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44)토정비결 특별해설 ①프롤로그

말년일기 제1245호(2021.2.13)

이득수 승인 2021.02.12 14:41 | 최종 수정 2021.02.12 22:12 의견 0
사진2. 토정 이지함(또는 조선조 선비)의 이미지
서울 마포구 용강동(토정로31길 23)에 세워진 토정 이지함의 동상. 아래 얼굴은 동상을 조각한 이석희 씨.

오늘이 음력으로 정월초이튿날입니다. 옛날 같으면 어제 차례를 모시고 마을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마친 젊은 부부들이 가양주(家釀酒)로 불리는 농주의 웃물, 청주(淸酒)를 한 되 담아 보따리에 두르거나 형편이 좀 되는 집은 떡을 하거나 산 닭을 한 마리 날개를 꺾고 보자기에 사 친정에 가는 날입니다. 등에 갓난아이 하나만 달랑 엎은 새 각시의 신행(新行)일 수도 있지만 올망졸망 아이 서넛을 거느리기도 예사지요. 

이렇게 설을 쇤 후 마을 풍물패가 집집이 안택을 한는 사이 머슴도 집에 설을 쇠러 보내어 대보름 달집을 태우고 이튿날 평소의 일상에 복귀하는 가간까지를 정초(正初)라고 하는데 평생 같은 고장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의 출발점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 시피, 요즘의 젊은이도 정초가 되면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토정비결이니 일 년 신수, 컴퓨터 점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한해의 농사가 날씨에 좌우되는 운수(運數)애 매달리던 농경의 시대에는 한결 더했겠지요. 그래서 정초에 거르지 않는 특별한 일의 하나가 바로 토정비결이나 일 년 신수를 보는 일입니다. 

문학을 하는 제가 이웃영역인 한문공부를 자동으로 조금 하다 보니 우연히 사서삼경의 맨 꼭대기인인 주역도 여러 번 읽고 좀 단순하고 속물적이지만 당사주(唐四柱)편람이니 토정비결도 읽고 했는데 정년퇴직 후 우연한 기회에 토정 이지함의 토정비결 필사본을 발견, 여러 차례 정독하여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올해 정초에 제 포토에세이독자여러분께 특별히 <토정비결특강>을 십여 차례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서 제목을 굳이 특강이라고 한 것은 제가 토종비결이나 점, 무속에 아주 특출한 사람이 아니라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고 감성적인 시를 주로 써온 시골영감이 그 어렵고 철학적인 과제를 보다 시적이고 감성적이고 어떤 때는 시인의 직감으로 또 가장 쉽고 편하게 풀어보는 좀 색다른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특별히 부탁할 점 하나는 인 강의의 제목과 내용이 한문으로 이루어져 일핏 겁을 내어 잘 다가서지 못할까 하는 우려입니다. 비록 한문은 많아도 제가 중학생정도의 수준이면 훤하게 알 정도로 쉽게 풀어나가겠으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오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그럼 먼저 이 시리즈의 제목인 <토정비결>의 의미를 알아야겠는데 <토정(土亭)>은 이조 중종 때 태어난 거유(巨儒)이자 청백리인 이지함(李之菡)의 아호입니다. 

 사진1. 토정 이지함이 자라난 16세기의 마포나루. 선비집안인 이지함은 여기서 만백성이 살아가는 민생과 상도의 요체를 체득한다.
토정 이지함이 자라난 16세기의 마포나루. 선비집안인 이지함은 여기서 만백성이 살아가는 민생과 상도의 요체를 체득한다.

세인들은 이지함을 흙으로 토굴을 짓고 살며 조그만 배 앞뒤로 표주박을 달고 손으로 노를 저어 제주도를 여러 번 왕복한 기인(奇人)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계는 고려 말의 명유 목은(牧隱) 이색(李穡)에서 출발하는 알짜 양반이며 선비입니다. 그의 5대손인 이지함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재위 시에 영의정을 지낸 명신으로 그의 조카인 이산해를 자신의 수제자로 가르킨 점, 또 그가 우리나라 주자학의 중요한 연결고리인 화담 서경덕(徐敬德)을 사사(師司)하고 이율곡, 조식 같은 당대의 거유와 정철 같은 대선비들과 교류하면서도 벼슬에 쉬 나아가지 않고(어릴 때 이웃이 우연히 벼슬을 얻어 과하게 설치는 것을 보고 염증을 느껴서) 말년에 포천과 아산의 현감자리를 얻어(제가 이 글을 쓰며 픽 웃은 것이 저 역시 이지함과 비슷한 현감과 현령정도의 벼슬을 지냈음) 병들어 쓰러진 거지와 굶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걸인청을 만들고 여러 가지 살아갈 방도, 가술을 가르쳐 산업일꾼으로 키워낸 것 또한 주자학시대의 선비로서는 매우 보기 힘든 일인데 그건 그거 어릴 적 전국의 세곡과 물화가 드나드는 마포나루에서 상도를 깨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517년에 태어나 1578년에 죽은 그가 살다간 지 4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그가 조선시대는 물론 우리나라를 살다간 모든 점술가, 복술가, 예언가중의 으뜸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아마도 떠돌며 전해지는 여러 가지 비급(祕笈)을 잘 정리해 한학 또는 유학에 어느 정도 소양이 있어야 접근이 가능한 동양 최고의 점복서 사주팔자(四柱八字)의 난해한 <주역>보다는 훨씬 쉽고 간단하여 무지렁이 농부나 서민, 아녀자들이 누구라도 알기 쉽게 자신의 한해 운수를 알아 더욱 생계에 힘쓰고 행실에 조신하라는 뜻을 담고 또 보다 쉽고 간단한 비급이 되게 주역의 사주에서 정확한 출생시점을 가늠하기 힘든 생시(生時)를 뻰 3개의 기둥으로 총112 개의 점괘로 나눈 점일 것입니다.

다음 비결(秘決)은 운전면허실기비결 또는 로또복권담첨 비결처럼 보통 비밀한 대책이나 그 요체를 말함인데 그것을 글 또는 그림으로 표한한 것을 비급(祕笈)이라 하여 무협지의 고수들이 그럴 뺏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비결은 토정비결의 표지인 이씨가장비결(李氏家藏秘決), 즉 이씨네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결이라는 뜻인데 이는 석학(碩學) 이지함이 조선 중기 민간에 내려오는 점술(占術), 복술(卜術), 민간의 괴담, 전설 등 여러 가지 비결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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