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4)

벌써 8.15 광복절이 지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농사꾼에게 광복절을 또 다른 의미가 있으니 광복절이 지난 일주일 뒤가 처서가 되는데 처서가 되면 김장 무를 심어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열흘 뒤에 김장배추와 시래기용무를 심는데 채소를 심을 밭을 고르던 영순씨가 집 앞이 너무 어수선하다고 하는 바람에 화단공사를 시작해 둘 다 마무리가 되지 않고 집안 전체가 온통 정신이 없는 것이었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배를 채워야겠다며 냄비에 물을 올리고 끓이기 시작하는데 금찬씨가 나타나

“야야, 어젯밤에는 어데서 잤노?”

“중남에 있는 친구집서요.”

“아침 안 묵었나? 얼굴이 와 그러노?”

“야. 라면 끓인다 아이요?”

“그러나? 물 좀 더 부어라. 나도 하나 끓이 도.”

“와? 아침 안 자싰능교?”

“혼자 묵을라카이 밥맛도 없고 찬물에 말아 서너 숟가락 뜨다가 말았다.”

“그래도 밥은 지 때 챙기묵어야지. 나 많은 사람이 밥 심으로 사는데.”
“혼자 묵는데 무슨 맛이 있겠노? 그렇다고 정지일 손 놓은 지 10년도 되는 내가 반찬을 맨들 수도 없고.”

하며 당연한 듯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동생 또식씨의 건축잡부를 그만 둔 장남 일식씨는 주유소알바를 나가고 주로 노동자들을 상대로 조그만 밥집을 하는 며느리 천집사와 울산의 양식집에 다니는 요리사 장손 천태가 아침에 나가면 군에서 제대한지 일 년이 넘도록 대학교복학도 하지 않고 취직도 하지 않은 둘째 손자 만태는 하루 종일 제 방에서 무얼 하는지 웬만해선 나오는 법이 없다가 남들이 다 자거나 집안이 텅 빌 때 주방에 나와 배를 채우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그 때 그 때 식당에서 사용하는 메뉴로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와 어묵 탕, 잡채, 시금치나 콩나물무침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고 나가지만 얼굴과 몸매가 다 홀쭉하고 물체가 가볍고 인사성이 좋은 며느리는 덩치에 비해 엄청나게 손이 커서 국이든 나물이든 밥통에 밥이든 언제나 그득그득 채워놓는데 나이 들고 식욕도 떨어지는 금찬씨에겐 우선 그 양에 주눅이 들어 도무지 먹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 만태란 놈은 언제 밥을 먹소?”

박씨네 가족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리가 짧고 어깨가 떡 벌어진 땅딸보 형에 검고 넓은 얼굴도 사내답기는 하지만 여리거나 순한 맛이 거의 없는 그 아이는 어린이와 강아지 외에는 별로 신경 쓰는 일이 없고 부모나 할머니가

“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노?”

물으면

“생각 중입니다.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그면 또 며칠간 가족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어쩌다 저 혼자 주방에서 밥을 먹다 밭에 갔던 금찬씨가 들어오면

“할머니, 이리 오세요. 밥 챙겨드릴 게요.”

하고 식사를 챙기는데 보기보단 손끝이 야무져 제 어미 천집사의 음식보다도 먹기가 났다고 했다.

“희한하제? 너거 자영 박수진이가 정지 일을 잘 하디마는 우리 집안 박가성 가진 사내들은 모조리 음식을 잘 만든단 말이야. 그것도 다 집안내리기(來歷)지.”

식탁에 마주 앉아 라면을 먹으며 신이 난 금찬씨를 보면서

“그기 아이지. 내가 보이 말이 안 되네.”

“말이 안 되다니?”

“군에서 제대한 스물네 살 손자하고 칠십 두 살 할매가 한 집에 있으면 누가 생각해도 당연히 할매가 손자 밥을 해믹이고, 아니 밥을 안 먹을까 싶어 조바심을 내는 기 원칙이지, 우째 손자가 해주는 밥 얻어 묵고 정지일 잘 한다고 자랑을 할 일이고?”

“마 시끄럽다. 다 지 형편대로 사는 거지.”

후루룩 그릇 속의 라면을 건져먹고

“우리 올캐는 김치고 뭐고 음석솜씨가 보통이 아이란 말이야. 동생 니는 마 복 많은 줄 알아라.”

하고 바로 젓가락을 놓으며

“기왕 얻어먹는 거 커피도 한 잔 도라.”
“야.”

