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45) 토정비결 해설 ②조선시대의 점복(占卜)술과 예언가

말년일기 제1246호(2021.2.14)

이득수 승인 2021.02.13 13:22 | 최종 수정 2021.02.14 14:23 의견 0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 세워진 동상

우리는 전장에서 설명한 <토정비결>의 내용에 대해서 보다 상세히 알려면 먼저 그 시대적 배경, 그 중에서 왕실과 관료들의 정치이념, 그리고 무지렁이 백성들의 생활상과 염원, 그리고 토정비결과 유사하거나 가까운 점복서, 점복술과 예언가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조선시대는 주자학을 표방한 절대왕조입니다. 조선 중후반에 보다 현실적으로 발전된 성리학과 양명학, 실학이 들어왔지만 이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왕실과 관료, 양반과 선비 층에 해당되지 하루하루를 살기 바쁜 농부나 어부 시장바닥의 상인이나 보부상, 백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민과 천민(노비)들에겐 그림의 떡과 같은 다른 세상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있어 백성이 제 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게 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지만 그마저 주자학에 물든 고루한 선비 등에 의해 왕의 대사업이 반대에 부딪히는 판이라 일반상민에게 전파는 너무나 어려워 조선중기까지는 한문이든 언문을 알아 까막눈을 면한 사람은 일부 양반과 관리를 비롯하여 전 백성의 1할 미만이며 나머지 90%가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지요.

그러나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한 무지렁이들이라도 자신과 가족은 어떤 팔자(八字, 사주의 두 자씩을 나누어 전부 8자)가 어떠하며 한해의 신수는 어떠한지 무단히 병이 나거나 관재(官災)수에 시달리거나 혹시 횡재(橫財)운은 없는지 해마다 정초가 되면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초가 되면 반상(班常)을 가릴 것 없이 모두 토정비결이나 신수(身數)를 보았을 텐데 그 중에서 재산이 좀 있으면서 집안에 병고나 재액이 잦은 집에서는 따로 점을 치거가 굿을 하는 사람도 있어 점쟁이, 풍수, 무당, 역술가등 여러 종류의 운명철학가, 즉 남의 운을 들먹여 밥을 먹고 사는 직업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점복의 최상위에는 현실의 누구누구의 팔자나 신수보다는 적어도 몇 십 년이나 몇 백 년 후 나라전체의 흥망이나 세장천지 만백성의 안위를 예언(豫言)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특히 현세에 와서 세계의 사상의 주요한 한 갈래로 서양의 유수한 대학의 철학과에 학과가 신설된 퇴계 이황(李滉)의 퇴계(退溪)학, 남명 조식(曺植)의 남명(南冥)학, 이율곡과 서화담, 고봉 기대승등 기라성 같은 대유학자가 물물이 태어난 나라에서 토정 이지함이 임진왜란을 예언하고 율곡 이이가 왜의 침입에 대비한 <10만양병설>을 주장했을망정 그것을 전 백성이 알고 따를 예언으로는 파급시키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절대군주제의 나라에서 몇 십 년 또는 몇 백 년 후를 예언한다는 것은 현세의 몽매한 백성을 선동, 반역을 일으킬 수 있는 대역(大逆)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실질적인 예로 우리는 이제 곧 이씨의 왕국은 망하고 정씨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도참서로 전라도등 민간에 널리 퍼진 정감록(鄭鑑錄)을 들 수 있는데 사색당파의 싸움 끝에 천신만고로 권력을 잡은 서인세력이 당시 반대세력인 정여립을 정감록의 정도령으로 지목해 번듯한 한 벼슬아치가 서해의 절해고도로 도망가 마침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거기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족종교인 동학을 일으켜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 人乃天)와 반상이 뒤집힌 후천개벽(後天開闢)이 온다는 사상으로 당시 찰스다윈의 진화론을 업고 누구나 능력 있는 자가 무능한 자를 지배한다는 군국주의의 발상으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세와 외래문명 천주교 등 서학에 맞서는 민족의 종교이자 현세 굴지의 종교와 비교해도 그 이념적 우수성이 절대로 뒤지지 않는 그 절세의 경륜가이자 예언가인 경주 용담촌의 수운 최제우(崔濟愚)를 혹세무민의 죄를 씌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독야청청 고루한 조선의 왕실이나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유불선의 학문에 두루 통하고 애민의 사상이 투철하며 선비와 양반으로서 인품을 두루 갖춘 데다 한 시대를 재단(裁斷)하고 미래를 예언할만한 대사상가 또는 경륜가, 좀 단순하게 말해서 속에서 육두벼슬을 다할 만한 경륜가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이는 개인에 따라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오세신동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을 꼽고 싶습니다. 

