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40)아, 냄새!

말년일기 제1241호(2021.2.9)

이득수 승인 2021.02.08 22:15 | 최종 수정 2021.02.10 00:22 의견 0
탈취제 페브리즈 광고의 한 장면

요즘 텔레비전의 광고에는 무슨 대세처럼 <아, 냄새!>를 부르짖는 광고가 무려 두 종류나 나오는데 하나는 별 지위나 개성도 없는 샐러리맨이 삼겹살을 구워 마늘을 얹고 그 위에 소주까지 마시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직원들이 마늘냄새에 기겁을 하며 <아, 냄새!>소리치며 <페브리즈>란 탈취제를 선전하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피부가 희고 몸매가 날씬한 현대적 똑순이 주부가 남편과 아이가 보는데서 침대와 가구에 누렇게 배인 얼룩을 제가하는 광고로 이 역시 
<아, 냄새!>와 <페브리즈>의 선전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냄새, 후각(嗅覺)>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등과 더불어 우리 몸의 환경에 대한 반응을 대표하는 주요 감각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보통 그리움을 표현할 때 <눈에 삼삼, 귀에 쟁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무엇보다 시각을 으뜸으로 쳤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각보다 어쩌면 청각에 더 의존하는 존재, 그 반응의 깊이나 넓이가 앞서며 눈이 밝기보다 귀가 트인 사람이라야 이 험한 세상에 남에 앞선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또 괜히 눈이 밝아 못 볼꼴을 보는 사람보다 느긋이 음악에 빠져 영혼의 바다를 유영하는 윤기 나는 삶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보통 냄새로 말하는 취각은 생존에 미치는 감각의 중요도에서 많이 쳐지지만 우리 인간에게 좀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건 그 냄새가 주로 이성 간에 영향을 미치는 페르몬을 풍기는 역할을 해 젊은이들을 냄새가 아닌 향기의 숲으로 끌어들여 그만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우리 인간이란 종(種)이 번영하는 절대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냄새라는 감각은 우리의 일상에서 주로 좀 부정적인 이미지로 즉 똥오줌의 냄새, 썩은 냄새, 쉰 냄새 등 향기의 반대방향으로 우리 인간의 감각을 괴롭히는 존재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독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이 음식을 가리다 못 해 예사로 토한다든지, 아주 흔한 꽃가루알레르기에 실신한 정도로 고생을 하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 아주 짧게 사랑에 열중하던 시절, 스쳐지나간 여인의 화장품냄새가 오후 내내 말초신경에 작용한다든지, 무뚝뚝하고 거친 경상도 사내의 목소리와 땀 냄새에 담긴 페르몬에 평소의 우아하고 도도한 서울 아가씨의 자세가 단숨에 허물어지는 멋쟁이 미인들도 없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 책상이 없어 엎드려 책을 읽는 바람에 사춘기가 오면서 콧속이 붓고 냄새를 잘 모르는 비후증이라는 병에 시달렸는데 장마가 긴 여름철 1천 페이지도 넘는 톨스토이의  <부활>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방바닥에 엎드려서 읽다 잠이 오면 베개처럼 베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책을 읽는 바람에 정상인보다 월등하게 냄새기능이 떨어져 아내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Chabacano, CC BY-SA 2.5]
1:후각 망울 2:승모 세포 3:뼈 4:후각 상피 5:토리 6:후각 감각 세포 [Chabacano, CC BY-SA 2.5]

그러나 크게 불편하거나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은 예를 들어 꽃향기나 밤이 익어가는 김의 냄새 같은 것은 시각이나 청각 어떤 정황 같은 것으로 충분히 인식이 가능하며 음식의 맛도 청각기능이 아닌 혀끝이나 잇몸의 기능으로 충분히 느끼고 간혹 자나가는 바람에서 풍기는 물(비)냄새나 자동차가 지나간 뒤 한참 뒤의 휘발유냄새도 느끼기에 별 불편을 못 느낍니다. 단 제가 직업적으로 향수나 술맛을 감별하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적응을 못 했겠지만 그 냄새기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냄새기능이 특별히 뛰어나 그 바람에 향수나 술맛 감정사가 되었다면 여러분의 후각은 얼마나 끔찍한 고문에 평생을 시달리겠습니다.

그렇다고 뭐 냄새도 잘 못 맡는 제 같은 사람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변에서 인식하는 냄새를 향기로 느끼는가, 그냥 평범한 삶의 냄새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도무지 못 견딜 악취로 생각할 건가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겠지요. 국민학교 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아란 슬로건이 있었는데 <평범한 후각에 싱싱한 인생> 등 우리 스스로 냄새가 곧 악취라는 잘못 된 선입관을 벗어나는 길만이 또 하나의 행복한 삶의 보장이 되겠지요.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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