커피 물을 올리고 국물 한 방울을 먹지 않는 그릇을 비우다 밸이 상한 열찬씨가

“누님은 겉은 여자같이 생겼는데 속은 남잔 기라. 우째 여자가 되서 맛있는 것만 묵고 맛없으면 안 묵고 또 고기나 건데기만 건져 묵고 절대로 국물 한 방울 안 먹고.”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던지자

“니 시방 라면 한 제까락 먹이 놓고 유세하나? 니 겉으면 맛없는 음석이 묵어지고 맵고 짭고 영양가 없는 국물이 넘어가겠나?”

“아니, 그게 여자가 할 말이요? 맛이 없으면 제 손으로 맛있게 만들어 먹으면 되고 또 여자라면 식구들 먹고살 것 걱정해서 맛없는 것, 묵다 처진 음식을 아까워서 못 버리고 먹는 것이 우리나라 여자들의 전통인데.”

“씰데 없는 소리. 니나 잘 해라.”

커피를 야금야금 맛있게 마시고는

“간다. 저녁에 잘 데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내 방에 자라.”

한 마디 던지고 가버렸다. 빈속에 라면과 커피 같은 자극적 음식을 먹어 속이 더부룩한 열찬씨가 한참이나 방수목 탁자에 앉아 꾸뻑거리는데 또식씨가 전화를 했다.

“외삼촌, 어제 군청에서 직원이 나왔더라면서요?”

“그래. 사전입주했다고 저 밑에 집 여자가 민원을 넣었단다.”
“예. 그 이야기는 들었고요. 오늘 설계사동생이 군청건축과에 들어갔는데요.”

“그래 준공허가 들어간 모양이지.”

“예. 그 때 마침 담당 여직원한테 항의전화가 왔더랍니다.”

“무슨 항의?”

“왜 빨리 사전입주 과태료를 안 물리는지 또 물리면 얼마를 물리는지 항의하고 확인하는 전화가 왔더랍니다. 여자 목소리가..”

“그렇다면 보나마나.”

“예. 툭 하면 담 넘어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요.”

그렇다면 저녁에 여기서 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부산 집에 내려갈까 생각하다 촌에는 별일이 없느냐고 영순씨가 꼬치꼬치 캐물을 거고 사전입주이야기가 나온다면 또 무어라고 자꾸만 힐책을 할 것 같아 가기도 싫었다. 어제처럼 전혀 생활리듬이 다른 친구를 만나는 일도 서로가 부담스럽다 싶어 오늘은 장촌의 덕찬씨 집으로나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배추 심을 땅을 고르는데

“열찬아, 니 오늘은 어데서 잘 낀데?”

용호씨의 전화가 와서 시간을 보니 여섯 시 반이었다.

“그래. 고맙다. 내 오늘은 부산에 갈라고 버스타고 언양 나가는 길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그래 알았다. 잘 갔다오너라.”

“고맙다.”

전화를 끊고 나서 mp3로 프로야구를 틀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늘은 롯데가 꼭 이겨야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희망이 있다는 지독하게도 편파적이면서도 사투리가 심한 해설을 듣는데 마침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새로운 4번 타자 김대우선수가 투런 홈런을 쳐서 초장부터 리드하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아, 박종윤 7번타자 홈런입니다. 뜬금없이 홈런을 치는 박종윤선수의 뜬금 포까지 터져 오늘은 6회초 현재 스코어가 9:1 롯데의 승리가 확실시해지면서 포스트시즌의 턱걸이 5위 진입이 눈앞에 있습니다.”

저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 열찬씨가 시계를 보니 아홉시가 가까웠다. 덕찬씨에게 전화를 거니

“그래. 빈방 있겠다 잠이야 와서 자면 되는데 니 지금 어데고?”

“응 밭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네. 지금 서둘면 막차 버스 타지넸네.”

“아이다. 우리가 지금 송대 미진이집에 와 있다. 너거 자영 차로 금방 가꾸마.”

하는 소리에 급히 짐을 챙겨 큰길로 나가 사광리버스정류장 앞에 서자말자

빵빵 클랙션이 울리면서 승용차가 도착했다.
“이적지 지녁도 안 묵고 우째 잠이 오더나?”

“글쎄. 라디오 듣다가 그만 깜빡.”

“언니 집에서 저녁도 묵고 잠도 자면 되지.”

