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41) M. R. I 없는 세상

말년일기 제1242호(2021.2.10)

이득수 승인 2021.02.09 14:40 | 최종 수정 2021.02.11 13:04 의견 0
 M. R. I 촬영실의 천장그림
 M. R. I 촬영실의 천장그림

M. R. I는 자기공명영상촬영을 말합니다. 의학적인 문외한인 제가 글자자체만 가지고 뜯어보면 이 장치의 핵심은 공명(共鳴), 즉 외부환경에 대한 내부의 반응, 즉 떨림이나 울림을 분석하는 기술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체내부에 암을 비롯한 어떠한 비정상적 세포나 이물질이 발생했다든지 소통이 중단된 문제점을 환자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고 그 순간에 스스로 반응하는 인체의 공명, 즉 떨림이나 울림을 통해 병반(病斑)여부나 상태를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저는 교통사고로 입은 부상을 비롯해 간암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 세월 병원생활을 하면서 현대의학의 모든 혜택을 다 보고 이제 현대의학의 범위를 벗어난 자유인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저는 현대의학이 없었다면 감히 일흔이 넘은 이 나이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와 각종 사진을 찍는 의료기사와 피를 뽑는 채혈사와 병원주차장이나 장례식장의 늙은 경비원에게도 공손하게 그들의 노고를 감사드리는 편입니다. 

새벽에 눈을 비비고 <깊은 산속 옹달샘에> 달려간 노루가 세수하러 간 걸 잊고 물만 먹고 가는 것처럼 제 어머니가 참 되어라. 복(福) 되어라 염언하며 길러낸 자신이 어떤 때는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그저 병원에나 장기 출입하며 세상천지에서 가장 약을 많이 먹고 주사를 많이 맞고 의사의 검진과 여러 의료장비의 검사를 많이 받고 가는 사람, 병원바라기로 살다가는 자책에 빠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와중에서도 현대적 의료장비, 수많은 전문가가 오래 연구해 발명한 그 대단히 정밀한 검사장비와 지료장비와 보조도구에 감사드리는데 그건 제가 42세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대퇴부복합골절을 당해 그것이 골수염이 되고 화골(化骨)현상이라는 기현상(奇現象)에 빠지면서 모든 의료진이 오른쪽 다리의 절단(切斷)을 결정했을 때 한 노련한 의사가 제 종아리 다리근육이 너무 튼튼하다고 어쩜 그 강한 근육이 이변을 일으켜 뼈를 붙게 하는 진액을 발생시킬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소련에서 최근에 개발된 기법, <일리자로프>라는 요법, 절단된 두 다리뼈 틈에 뼈와 석회로 버물린 몰타르 같은 접합제를 넣고 엉치뼈에 커다란 스텐기둥을 박고 그 아래로 네 게의 구멍을 뚫어 철사로 돌돌 감아 다시 네 개의 동그라미로 연결시킨 수술을 해 병원으로 면회 온 제 아들이 눈사람 같고 고릴라 같은 이상한 노인을 발견하니 제 아비더라는 기막힌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제 다리는 잘 나아 약간 절룩거리는 새 다리로 저는 18년의 공직생활을 더 하고 사무관에 합격하여 서기관이 되고 시집과 수필집을 다섯 권이나 내는 삶의 성과를 올렸던 것입니다.

간암을 치료하면서 저는 참 많은 현대적 의료장비와 장치를 만나며 그 하나하나의 호용에 감사해 했습니다. 우선 검사장치만 쳐도 간단한 X-ray와 채혈검사(그 하나로 당뇨를 비롯한 10개의 진체지수가 나옴)장비와 C.T(단층촬영), M. R. I(자기공명촬영), 본스캔(Bone-Scan 뼈 사진)에 뼈 사진과 자기공명장치(M. R. I)를 접합시킨 가장 정밀하고 비싼 검사 <펫시티>검사를 여러 번 했고 응급실과 중환자실 침상의 벽에 붙은 수많은 의료장비, 진통(鎭痛)장비, 비상연락장비, 인공호흡기 등 생명연장 장치의 신세를 졌는데 제가 마취제를 먹고 잠든 사이 직접 수술이 이루어진 수술실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최신의료장비가 동원되었을지...

온갖 기성과 괴성, 기계적 파괴음으로 인체의 반응과 병반을 검진하는 M. R. I 검사대에만 오르면 나는 내 기억의 망막 가득히 죽음의 근접, 현란한 동그라미의 환각에 빠진다.
온갖 기성과 괴성, 기계적 파괴음으로 인체의 반응과 병반을 검진하는 M. R. I 검사대에만 오르면 필자는 내 기억의 망막 가득히 죽음의 근접, 현란한 동그라미의 환각에 빠진다.

저는 그 많은 의료인과 새로운 치료법과 의료장비를 다 경배(敬拜)하는 마음으로 보지만 단 한 가지 <M. R. I>는 그렇지 못 합니다. 이는 침상에 사람을 꽁꽁 묶어 좁은 통 속에 넣어놓고 숨을 쉬세요, 참으세요. 구령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 열차가 지나가거나 숯불에 올린 밥이 끓어 넘치거나 거대한 시멘트콘크리트 바닥에 날카롭고 무거운 쇳덩이가 긁히는 느낌, 폭격이라도 맞은 듯이 여러 가지 시끄러운 파괴 음과 소음이 길고지루하게 지속시켜 인간의 청력에 대한 최대한의 고문을 가해 그 내부적 반응을 보는 모양이지만 꽁꽁 묶여 검사를 받는 입장에서 스스로가 지느러미와 비늘이 털린 채로 요리사의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과 같다는 자괴감,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단지 소음에 얼마나 견디는지, 그것을 이기는가가 문제이지 내 자신의 감정이나 지성, 인품 따위는 철저히 무시되어 가끔 호흡조절을 못 했다고 호된 질책까지 받는 M. R. I검사를 무려 5년 동안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 받았으니 그 고통의 합과 누적된 스트레스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제가 죽어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1. 꽃가루 알레르기와 감기가 없는 세상
 2. 지루한 회의와 행사, 특히 인사말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위에
 3. 아무리 아파도 M. R. I검사가 없는 세상 하나를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성군 세종대왕이 궁내의 비빈과 무수리에게도 특히 친절한 분이었는지 그가 500년이 넘는 조선 왕조에 가장 많은 자녀와 아들(대군과 군)을 낳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 서른 명에 가까운 아들들과 그들이 낳은 군(君)들은 단지 왕족이라는 이유로 평소에는 극도로 몸조심을 하여 단 한마디라도 이상한 말을 하면 대역죄인으로 몰리는 긴장된 삶을 살면서 호학(好學)하는 주군 바람에 날마다 오전, 오후 두 번의 강(講)을 듣는데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 왕족들의 피로는 이루 말 할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쉰이 넘도록 뭐 특별히 이룬 것도 없이 밥만 축낸 어느 군(君)이 죽어가면서

“내 비록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만 내일 부터 강(講)이 없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구나.”

하고 눈을 감았답니다. 저 또한 그 이름 없는 왕족처럼 이제 더는 치료법도 없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종종 M. R. I검사를 받을 생각을 하면 여전히 소름이 끼칠 뿐입니다만 그것도 다 제가 현재에 살아있으니 호강에 받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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