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청에 근무하던 시절 관할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를 쉽사리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남자고등학생의 차전놀이 중 아주 특별한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속놀이의 일종인 차전놀이는 옛날 고을단위로 줄다리기 할 때처럼 수백 명의 장정이 붙어 짚과 새끼로 지름이 한 2미터쯤 되는 용머리를 틀고 그 위에 황야에 말을 달리고 싸우던 사두마차 전차(戰車)를 본 뜬 구조물을 올리고 서로가 상대전차의 기수를 먼저 쓰러뜨리는 놀이입니다.
기마전(騎馬戰)처럼 거의 모든 민속놀이가 중심부에 깃발을 잡은 주장과 그를 옹위하는 가마병 등이 주축이 되어 밀고 당기는 놀이지만 사실 참여자의 대부분은 행렬의 뒤를 받치고 전투 중에는 주변을 에워싸고 함성을 지르는 변변찮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무 장식도 없는 그냥 흰 바지저고리의 남학생하나가 무심히 끄떡끄떡 행렬을 따라가며 춤을 추는데 어쩌다 운동화 한 짝이 벗겨져 허리를 숙이고 집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바지가 반쯤 흘러내리면서 검정교복바지가 반쯤 드러나자 이번엔 다른 손 하나로 바지춤을 잡더니 그래도 행렬에서 탈락되지 않으려고 털거덕털거덕 어색한 춤을 추며 끝까지 따라가자 갑자기
“와아!”
함성과 함께 스탠드의 모든 눈길이 그 남학생으로 집중되어 운동장 한가운데 차전놀이 본 게임은 전황이 어떻고 어느 팀이 이기는지 관심도 없이 어설픈 남학생의 걸음새에 맞추어 모두
“잘 한다!”
“끝까지 뛰어!” 하고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어느 듯 그 학생은 한창 얼크러진 일행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어느 밤 갑자기 자기 좌표에서 이탈한 별똥별 하나가 꾸준히 제 고향을 향해 달린 끝에 마침내 제 별자리에 도달해 다시 거대한 우주의 질서를 다시 완성한 것입니다.
이미 30년도 더 전에 본 그 일을 요즘 제가 자주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지금 저는 건강하게 살아있는 상황도, 삼각한 병에 걸려 수직으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아닌 상태, 간과 폐는 물론 온몸과 전신의 뼈에 암세포가 전이 되어 이제 단 6개월도 살기 어렵다는 진단에도 좀체 잘 죽지 않고 다시 또 다른 수술이나 처방, 방사선을 쪼이거나 한대에 500만원이나 하는 주사를 맞으면서 정말 이젠 얼마 못 간다는 진단을 받아도 제 생명은 인간세계의 달력이나 시계로 부터 번번이 외면을 당하는지 죽지도 않고 살아남아 마침내 보건복지부의 통계적 완치 5년을 넘기고 다시 한 달을 넘겼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그간 수술 두 번, 방사선 한번, 약물 세 번, 주사 한 번등 무려 7번의 치료행위에 실패하고 이제 모든 치료를 포기해(더는 치료할 주사나 약이 없어) 현대의학의 범위 밖으로 벗어났지만 마지막에 먹은 항암제가 부작용이 심해 손발이 붓고 얼굴이 뜨고 잇몸이 내려앉고 밥을 못 먹을 지경에 의해 달리 방법도 없이 억지로 물에 밥을 말아 조금씩 먹고 500미터, 1킬로씩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장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투명한 정신력으로 글을 읽고 쓰면서 지냈는데 모든 약을 끊은 지 한 100일이 되는 지난 2월 중순 백병원암센터로 가자 혈액검사결과를 보던 담당의사가
“아, 혈액검사수치가 모두 정상에 가깝네요. 전에 지어준 진통제와 비상약을 복용하며 이대로 한 9주 더 지나 검사를 해 보든지...”
하고 말끝을 흐리는데 아내를 따라 나온 간호사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 지경에서도 자기발로 걸어서 오시다니요.”
“예에?”
“모든 치료가 끝나고 한 3개월이 지나면 대부분의 환자가 다시 오지 못 하거나 간혹 휠체어를 타고와도 허리를 못 세울 정도라 병원에서는 고통을 줄이려고 호스피스병원을 소개하는 것이 순서인데 말입니다...”
여전히 멀쩡한 얼굴로 걸어서 온 사람이 다 있으니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점심을 먹자며 같이 모인 두 누님에게 이야기를 하자 지난 번 이제 더는 치료할 주사나 약이 없어 이젠 언제 자는 잠결에 죽어 <밤새 안녕>이 될지 모른다는 말에도 그간 하도 여러 번 죽는다, 안 죽는다에 시달린 누님들은
“뭐 괜찮겠지. 이적지도 살았는데.” 하더니 이번에는
“동생 니는 밍(命)이 길어 오래 산단다. 식복과 처복 두 개가 있어 잘 죽지도 않고.”
셋째 누님이 무려 70년 전 제가 갓난애 때 어머니가 보고 온 점괘를 들먹이고 끝이 났습니다.
요즘 와서 사람이 필요이상 오래 산다는 것, 죽는다, 산다의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별 의미 없이 그럭저럭 조금씩 더 산다는 것이 과연 행운이냐, 아니면 죽음보다 못한 하나의 형벌과 같은 것인가의 자책감에 빠집니다. 고향친구나 동창회, 또 동료나 동호회의 회원들은
“득수 절마는 아직도 안 죽었다면서?”
“모르지. 그러다가 우리보다 더 오래 살지...”
한다는데 그러고 보니 죽고 못 산다는 고추친구 나의 절친 김성해라는 친구, 말기 암으로 불안에 떨며 죽음을 기다리는 저를 위해 통닭을 사들고 병문안을 화 한나절 고스톱을 치고 마음을 풀어주고 간 그 친구가 췌장암이 발생해 8개월 만에 죽은 지 어느 듯 1년 그의 첫 제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쩌다 사고를 당한 우주선이 제 궤도를 벗어나 돌아오지 못하고 저 어둡고 광활한 우주미아(迷兒)가 되어 영원히 방황을 계속한다고 하더니 상식적으로 죽어야 할 나이에 죽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건강하거나 행복하지도 못 하고 간병하는 아내만 끝없이 힘들게 하면서 이렇게 혼자 동떨어진 저의 존재, 제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지 오늘처럼 날씨가 흐려 기분이 처지고 한 때 잠잠하던 통증들까지 다시 잠을 깨어 아우성을 치는 날 저는 다시 한 번 삶에 대하여 살아있음에 대하여 심한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60년 전의 보릿고개의 문설주를 잡고 조현병에 걸린 창백한 청년, 제 형님이 지금의 에디 피아프가 부르는 샹송 <파리의 지붕 밑>과는 멜로디와 박자, 리듬이 많이 다르지만 종일 반복해서 부르던 끝없이 불안한 프랑스 소녀의 심정,
나는 어디로 갈까?
나는 어떻게 할까?
바람 나 파리로 도망 나온 미친 기집애
의 허무한 가락을 떠올리며 눈을 감아버립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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