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59) 토정비결 해설 ⑪운수와 점(占)이란?

말년일기 제1260호(2021.2.28)

이득수 승인 2021.02.27 17:40 | 최종 수정 2021.03.02 16:54 의견 0
 사진2. 가장 기도 발을 잘 받는다는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Barnkim,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가장 기도 발을 잘 받는다는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 [Barnkim,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우리는 시정(市井)에서 <도사>니 <명도>니 하면서 자신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든 원리와 각 개인의 운명을 줄줄이 꿰거나 자신보다 무한히 큰 신통력을 가진 <산신동자>니 <남해용왕>, 심지어 <작두대장>을 내세워 점을 치고 굿을 하여 먹고사는 사람이 적잖아 부산의 대청동 메리놀병원에서 카톨릭센타로 가는 오른쪽 길처럼 아예 울긋불긋한 대나무와 색깔 있는 풍선을 매단 역술인 또는 점바치 골목이 등장하기도 하고 풍수지리에 통달한 지관이 있다는 말과 반풍수에 집구석이 망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아무튼 변화가 무쌍한 세상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족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사업이 기울고 취업이 안 되고 아이의 성적이 떨어져 입시에 떨어지면 수많은 가정의 안주인이자 아내에 어머니들이 골목골목에 있는 점집과 부처님을 모신다고 해놓고 점과 굿만 하는 집, 심지어 지세가 좋다는 여수 향일암, 남해 미타암, 청도 사리암을 찾아 나서고 팔공산의 갓 바위에 오르는 산길이 미어지기도 예사입니다. 그런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점쟁이와 점을 보러가는 고객의 교감이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일치하는 지 어쩌면 점복술자체가 그 철학가와 의뢰자간에 무한으로 주어지는 신뢰 그 자체가 아닌지, 연기의 색깔이나 향이 특이한 향불을 피우면 마치 그걸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 같은 접점, 서로의 생존욕구의 만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상에는 15세기 초반까지 온갖 괴상한 이야기로 세계인을 현혹시킨 노스트라다무스가 있었고 심지어 성경에도 엘리야와 엘리야, 여호수아와 세례요한 같은 예언자가 등장하고 불경에도 이와 비슷한 화두가 있지만 본 특강에서는 이에 대해서는 일단 피해가기로 하겠습니다. 그런 부분은 누군가의 생업이며 개인적 믿음, 또는 신앙이라 단순히 <토정비결>에 담겨있는 작가 이지함의 휴머니즘, 만 백성이 늘 최선을 다해 생업에 힘쓰며 만사에 삼감으로서 희로애락의 모든 고비를 잘 넘기고 자손대대 태평을 바라는 그 인간애에 주목할 뿐 깊이 알지도 못 하는 그 좀 특이한 세계에 대해서 괜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사진1. 서양의 대표적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사실 그의 예언은 단 1%도 현실에 맞지 않는 희대의 사기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후대사람들이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만 각색해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위대한 예언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César de Notre-Dam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양의 대표적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사실 그는 예언의 단 1%도 맞지 않는 희대의 사기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후대 사람들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만 각색하면서 위대한 예언가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César de Notre-Dam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다음은 그런 점술가나 무당이나 역술가가 세상의 이치나 개인의 운명에 대해서 얼마나 통달하고 그걸 부처님이 손안이 여의주를 들여다보듯 하느냐의 문제에 있어 그건 건강한 생활인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믿기가 힘든 이야기지만 이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이자 살아가는 수단이라 더 이상 언급을 피합니다.

다음 그런 분들이 과연 동양철학의 정점, 사서삼경의 꼭대기며 동양사회의 모든 점법의 기초이자 요체인 <주역>을 읽고 그 뜻을 통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만나본 점술가나 역술인 중에서 주역이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한 3:7정도로 이미 그 긴 세월을 통하여 그 길고 깊고 난해한 주역의 정신(목적)은 하루하루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현장의 점쟁이로부터 잊어져 이제 대부분이 그 존재를 모르고 나름대로의 점법과 <천상장군>과 <애기동자>를 설정하는 모양입니다.

또 제가 문단에 나간 지 오래되고 나름대로 독서를 좀 하고 세상이치를 좀 안다는 현학적(衒學的) 지사들도 더러 만나는데 그들은 흔히 유행처럼

“기나긴 겨울밤 대숲에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나는 <장자(莊子) 내편>을 읽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홀로 대밭에 들어가 한나절 내내 주역을 읽었다."

라는 표현, 참으로 오랫동안 또 가까이서 철학적 화두와 함께 깊은 고뇌와 사색에 잠긴 것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만 책을 좀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면 <아주 웃기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먼저 어떤 이가 <장자내편>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듣고 잘 아는 내용, 장자가 꿈에서 나비를 보고 깨어서 눈앞에 날아가는 나비를 보니 어느 나비가 그 나비인지 심지어 나 자신이 나비가 된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아무 현실성도 없지만 들을수록 아리송한 궤변(詭辯)같은 이야기로 세상의 민심을 현혹시키는 자, 그래서 아내가 죽었는데 울면서 장례를 치르기는커녕 도로 춤을 추었다는, 상식적으로 사체에 대한 모욕과 직무유기로 감옥에 갈 사람, 하루 세 끼 밥 먹고 화장실에 가는 필부(匹夫)를 미화시켜 이 대명천지에서 신선(神仙)의 흉내를 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이비 노장학자, 거의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뭘 좀 안다고 도사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 황당한 이야기가 교묘하면 할 수록 인간세상과 동떨어진 사기꾼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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