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토정비결은 주역이 4개의 기둥(사주)를 기본으로 하는데 비해 생년, 생월, 생일의 단 3개의 연건(年建), 월건(月建), 일건(日建)의 3개의 기둥(건建)으로 그 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즉 귀한 집 자식이 아닌 농사군이나 어부의 자식은 그 태어난 시각을 부모가 정확히 자신지 오신지, 즉 해뜰 녘이라고는 하지만 아침 7신지, 8신지 잘 알 수도 없는(정확하지도 않은) 사주를 집어넣어 굳이 복잡하기만 할 뿐 정확성도 없는 사주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이 보다 간단하게 생년, 생월, 생일로 그 사람의 3건(서주의 구성요소)를 채우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연건, 월건, 일건을 찾는 개념이 일정한 룰이 있는 것이 아니라 토정비결의 첫장에 사진의 건수(建數)처럼 마치 난수표처럼 불규칙한 숫자들을 무작위로 펼쳐놓고 우선 첫 번째 연건을 찾는 법만 해도 그 해 자기나이에 해당되는 건수(建數)에 88을 빼고 남은 수로 첫 번째 기둥으로 삼으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한문을 잘 사용하지 않는 현대인으로서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되어 기껏 한 해의 신수를 보려고 수능보다 더 힘든 미적분의 공부를 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필자는 물론 신식 점쟁이들은 토정비결을 보기위한 세개의 기둥(건)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옛날 우리 부모나 그 이전세대들이 하루 또는 그 해나 달의 신수를 화투패를 떼거나 또는 콩을 한 줌 던져 그 수를 세어 8로 나누고(토정비결의 괘는 1-8로 이루어짐)남은 수 1-8을 하나의 기둥으로 <콩점>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좀 쉽게 예를 들면 화투장 1월 솔에서 8월 공산까지 각 석장씩 모두 24장을 섞고 그 중에서 3장을 뽑아 차례로 놓아 만약 1월 3월 5월이 나온다면 맨 아래로 부터 연건, 월건, 일건을 삼아 135번을 자기의 괘로 삼는 것입니다. 또 현대의 젊은이들은 화투대신 손에 익은 트럼프카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도 에이스(1)에서 8까지 카드 각 석장씩 24장을 섞어 그 중 석장을 뽑으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화투나 카드가 없을 경우 윷처럼 수저통에 젓가락 8개를 세 번 던져 바닥에 떨어지는 수를 자기의 괘를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마저 없으면 그 순간 문득 자기 마음속에 떠오르는 수를 (아, 내 남은 삶에 아내를 빼고는 감히 생각할 수가 없지.)
하고 1자를 연건으로 하고 (그렇지. 내 아들딸 둘에 며느리와 사위도 소중하고)
해서 4를 월건으로 하고 마지막 (금쪽같은 내 손녀 넷을 어디에서 또 구하랴? 또 나의 동반자이자 충견인 우리 마초를 빼기도 그렇고...)
해서 5자를 일건으로 삼으면 저의 괘는 145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가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내용은 어쩜 난수표처럼 무질서하게 어질러진 숫자의 세계인데 그 순간 무슨 인연인지 내게 다가오는 숫자, 자신도 모르게 나의 감성을 움직이고 영혼을 에워싼 거대한 숫자의 바다에서 문득 하나 내 손바닥에 올라온 숫자, 마음으로 부터 건져낸 숫자가 바로 나의 일 년 신수(身數)나 운세라고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무궁으로 넓고 무진하게 긴 시간의 이 우주에서 천문학 또는 철학의 세계에 있어 가장 엉뚱하고 돌출한 사건이나 현상이 우주 또는 인생의 실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지성과 판단을 가지고 감성과 감정에 매달리는 한 인간은 어떻게나 자기에게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숫자자체를 운명으로 보아도 누가 이를 제지할 수가 없는 것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토정비결의 괘수는 111에서 888까지 연속으로 빼곡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맨 처음 토정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을 때 설정한 3개의 기둥에 해당이 안 되는 숫자를 빼고 남은 건수만으로 들쑥날쑥 설정되어 겨우 112개의 괘로 구성되어있으므로 자기가 기껏 찾아낸 괘가 토정비결에는 괘가 다반사인데 이 경우 과감히 그 숫자를 버리고 한 번 더 괘를 뽑아보는 수도 있지만 그냥 처음 뽑은 숫자와 가장 가까운 괘를 사용해도 될 것입니다.
마지막의 문제는 토정비결의 괘가 겨우 112개라면 우리나라만 해도 5천만이 넘는 국민 중 거의 50만에 가까운 사람이 하나의 괘에 해당이 되는데 그게 과연 개인적으로 정확히 자기의 운명 또는 신수를 나타낼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무려 10만이 넘는 사람이 하나의 괘에 해당이 되어도 그 각자는 남녀노소와 도시와 시골, 부자와 가난뱅이, 너무 바쁜 사람과 한숨만 쉬고 앉은 심심한 사람들처럼 그 처지에 따라 자기의 삶을 해석하는 방법이 나름대로 있을 테니 각 개인의 신수로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 이 토정비결은 좋아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나빠도 너무 절망하지 말고 은인자중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온다는 고진감래의 휴머니즘을 그 바탕에 깔고 있으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괘를 가장 합리적,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조심조심 한해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기본자세이며 이 토정비결의 기본정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괘만 확정이 되면 그 괘에 대한 해설은 컴퓨터나 휴대폰의 토정비결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알게 되니 굳이 저 처럼 먼저 폴폴 나는 고서를 뒤질 필요도 없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