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우리는 무려 13회에 걸쳐 제가 우연히 입수한 필사본 <토정비결>의 유래와 저자 이지함의 삶, 폐쇄된 조선과 인본주의의 맹아(萌芽)가 싹트는 혼란의 16세기, 그리고 동양철학과 역학, 정신력의 최고의 산물인 주역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그 긴 이야기가 끝난 지금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에 점술이나 풍수학은 그 효력이 있는 것일까, 허황한 속임수일까 또 이 세상에 신은 있는가, 없는가? 나는 그런 신의 존재를 믿는가, 아닌가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 누구도 감히 단정할 수 없는 그 화두의 결론을 내기 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영향력이 큰 사람이 늙고 병들어 사경을 헤매거나 죽고 나면 그 사람이 살아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 죽어 무엇을 남겼는지, 아니면 아쉬움투성인지를 그 사람의 <팔자>라고 단정하고 평판을 하기에 분주합니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삶은 과연 그에게 주어진 운명, 혹은 신의 안배(按配)애 따른 타의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철저히 자신의 꿈과 희망과 노력으로 살아온 의지력의 결과물일까요?
이 난해한 질문의 정답은 이외로 간단합니다. 한 인간이 아직 살아있을 때 그는 순간적인 기분이나 직감에 따라 도시로 가서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시골로 가서 부모를 만날 수도 있는 의지의 존재입이다. 따라서 동양의 점괘에 나오는 동쪽이 길하고 남쪽에서 귀인을 만난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황당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지만 막상 그가 죽고 나서 누군가가 그의 이력과 남겨진 가족과 재산과 명예를 정리해 <참 행복한 인생을 살고 갔다.>, <맥없이 고생만 하고 갔다.>고 결론짓고 주변의 몇몇이 동의하면 망자 자신이 아닌 타자에 의해 자신의 삶과 운명이 결론지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 광대무변한 우주에 잠시 살다가는 인간이란 드넓은 공간에 한 점(點)의 먼지나 티끌로 와서 한 없이 긴 시간 한 직선을 달리다 마침내 하나의 선분(線分)으로 끝나는 그런 존재이라고, 그래서 한 인간의 삶이 뭐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가 태어나지 않거나 태어나거나 열심히 살아가거나 죽어버리거나 이 우주의 존재와 흐름에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이라고...
정말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이 이 평생을 살다가는 것을 보면 최고의 권력 대통령이 되었다 탄핵되어 감옥에 가는 자나 비참한 환경이나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 그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 누구에게나 존경받고 나름 한 분야의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는 <의지의 인간상>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그들의 삶은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는 삶이고 평생이지요.
그러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 좋은 시대에 한글도 모르는 문맹에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조작할 줄 모르는 무지렁이, 돈도, 재산도, 명예도 없고 아이들은 떠나고 곁에 있는 아내도 병든 그를 조금도 이해하지 않고 천덕꾸러기로 여겨 참으로 아무 한 것도, 보람도, 의미도 없이 죽어간 한 사내, 이제 세상이 변해 무덤조차 지어보지 못하고 화장장을 거쳐 낯선 풀밭에 뿌려진 사내가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 사내는 정말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이 이 세상에 왔다간 허무한 존재일까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 적의 그는 나중에 무엇이 될지 모르는 아이, 대단한 가능성과 희망을 가진 아이로 할머니나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하루 세끼 더운 밥을 먹고 덩치가 커져 휘파람소리가 싱싱한 총각시절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비바람 몰아치는 세월을 따라 늙고 병들어 죽었으니 동물의 한 삶으로서 전연 부족함이 없어 부처님의 말씀 생로병사를 오롯이 수행한 착한 중생입니다.
거기다 그는 생애를 통한 여러 번의 선거에서 혹시라도 이번에 새로이 나타난 사람을 찍으면 세상이 좋아질까 봐 번번이 3번을 찍어 단 한 번도 당선자를 내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라면이라는 새로운 식품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거대한 기업의 홍보대상,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이었지만 나중에는 라면의 맛을 가장 깊숙이 알고 즐기는 마니아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검정고무신이 운동화로 바뀌고 구두로 바뀔 때도 샴푸가 나오고 오리털 점퍼가 나왔을 때도 그는 이 세상 가장 밑바닥의 존재로 가장 큰 기업을 살려낸 기초소비자로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서글프게 살다간 사람이라도 그가 한 세대의 주인공으로 한 민족이나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며 새로운 존재인 다음세대를 이어준 점에서 존중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신을 믿건 아니건 신의 존재를 알건 모르건 모두 훌륭하며 나름대로 삶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각도에서 16세기의 백성 거의 대부분이 끼니를 못 찾아먹고 유리걸식을 하고 태반이나 거지가 된 시절에 삼한의 갑족 양반가에서 영의정의 조카가 자라난 시대의 주역과 실세가 됨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대 선비에 권력가에서 겨우 별감에 이르는 벼슬이지만 병든 백성을 치료하고 굶은 백성에서 살아가는 기술을 가르친 진짜 목민관으로서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라도 정초에 신수를 보고 다달이 닥치는 좋은 일에 너무 흥분하지 말고 힘든 일도 차분히 넘기며 늘 삼가고 또 삼가 분복대로 살아가자는 그 토정정신, 최고의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의 물화가 가장 많이 끓는 마포나루에서 현장민심을 깨친 희대의 영웅이 저 어려운 한문책 행간(行間)마다 사랑을 불어넣어 획수가 많은 울창할 울(鬱)자 하나라도 무지렁이 백성이 알기 쉽게 약자로 쓴다든지 온갖 정성을 다한 <토정비결>이야말로 조선시대 500년을 관통하는 훈민정음의, 세종이 <어린 백성이 제 하고자 하는 바를 두루 전하게 하는> 그 첫 번째의 휴머니즘에 이은 두 번째의 휴머니즘이고 그 인간사랑의 토정비결이 세시풍속이 되어 해마다 많은 국민들이 접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입니다.
그간 참으로 복잡하고 난해하며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여러분도 올해 한 해의 토정비결이라도 한 번 뽑아보시고 늘 평온하고 삼가는 한해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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