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47)꿈(✩)은 이루어진다

말년일기 제1248호(2021.2.16)

이득수 승인 2021.02.15 16:45 | 최종 수정 2021.02.19 00:22 의견 0

 

 사진1. 건강하던 시절 마초와 함께 밝얼산에 올라 찍은 사진
 건강하던 시절 마초와 함께 밝얼산 정상에서

사진은 아직 제게 병이 오기 전인 2015년 가을 겨우 4개월 정도 된 마초를 데리고 골안못 뒷산인 밝얼산(739m)를 올라 기념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아직 낯선 사람들을 겁내는 마초를 달랜다고 한참이나 승강이를 해서 간신히 마초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밝얼산이 영남알프스의 큰 줄기로서 여러 개의 지맥으로 갈라지는 배내봉의 작은 줄기로 등억리와 길천리를 가로지르는 상북변의 주요 고지 중의 하나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컨디션이 좋은 날 길천리 순정마을에서 긴등이라는 등산로를 따라 이 밝얼산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위의 가매봉을 거쳐 배내봉까지 긴등 종주(縱走)를 한 번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4개월이 지나 제가 간암에 걸리면서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습니다. 내일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 오를 것 같은 밝얼산을 언제 다시 한 번 오를 수 있을지,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오를 수 있을지 바들뜰을 지나 골안못을 돌 때마다 한사람의 생애를 무슨 돌풍처럼 순간적으로 에이고 지나간 고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을 느끼고 이제는 현실적으로 오르기 보다는 그저 <꿈이여, 다시 한 번!>을 외치고 바라보는 산봉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떡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다시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본래 경사가 급해 흑인의 이마처럼 덩그런 산꼭대기가 그렇게 더 멋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상북면의 오래 된 고택이나 성황당, 또 순교자가 많은 천주교의 유적지등에 대해 좀 알아보자고 공부를 하던 중 매일 그냥 무심히 바라보던 저 밝얼산이 길천리 순정마을에서 <정아바위>라는 기념물바위를 돌아 해발 600m의 고지를 한 1미터 정도 넓은 등산로로 뚫어 아주 옛날부터 저 산 너머 울산군 배내는 물론 양산군 배내 사람들까지 언양의 5일장에 갈 때는 새벽밥을 먹고 출발해 반드시 저 밝얼산 정상에 올라 해 뜨는 것을 보며 새참을 먹어야 언양 장(場)에 늦지 않고 또 오후에도 해가 떨어지기 번에 반드시 저 밝얼산을 넘어야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마을에 도착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산행의 키포인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다 단순히 장날의 장거리만 넘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상북면과 배내리 사이에 혼사가 있어 말을 타고 장가를 가거나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는 색시도 모두 이 험한 고개를 넘어야 되는데 아무리 발이 빠는 장정이라도 4-5시간이 걸리는 저 경사가 심한 능선길을 소나 말, 가마가 다니도록 평소에 폭 1미터가 넘는 산길을 유지하러 해마다 배내사람들의 산역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건 저 밝얼산에 도보라 한 20분 가면 제법 넓은 헬기장 하나가 나오는데 그곳을 가매(駕)봉이라 한답니다. 만약에 상북면의 순정리나 양등리의 처녀가 시집을 가면 아주 건장한 가마꾼 넷이 가마를 탄 색시를 둘러매고 긴등을 넘어야 되는데 도중에 신부가 오줌이 마려우면 큰일이라 가마에는 요강을 하나 넣고 신부의 오줌 누는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게 요강바닥에 짚을 깔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밝얼봉을 지나 가매봉에 이르면 저 너머 배내마을에서 네 명의 가마꾼이 역시 짚이 깔린 요강을 들고 마중을 나와 가마봉정상에서 가마꾼이 교대하곤 했답니다. 

 사진2. 수많은 장군과 천주교도에 새각시의 가마까지 넘어다닌 산길 긴등(嶝)
 수많은 장군과 천주교도에 새각시의 가마까지 넘어다닌 산길 긴등(嶝)

그러나 그저 이렇게 옛날 산골사람들이 숯이건 약재건 양식을 지고 언양장에나 가고 드물게 혼시가 이루어져 꽃가마가 다니던 이 길이 홀연(忽然)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중후반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와 김대건신부에 이은 이나라 두 번째 천주교지도자인 김범우 신부가 밀양의 성지에 숨었다 관리들의 감시가 심하자 간월산의 가장 내밀한 골짜기인 파래소 폭포 위쪽 작은 시누대숲이 우거진 조그만 바위굴 죽림굴에 거처하면서 입니다. 당시 세도정치와 쇄국정책에 숨 막힌 민중, 단 하루라도 인간답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던 삼한의 천주교도들이 모두 이 죽림굴을 중심으로 몰려들어 긴등같은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배내고개 아래 은밀한 아지트를 만들어 김영제베드로 같은 순교자가 발생하고 그들의 예배소인 실티공소가 생겨 산아래 궁근정공소를 거쳐 고헌산, 백운산을 거쳐 상선필, 하선필과 인보의 공소를 건설하며 영남일원 천주교의 중심지가 되고 밝얼산이 있는 긴등을 중심으로 한 또 한줄기의 신도들은 길천리 순정마을과 후리마을에 각각 공소를 짓고 언양읍천전리에 성당을 건립하고 다시 직동리에 공소를 건립하는 듯 끝없이 발전하며 언양일대가 천주교의 성지(聖地)로 발전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이지요. 

한갓 꼿꼿한 시골선비를 자처하는 저는 어떤 종교도 신봉하지 않지만 아내 파우스티나가 믿는 천주교의 너그럽고 편안하면서도 그 내부결속이 강한 교유들의 삶과 신앙심에 호감을 가지고 아내의 신앙생활을 후원하는 편입니다.

벌써 투병 6년째, 그간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직도 살아남아 언젠가 마초와 함께 다시 저 밝얼산에 오를 꿈을 꿉니다. 그러니 이미 심신이 많이 피폐해진 저도 그렇고 주인인 저를 닮아 오른쪽 뒷다리를 심하게 저는 마초도 벌써 개 나이 일곱 살, 중년을 훌쩍 넘어서서 과연 우리 둘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 밝얼산 정상을 오를지는 미지수(아마도 불가)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꿈이여, 다시 한 번> 같은 영탄조의 탄식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이 잔명(殘命)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요.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제 비록 피닉스(不死鳥)는 아니지만 아직도 그 꿈을 버린 사람은 아닙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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