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56)토정비결 해설 ⑨삼가고 또 삼가고 

말년일기 제1257회(2021.2.25)

이득수 승인 2021.02.24 19:57 | 최종 수정 2021.03.02 16:51 의견 0
 (사)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보존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마지막으로 743 괘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그 서두를 보면
옛날 농경시대엔 이웃과 잘 못 지내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자 슬픔이었다. 
사진은 밀양백중놀의 중 농신제. [(사)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보존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마지막으로 743 괘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그 서두를 보면

-早朝起程 女服何事 
 조조기정 여복하사
 以手無膺 回首雲臺 
 이수무응 회수운대
 之南之北 四顧無親) 
 지남지북 사고무친
 (아침 일찍 길 떠날 때 여자복장 웬일인가?
 어깨 빠져 손 흔들 듯 구름 속을 바라보듯
 동서남북 돌아봐도 기댈 사람 하나 없네)

 寅卯之月 萬事彷徨 
 인묘지월 만사방황
 子孫得病 父母無依 
 자손득병 부모무의
 欲決未決 恐或失敗 
 욕결무결 공혹실패 
 (삼사월 돌아오면 만사가 헷갈리어 자손은 병을 얻고 부모는 의지 없고 엉긴 일 풀려 해도 실패할까 두려울 뿐).

 辰巳之月 妖女聞樂 
 진사지월 요녀문락
 靑樓宴樂 新琴回絃 
 청루연락 신금회현
 財爻甚旺 取利之年 
 재효심왕 취리지년
(오뉴월 돌아오면 요망한 년 풍악소리 
청루에 연회 열고 새 거문고 줄 고르네
재산증식 심히 왕성 수지맞는 한 해 일세.)

 午未之月 大厄何克 
 오미지월 대액하극
 月明三更 獨坐叩盆 
 월명삼경 독자고분
 獻誠南山 家保泰平헌
 성남산 가보태평
 (칠팔월에 큰 손재수 어떻게 해어날까?
 달 밝은 밤 삼경까지 혼자 머리 두드리나
 남산에 공 들이며 집안보전 맘 편하리)

 辛酉之月 人稱奇男 
 신유지월 인칭기남
 若非服制 財消水中 
 약비복제 재소수중
 (구시월 돌아오면 별난 사내 소리 듣고
 부모 상(喪)을 안 입으면 재산이 날아 갈 운)
 
 戌亥之月 芝蘭可埋
 술해지월 지란가매
 夢寐近之 彷徨悶悶 
 몽매근지 방황민민
 子丑之月 勿建家屋 
 자축지월 물건가옥
 害在手下 愼之愼之 
 해재수하 신지신지 
 (동지섣달 돌아오면 난초지초 땅에 묻고
 지근(至近)에 두고 서도 고민 고민 잠  못 들고
 일이월엔  절대로 집을 짓거나 손대지마 
 손재수 있을 지니 부디 삼가 또 삼가기를)-

해 왈,
게으름으로 인하여 사람마다 싫어한다. 도와줄 사람이 없는 괘

 사진1.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기는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아슬아슬 옹기장사,
 조선시대 옹기장수.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기는 죽기보다 더 어려운 아슬아슬 옹기장수.

 의지할 데 하나 없이 방황하는 가운데 요녀를 만나 바람이 나고 자식들이 병이 들고 큰 재앙이 들지만 남산에 공을 들이면 다소 나아지며 비록 자신이 워낙 게을러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좀 별난 사내란 소리를 듣기도 하며 부모의 상(喪)을 입지 않으면 손재수가 드니 집을 고치지 말고 그저 삼가고 또 삼가라고 되어있습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여러 가지 점괘의 결론은 이 신지신지, 삼가고 또 삼가라는 말인 것입니다. 토정비결은 그 괘가 절대로 다 길운인 것도 없고 모두가 다 불운인 것도 없고 길운은 함정이 있고 악운도 숨구멍이 있으니 그저 흥분하거나 절망하는 일 없이 분수를 지키며 삼가고 또 삼가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몇 번 읽다보니 <토정비결>은 주역처럼 두루 뭉실 난해한 철학서도 아니고 <격몽요결>이니 무슨 비기(祕記)처럼 매우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언사로 신비함을 과장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민들이 희망하거나 두려워하는 일들을 적당히 섞어 놓은 것 같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배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비적인 예언 같은 건 거의 없고 어떻게 보면 <명심보감(明心寶鑑)>, 채근담(菜根譚)> 같은 수양서적 분위기가 강하지요.

그러면서 당대 제일의 선비라는 그가 주자학이나 성리학에 경도되지 않고 오히려 불교 또는 민간신앙에 가깝게 절이나 산에서 공을 들이라는 부분을 보며 매우 친숙한 느낌이 들어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가슴이 따뜻한 휴머니스트 같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농민이나 상민 같은 기층민이 알기 쉽게 울창(鬱蒼), 또는 울창(鬱鬯)으로 매우 획수가 많아 도무지 쓰기 힘든 글자를 마치 이두(吏讀)처럼 그 발음만 따서 울창蔚昌)으로 쓴 것처럼 아주 자상한 배려가 돋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단순한 점술서가 아닌 철학서 또는 수양서로서 한번 읽어볼 만하지만 현대인에게 한문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그 해석은 대부분에게 너무나 난해한 과제라 이 책을 직접 읽기가 힘든 독자여러분들의 저의 이야기를 곰곰 새겨보는 것만으로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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