토정비결

일찍이 그 천재성이 발견되어 세종대왕으로 부터 5세신동(神童)의 호칭을 받고 병약한 세자 문종과 그의 후손이 적통(嫡統)의 세계(世系)를 이어가기를 당부 받았지만 후일 그의 태양이자 삶의 목표인 단종이 삼촌 세조에게 척살(擲殺)당하자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그는 버들잎에 시를 써 부질없다며 개울에 띄우고 천지강산을 떠돌며 탁발을 하는 운수승(雲水僧)이 되고 어떤 때는 깊은 숲속의 은자(隱者)들과 우주와 왕조의 운행을 논하는데 그 이론이 얼마나 깊고 정교하며 엄숙한지 조선에서 무얼 좀 안다는 모든 고승과 예언가, 경륜가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그가 열변으로 강(講)을 할 때는 하늘의 성신(星辰)이 잠시 운행을 멈추고 주위의 금수까지 귀를 기울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만약 그의 삶의 전부이자 태양인 단종이 죽지 않고 성군이 되어 매월당 김시습을 중용, 영의정으로 삼았으면 이 나라가 엄청난 강국에 대국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외 격몽요결(擊蒙要訣)의 남사고(南師古)와 북창(北窓) 정렴 같은 예언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아주 짧은 대화체로 아주 막연한 이야기,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뭔가 대단한 위기와 이변이 감지되는 이야기 몇 편을 남기고 곧장 행방을 감추어 제대로 된 행적이나 기록이 잘 없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이가 있는 예언서를 남겼다면 정감록의 정여립의 예처럼 그들 역시 당장 반역의 무리로 몰려 대역죄인으로 처형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토정 이지함이 여러 가지 기행을 일삼으며 토정비결을 작성 민간에 유포해 많은 백성이 이를 두루 읽고 수신의 지침으로 삼아도 조선왕조에서 이를 제지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의 문벌이 목은 이색에서 이어지는 대유학자의 문벌로 나중에 그의 조카 이산해가 선조시절 영의정을 지내는 실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지함(李之菡)자신이 파주와 아산의 현감으로 짧은 기간 벼슬살이를 하여도 정말 아무런 사심이 없이 단지 병들고 굶주려 유리걸식 떠도는 백성을 커다란 건물을 지어 수용하고 구휼하며 치료하고 먹고살 방도나 기술을 가르친 진정한 목민관이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그 토정비결의 정식 명칭도 이씨가장비결, 그러니까 이씨가문에 오래 전해 내려오는 각종 민간의 비결을 집대성한 비결이라 토정자신의 이름을 크게 내세우지 않은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한해를 희망을 가지고 살되 늘 삼가고 조심하여 행실에 어긋남이 없이 충효를 실천하고 자식을 많이 낳아 풍족하게 살라는 이 희대의 생활철학서는 마침내 호주머니 속의 송곳이 언젠가 비어져 나오듯(낭중지추, 囊中之錐) 온 국민, 만백성의 필독지침서가 되어 끝내 지은이의 아호를 딴 <토정비결>이란 이름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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