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38)장터 할매 울리기③

말년일기 제1239호(2021.2.7)

이득수 승인 2021.02.06 20:43 | 최종 수정 2021.02.10 00:19 의견 0
 사진1. 아직도 아케이드가 설치 안 된 언양장터의 난전(20.7.2)
아직도 아케이드가 설치 안 된 언양장터의 난전.

"얼마 전 저는 해안시장에서 제 어릴 적 언양장터처럼 약간 물이 간 갈치와 가자미와 삼마의 값을 일일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꼬시라고 왜,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밀가루반죽을 돌돌 말아 기름에 튀긴 과자 말입니다. 그걸 발견하고 너무나 반가워 3000원어치를 샀지요.

그리고는 큰 횡재라도 한 듯 기쁜 나머지 잡채와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리어카에서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하고 1000원짜리 사과와 복숭아를 한 개씩 사서 상을 차리니 너무나 푸짐하고 흐뭇했습니다. 

누가 구청의 국장이나 되는 사람이 허가도 없이 비위생적인 데서 음식을 먹는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그게 뭐 대수입니까? 제가 나고 자란 분위기, 그런 음식냄새, 바람냄새가 느껴지고 어머니와 시집간 누님이 생각나는 자리에서 소박하게 술 한 잔 하고 가볍게 고향생각에 젖는 것을 말입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잘 한다!’라는 감탄이 튀어나오자 상인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지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거나 코를 팽 푸는 사람도 있었다.
“저 양반이 사람을 죽이는구만. 생긴 건 두리뭉실한 데 아예 사람의 오장육부를 뒤집어 애간장을 태우는구먼.”

누군가의 말에 와아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여러분, 오늘아침에 시장에 나오면서 다들 뜨리미 즉 떨이를 꿈꾸셨지요. 이 세상 모든 난전의 장사꾼들은 매일아침 떨이를 꿈꾸면서 눈을 뜰 것입니다. 그것이 옛날 우리어머니가 미꾸라지나 고구마줄기를 팔던 것처럼 생물을 팔면 그 절박함이 더 할 것입니다. 재래시장의 가장 큰 희망은 떨이이며 으뜸가는 꿈도 떨이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두 떨이, 아니 뜨리미 하십시오. 부자 되십시오!"

와아, 함성이 일어나면서 좌중이 발칵 뒤집다.

"여러분 매일매일 떨이하여 부자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사진2.. 언양재래시장의 제 아내 (19. 1.27) 
언양재래시장의 제 아내(왼쪽).

꾸뻑 절을 하며 단상을 물러나는데 박수는 꽤 오래 지속되었고 감사하다는 인사로 천장철회장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하자 덩달아 시의원, 구의원, 파출소장과 같은 소속인 후배 동장 두엇도 손을 내밀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했다.

이어 시장번영회의 간부들을 비롯한 사내들이 다시 악수를 하려고 줄을 서자 사회자는 다음차례인 시의원의 인사를 잠시 늦추었다. 앞치마를 걸친 아주머니들은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가고 할머니 몇은 나의 손을 만져보기도 했다. 

그중 한명에게 몇 년 전에 죽은 우리 큰 누님과 닮았다면서 무얼 파느냐고 물어보니 저쪽 편이라고 좌판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제 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따 갈 때 들리소. 내 물이 약간 간 갈치하고 까지매기하고 삼마이를 좀 줄께. 공짜로.”

그날 행사가 끝난 뒤 그는 천장철회장으로부터 융숭한 점심대접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듣기로 그 후로도 그의 이상한 축사는 오래오래 상인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역시 내신의 40년 공직생활 중 가장 대표적인 인사말을 한, 그저 생각만 하여도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떠오르는 그날을 저는 아직도 아니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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