“누님집에서 저녁을 먹어? 라면을 먹고 식빵을 나눠먹어도 내가 대접하지 누님은 인자 정지출입 안 한단다.”

“하고 안 하고가 어딨노? 동생이 오면 뭐든 해 먹이는 거지.”

시누이심술, 시어머니심술은 하늘로부터 타고 난다더니 어찌 된 판인지 야무지고 영악한 셋째 금찬씨와 푸근하고 급할 것 없는 넷째인 덕찬씨자매는 무슨 앙심을 타고난 사람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심술을 부렸다. 열녀각이 있던 솔밭뜸과 자동차면허학원을 지나 부리시봇디미를 넘어 자동차가 송대마을로 접어들자

“보소, 성범이할배. 오랜만에 동생하고 <미가>에 가서 오리나 한 마리 묵을까?”

“처남은 안 묵었지만 우리는 느지막이 저녁 묵었다 아이가?”

꼭 필요한 돈이 아니면 절대로 쓰지 않는 고차대씨가 고개를 젓자

“그라면 중국집이나 국밥집이라도 갈까?”

모처럼 동생에게 밥 한끼 잘 대접해서 부자소릴 듣는 체면을 세우려는 덕찬씨가 안달을 내는데

“차부에서 노란통닭이나 한 마리 사다가 집에 있는 밥하고 처남 먹이지.”

자린고비 고차대씨가 큰마음을 먹었다.

“한 마리가 뭐고 당신 혼자서도 10분이면 묵는 한 마리를. 적어도 두 마리는 사야지.”

“그래 알았다.”

한 마리에 5천 원씩 만 원짜리 한 장을 지갑에서 꺼내준 고차대씨가 씨익 웃는데

“보소. 소주는 있능교?”

“냉장고에 됫병 묵던 거 한 반병 남았다.”

“아이구, 그거는 냄새가 다 빠져서 못 묵는다. 새로 사자.”

“있는 술 놔두고 와 또 생돈을 쓰는데? 어데 돈이 너무 많아 밑에 깔린 돈이 아야, 아야! 하나?”

“그래도 동생은 시원인가 뭔가 지 좋아하는 소주가 있단 말이야.”

평소 온순한 덕찬씨가 오늘 따라 강경하게 나오자

“그라든지.”

마트에 차를 세우자

“자, 카드.”

남편이 내미는 카드를 보고

“마 됐다. 성범이가 할매 돈 없다, 없다 카이 내가 동생 술 사줄 돈도 없는 줄 알고.”

덕찬씨가 시원소주 세 병에 사이다까지 한 병 사오면서 환하게 웃었다. 산림조합을 퇴직한 남편이 이런저런 살림살이에 간섭을 하자

“알았심더. 그까짓 촌살림 마 당신이 알아서 사소.”

천하태평 덕찬씨는 경제권일체를 남편에게 넘기고도 식탁에 앉은 남편이 반찬타령을 하기시작하자

“마 시장보고 마트 가는 것도 당신이 알아서 하소.”

완전히 살림에서 손을 떼고 친정의 제사를 가도

“보소. 제사비 좀 주소.”

해서 10만원을 얻어 나오고 남편은 절대로 안 가는 경로당에도

“보소. 우리가 할마시들 밥이라도 한 깨 낼 때가 됐심더.”

손을 내밀면 그 알뜰한 양반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일단 주기는 주었다. 한 평생 엔간해서 남편에게 얼굴을 붉히거나 대드는 일이 없이 억척같이 일만 하면 도무지 사치라고 모르는 순찬씨 덕에 해마다 논밭을 늘리며 살다 어느 한 해

“지발하고 인자 땅은 고만 사라카이. 당신이 직접 논두럼을 바를 것도 아이면서. 마누라 등골 빠지는 것이 그래 보기 좋나?”

나이보다 훨씬 겉늙어 모르는 사람이면 모조리 세살 많은 금찬씨보다 위로 보는 것이 속이 상해

“당신은 높은 데 앉아서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기계만 뱅뱅 돌리고 내가 삽질을 하는 기 보기 좋나?”

하면서도 절대로 일을 피하는 법이 없었는데 어느 해 봄에 도리뜰에 또 논을 산다는 소리를 듣고

“당신 또 논 더 사면 내 인자 엉걸증이 나서 논두럼에도 안 나갈 거요.”

정색을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또 논을 사자

“나는 인자 논농사는 손 놓았소.”

