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58)숲에서 봄을 찾다
말년일기 제1259(2021.2.27)
이득수
승인
2021.02.26 17:42 | 최종 수정 2021.02.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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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초할배의 산책에 모처럼 할매도 동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겨울 유독 날씨도 추운데다 코로나19로 성당의 미사와 반모임, 청소년수련관에서 하는 물놀이, 아쿠아교실은 물론 부녀회가 주관인 경로당의 음식대접 같이 아내가 외출할 사회적 활동이 전면 봉쇄된 데다 언양 5일장마저 폐장되기가 일쑤라 도대체 아내의 외출이 성립이 되지 않는 바람에 이 바람도 드센 <명촌별서>에서 종일 할배와 마주보다 가끔은 언쟁도 벌리다 가끔씩 간식을 먹이며 마초와 한참씩 놀아주던 아내가 이제 날씨가 풀리니 모처럼 큰맘을 먹은 모양입니다.
“당신이 나와 같이 가주기만 하면 나는 그야말로 횡재지, 우선 힘들여 산에 올라갈 일도 없이 자동차로 들메의 숲으로 올라가 그윽한 솔밭 길도 걷고(솔밭이나 침엽수림이 병에 좋다고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친지가 한둘이 아님), 그리고 모처럼 우리 세 식구 외출도 하고...”
하는 말에 아내도 휘파람을 흥얼거리는 것이 많이 신이 난 모양입니다.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사실 구금생활과 비슷한 지난해를 보내면서 잠이 든 아내를 보면 몸매나 숨소리에 <우짜든동 내 아내가 좀 몸 가벼이 살면 좋겠다는> 마초할배의 바람과 반대쪽에 서는 것만 같은 생각이 자주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명촌리의 숲길 중에서 가장 솔숲이 조밀하고 솔바람이 맑은 <들메>라는 지명의 3거리임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옛날 등억리채석장에서 돌을 실어내던 명촌리임도의 한 가운데서 <새목등>이라는 명촌김씨네의 가족묘가 있는 포근한 언덕까지 한 1Km이상 펼쳐진 등산로로 첫째 소나무가 모두 100년 이상 되어 바람부터 그윽한 데다 소나무 사이로 뚫린 오솔길이 이지저리 비뚤비뚤하면서도 높고 낮은 몇 개의 언덕과 울퉁불퉁한 바닥마저도 갈비라고 부르는 노란 솔잎이 깔리고 사철 내내 때에 맞춰 꽃과 잎과 열매가 맺는 것은 물론 수백그루의 야생 돌 복숭아군락(群落)도 있고 다래 밭과 두릅 밭도 있어 무언가 챙기려는 자에게도 절대로 인색하지 않아 일반 산책객들이 바라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야, 이 숲에만 오면 나는 노란 갈비가 깔린 황금빛 카펫이 너무 좋아. 내가 무슨 영화제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맨날 말없는 짐승 마초사진만 찍다 모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내의 사진을 찍는다고 저도 나름 호사에 빠졌는데 마초는 마초대로 근 1년 만에 찾아온 제 관할에 옛날 자기가 뿌려놓은 영격표시 오줌냄새가 아직도 남았는지 검색해 새 표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40분을 걷다 유독 이 오솔길에만 비치는 노랗고 성급한 봄볕을 쪼이며 마초의 간식을 먹이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겨울 속의 봄을 찾아 심산에 들어온 하루, 오늘은 참으로 즐거운 산골생활의 하루였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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