위도 없이 인류평화를 제창한 세계사에서도 참 특별한 독립운동입니다.

우리에게 국가란 마치 물고기에게 강물, 파랑새에게 하늘처럼 그 생존의 근원이며 무대가 되는데 평화시절이 이미 70년이나 흘러버린 지금세대는 온갖 현대문명의 편리함과 화려함, 넘치는 풍요와 사치에 빠져 우리가 자라던 시절처럼 애국애족과 반공 등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힘듭니다. 하루하루 무지하게 재미있는 게임과 끝없이 이어지는 향기로운 먹거리와 자극적인 공연과 음악이 생활화된 그들은 이제 18개월로 줄어든 병역, 국방의 의무마저 귀찮아 하고 있으니 이미 제대한 지 50년이 가까운 늙은 병사로서 마초할배도 참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아무튼 우리 어릴 적은 3.1절이나 광복절이 닥치면 먼저 학교에서 해당기념일의 노래를 배우고 국경일이라 학교를 안 가는 당일아침 대문 앞에 태극기를 다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평소 명촌리의 사계나 늙은 시인의 세상살이나 독백으로 채워오던 이득수의 <일흔한 살의 동화(童話)>가 문득 오늘 하루 3.1만세운동을 다루는 것은 제가 아무리 늙고 병들었지만 마초할배 역시 백의민족의 한 사람으로 겨레와 조국의 앞날을 늘 걱정하는 한 사람의 민초(民草)이자 백성(百姓)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고장 언양읍, 특히 언양 장터에는 그 해 어떤 만세운동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니 기미년 4월 2일 당시로서는 넓은 들을 가진 상북들의 중심곡창으로서 면사무소와 지서가 소재하고 학교와 교회 천주교의 공소와 유교의 향교까지 있던 상북면 길천리 후리마을의 경주 이씨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선비들이 뜻을 모아 서울의 <독립선언문>을 대량입수하고 각 면별로 책임자를 지정해 자연스럽게 인원동원이 가능한 언양 장날인 4월 2일 정오를 기하여 당시 좁은 구 장터를 버리고 소전까지 갖춘 넓은 새 시장으로 옮긴 언양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일 어느 성급한 장꾼 하나가 약속시간 보다 훨씬 일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너무나 감격해 목이 막혀 꺽꺽 하는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수많은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장터 한가운데서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자 구름처럼 모린 군중을 몇 명 안 되는 일본순사가 어쩌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군중 속의 일부 사내들이

“왜놈은 물러가라!”
“쪽바리는 물러가라!”

소리치는 바람이 군중이 일렁이기 시작해 마침 군중속의 한 처녀를 집적이는 일본순사를 

“순사가 칼로 처녀를 찌른다.”
“왜놈순사를 죽여라!” 하며 아우성을 지르자 오히려 일본순사가 본대가 있는 옛 언양국민학교 쪽으로 후퇴하고 군중이 뒤를 밀고 나가 지금의 영화루에 이르자 마침내 왜병이 발포함으로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수많은 애국지사가 투옥되어 옥사하거나 긴 영어생활을 하게 되고 또 왜경을 피해 오래 고향을 떠나 만주를 비롯한 천지간을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언양읍지>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 <언양장터의 만세운동>은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고 만세운동의 주동세력인 길천리의 선비세력을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가 총탄에 희생이 되고 형옥에 시달려 목숨을 잃고 천지간을 떠돌면 피난한 이야기가 아주 알뜰해 만약 마초할배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언양장터의 만세운동>하나만으로도 한 500페이지의 의연한 장편소설이 탄생할 것도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아침 다들 태극기를 달았는지요? 그 수많은 애국지사와 선열의 희생으로 경제대국을 이루어 이만큼 잘 사는 현대인들은 이제 자신의 청춘을 즐기기에 걸리적거린다고 이 땅을 이어갈 후손(後孫), 아이마저 낳지 않으려는 시대, 너무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젊은 세대의 무심한 행동양식을 바라보며 조용히 2019년 4월 2일 <언양장터만세운동>을 복원한 참석자들의 행진사진을 올립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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