소똥에 불붙으면 양동이로 물을 퍼 부어도 못 끈다더니 순둥이 미진이엄마가 골을 내니 찬바람이 쌩쌩 돌면서 절대로 논두렁을 밟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자존심 강한 높을 고(高)자 고차대씨가 <차돌이 바람이 들면 석돌보다 못 하다>는 속담처럼 말 한마디 안 하고 고분고분 받아들여 다시는 논에 가자는 말도 않았다. 이후로는 돈이 생기면 반드시 언양농협에 저금을 하거나 정기적금을 넣어 고속철부지에 편입된 도리뜰 논 보상금이 나오면서 무려 30억 가까운 예금을 가진 큰 손이 되어 농협에 들어서면 조합장과 전 직원이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응접세트에서 차 대접을 받고 점심때마다 식사대접을 받는 <어르신>이 된 것이었다.

날씨가 더워 마루에 상을 차린 셋이 노란 통닭을 찢어 판을 벌리는데

“당신은 술도 안 묵을라카면 그 닭고기는 어지간히 드소. 동생 술안주 모지라겠다.”

모처럼 친정동생이 와서 기분이 좋아진 대문을 활짝 열고 불을 환하게 켠 채 삼이웃이 다 들으라고 큰소리를 탕탕 쳤다. 내일이면 경로당에 가거 명촌에 이사 오는 글 쓰는 미진이 외삼촌이 노랑통닭을 사와서 먹고 놀다 자고 갔다고 자랑이 늘어질 것이었다. 크게 똑똑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심덕하나가 좋은 누님이 음식솜씨조차 별로지만 저 코가 덩그렇고 반듯하게 생겨 까다롭기로 한 성격할 매형이 한 평생 아무 타박 않고 누님과 살아준 것이 고마워

“자형, 높을 고자 고씨는 참 양반은 양반이야. 한 평생 아무 솜씨 없는 우리 누님이랑 잘 살아줘서 고맙소.”

열찬씨가 잔을 채워주자

“니 누부 식복이 많아 우리가 밥술이나 묵고산다 아이가?”

“아임더. 그 기 다 자형이 여물고 부지런해서.”

“마 됐다. 처남, 어서 묵고 자자.”

상을 치우고 아랫방의 한 20년 전에 시집간 미진이가 쓰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

(참, 롯데는? 설마 이겠겠지.)

아까 7회 말에 11:3으로 크게 이기고 있던 생각을 떠올리며 무심코 mp3를 켜는데

“시계가 11시 반을 가리키는 이 시각, 광주구장이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듯 술렁이고 있습니다. 스코어는 12:8 아직 롯데가 넉넉하게 앞서고 있는 9회 말 투 아웃. 아웃카운터 하나를 남기고 타석에 3번타자 김주찬선수가 들어섰습니다.”

(아하, 이거 장난이 아닌데...)

왠지 불안한 생각에 바짝 긴장하는데

“볼 카운터 스리, 투 이제 더 갈 곳도 없는 마지막 투구, 이 볼 하나로 승부가 갈립니다. 순간 쳤습니다. 하늘 높이 가맣게 떠오른 평범한 플라이, 이렇게 롯데가 승리하는 것 같습니다.”

하는 순간

“아,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저 공정도는 1루수가 잡아주어야지요.”

이성득해설위원의 목소리가 절규에 가까워지더니 투수가 강풍에 휘말린 공을 놓쳐 12:9의 스코어에 다시 만루찬스가 되었다.

“큰일 났습니다. 이제 홈런 한방이면 경기가 뒤집히는데 상대는 오늘 감각이 좋은 용병선수입니다. 그렇다고 친다고 다 홈런이 아닌 이상 투수는 반드시 승부를 걸어야 됩니다. 옳치! 쳤습니다. 하늘에 가맣게 뜬 공. 저 이지 플라이를 잡으면 만사가 끝이 나는 겁니다.”

하는 순간 라디오 속에서 태풍보다 더 요란한 함성이 울리면서

“이상합니다. 광주구장의 거센 바람에 실린 공이 이리 저리 흔들리며 자꾸만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제 펜스 바로 앞에까지 다가간 우익수 손아섭, 힘껏 뛰어오르며 손을 뻗어 보는데 아, 넘어갔습니다. 홈런입니다! 홈런. 기아가 기어이 11:3의 스코어를 역전시켰습니다.”

이어폰을 빼며 mp3를 집어던져도 한참이나 가슴이 콩콩 뛰며 잠이 오지 않았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