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 (61) 토정비결 해설 ⑫우리는 주역(周易)을 얼마나 아는가?

말년일기 제1262(2021.3.1)

이득수 승인 2021.03.01 12:13 | 최종 수정 2021.03.02 16:55 의견 0
공자는 주역책을 매우 열심히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역책(대나무)을 엮은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도 공자로부터 나왔다.
[유튜브/다산북스] 

그리고 주역(周易)을 끼고 숲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참으로 괴이쩍은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1976년 그러니까 무려 45년 전에 성균회관이란 곳에서 출판된 주역은 사서삼경의 일부이자 꼭짓점으로 한 권의 가격이 무려 2만 원, 지금으로는 한 30만 원이나 되고 그 내용도 논고(論考)편에 이어 역학의 의의, 역, 철학의 원리와 이론이 있고 본문으로 해제에 64괘애 대한 괘사가 있고 그 각론이 끝나면 계사상전, 계사하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이 있고 부록으로 점법과 괘풀이가 있습니다. 각 페이지 마다 아래위로 나누었으니 전체 450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의 길이는 국한문 혼용으로 약 9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한문을 좀 읽고 중국사와 고사성어를 두루 꿰고 있는 형편에서도 우선 30분 이상 집중해서 읽을 수도 없고(피로하고 눈이 아물거려) 또 적어도 한두 시간 쉬어 다시 읽어도 이번에는 한 1-20분 읽으면 더는 읽을 염이 없어 평생 책을 읽어 속독을 지나 거의 책 읽는 기계처럼 살아온 저도 읽다, 읽다 절반도 못 읽고 중단하기를 여러 번 무려 40년이 넘게 걸려 그럭저럭 서너 번 처삼촌 벌초하듯 읽은 책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말입니다. 단 한 문구, 한 줄도 뭔가 눈앞에 뚜렷이 보이는 것이 없이 마치 막막한 몽골의 대평원에서 몇, 며칠 말을 달리며 똑 같은 종류의 풀잎이나 클로버 꽃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또 사하라사막처럼 넓은 사막을 낙타를 타고 넘으며 그 작은 모래알갱이하나하나를 만져보는 기분이니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나이가 들어 세상살이를 좀 알고 반복해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은 그 막막한 초원에서 문득 개울물이 흐르고 새가 우는 듯 한 잔상(殘像), 끝없는 모래 밭 저 끝에서 사프란 꽃향기가 흘러오는 것 같은 아주 짧은 느낌이 잠깐 스쳐가지만 그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라 그저 (그래, 그렇지. 뭔가 알 수는 없지만 주역을 읽다보면, 아 세상사 그럴 수도 있겠구나 또는 아니 그럴 수도 있고 그리해서는 아니 되는 수도 있지.)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에 빠지다 그마저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주역의 각괘는 인생을 살다 마주치는 하나의 상황을 묘사한다[유튜브/더나은삶TV]

새삼 말하지만 일단 살아있는 인간,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주역의 흐름과 그 세부적 의미의 하나하나와 그 총체적 의미와 그에 수반된 반작용이나 그늘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 주역이 뭐 그렇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에 머무르고 마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 그 내용을 감히 알지도 못 하지만, 함부로 조금 아는 척을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희대의 영웅 공자(孔子)가 3천명의 제자, 당시의 석학을 다 동원해 편집까지는 해도 아무도 그 전체의 깊이와 의미를 모르는 책이니까요?

그래서 그 책의 제목 <주역(周易)>도 제 생각에는 만사 두루 통하여 막힘이 없이 이 세상의 모든 쓰임새에 융통이 된다는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장황히 옆으로 돌아간 것 같지만 결론은 이렇습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하나의 점으로 태어나 하나의 선분(線分)으로 목숨이 끊어지고 마는 인간은 그가 설령 달나라에 갔다 오거나 유우엔의 사무총장을 지냈더라도 우주나 인간의 실체나 운명을 전체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은 단지 열심히 일하여 좋은 이웃이 되고 매사에 삼가는 착한 사람이 되어 자식을 많이 낳아 잘 길러야 된다는 아주 평범한 원리, 그 단순하고 가까운 명제만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양식(樣式), 바로 <휴머니즘>이 되는 것이며 그게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선생의 바람인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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