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37)장터할매 울리기②
말년일기 제1238호(2021.2.6)
이득수
승인
2021.02.06 00:51 | 최종 수정 2021.02.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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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상인(商人)이라는 말의 상(商)자가 어디서 왔으며 무슨 말인지 그 정확한 뜻을 아십니까?
뭔가를 사고파는 장사라는 뜻의 이 상자는 남의 뜻을 헤아려 서로의 이해와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 있어 난상(爛商)토론이라는 말이 생겼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하찮고 값싼 물건이라도 그걸 사고파는 일은 두 사람의 입장과 이익이 맞아떨어져야 된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장사란 자기의 입장만 강조해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는 막장토론과는 반대가 되지요. 그러니까 장사 즉 협상이라는 말도 일방적인 이익추구의 설득과 반대가 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이 개념이 되지요.
이야기가 좀 어렵습니까. 그러나 상인이라는 말의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상인이라는 말은 원래 고대중국의 은(殷)나라의 수도인 상읍이 달기(達己)라는 미인에 빠져 정사를 그르친 주(紂)임금 때문에 함락되어 상읍에 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벼슬을 하지도 못 하고 농토도 빼앗겨 먹고살 길이 없자 지금의 몽고나 만주, 중동의 아주 먼 지역에 가서 귀한 물건을 사다 팔면서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한 데서 유래하였답니다.
권력도, 농토도,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재산인 몸뚱이 하나로 멀고 먼 길을 걸어 물건을 사오고 오래 기다리며 팔아서 겨우겨우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나마 신용이 없으면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신의를 목숨처럼 지켜 상나라사람이라면 아주 신용이 있는 장사꾼, 그래서 <상인(商人)>은 당연히 상나라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아무튼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시고 실천하시겠지만 장사란 모름지기 하나도 신용, 둘도 신용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이 현대화된 깨끗한 환경을 바탕으로, 오늘의 준공식을 계기로 한층 더 믿음이 가고 위생적이며 그 위에 늘 친절한 깨끗한 환경에서 정품과 정량의 상품을 파는 진정한 상인으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고려가 망한 후 송도사람들이 상업에 눈을 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삼상인 바로 송상(松商)으로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6.25사변 때 수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우리 부산의 중심지 이 동대신시장에도 그 송상들의 후손이나 정신이 면면히 흘러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바로 한국제일의 신용, 진정한 상인으로 거듭나실 것으로 기대하는 바입니다."
천모 번영회장이 박수를 치자 모두들 우레 같은 박수로 화답하고 휘익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인사말을 할 치안센터 지구대장과 시의원, 구의원도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공무원의 축사치고는 뭔가 좀 이상하지만 그런대로 분위기는 잘 잡힌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다 상인들의 반응이 좋으니 일단은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할머니들도 눈가에 물기가 걷히고 한층 차분해진 분위기였다. 나는 한 번 더 결정타를 날리기로 작심했다.
"여러분 저는 지금도 가끔 혼자 시장골목을 걸으며 옛날 생각을 합니다. 조금 시끄러워도 늘 활기차고 인정이 있고 사람냄새가 나는 재래시장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골목시장의 노란선이나 돌출물을 단속하는 방재안전과장을 지내면서 여러분이 제일 겁내는 도로단속 노란 차의 왕초였는데 여러분과 큰 마찰 없이 이렇게 만나게 되어 천만다행입니다. 앞으로 이 시장에는 노란차가 들이닥치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과 제가 다 같이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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