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간암발생이 2016. 1. 31일이고 수술이 2. 1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암5년을 카운트 타운하는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저는 무슨 <땜>이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의 여기저기가 아팠지만 특히 늘 속이 더부룩하게 소화가 안 되다 간혹 오른쪽 옆구리가 쑤신다든지 무엇보다 기분이 장쾌하거나 깊이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잘 없었습니다.
그런 하루 아내와 둘이 하나는 침대에 하나는 거실바닥에 앉아 무심히 24번 뉴스를 보는데 하얗게 눈이 덮인 대지와 차가운 바람 끝으로 노오란 등불이 비치는 조그만 오두막과 방안의 대여섯 명 아이들이 오골오골한 정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아, 우리 아들과 헤어진지가 너무 오래 되었구나? 3모녀만 귀국했던 아이들이 떠난지도 벌써 또 몇 달이 되고...'
제 아들이 좀 침착한 편이라서 그런지 우리 부자는 같이 만나도 간혹 역사나 문화, 독서에 관한 토의는 좀 할 지라도 일상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병문제가 나와도
“현대의학도 많이 발전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삶의 의지가 강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정도인데 이번에 더는 약이나 주사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도
“우리 아버지는 잘 견뎌내실 거예요. 그래도 제가 얼른 가서 뵈어야 할 텐데요.” 정도로 감정을 낭비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 애가 처음 인도로 갈 때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몇 번이라도 올 수 있으니 피차 병든 아비와의 별리를 별로 심각하게 않았고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들이랑 다녀가면 전에 서울에 살며 오갈 때와 별 다름없이 대했고 어서 제 병세가 좋아져 지상의 모든 인종중 가장 영혼의 깊이가 깊은 민족 인도 땅의 하얀 궁전 타지마할과 삶과 죽음 영혼이 교차하는 갠지스강을 구경하는 날만 은근히 기다렸든데 작년 코로나19가 발생하여 국가간의 항공로가 거의 다 막히면서 두 아이와 어미가 방학중에 잠깐 다녀간 뒤 다시 인도 가족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인도에 날씨은 그리 많이 춥지 않다며?”
“아마 그렇겠지. 그러나 설산(雪山)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산맥 바로 아래 있으니 아무래도...”
하면서 그 날따라 그냥 착하고 순한 아들, 무뚝뚝할 정도로 대화는 없지만 제 알아서 아비를 챙길 일은 미리 다 챙기는 아들이 보고 싶어 눈물이 필 돌았지만
‘여보, 오늘 같은 날은 왜 아들이 자꾸 보고 싶을까?’
하려다 아내로부터 울보할배란 소리가 듣기 심어 잠자코 있는데 카톡. 휴대폰이 울리더니
어제 학교 오리엔테이션 갔다가 신나는 마음으로 유적지 나들이도 갔어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쿠트브 미나르>입니다. 인도최고의 승전기념탑입니다. 76미터라고 하네요.
하는 며느리의 카톡과 사진 다섯 장이 왔습니다. 안 그대도 <님은 먼 곳에>라는 신파조의 노래처럼 아들이 부고 싶어 눈물이 나는 판에 저 먼 인도에서 다시 또 더 멀어진 쿠트브 미나르인지, 미나린지...
그렇지요.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아들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고. 요즘은 외국으로 보내는 것이 대세인데 이제 그 외국에서 또 더 먼 곳으로 떠나는 가족들, 설마 무슨 일 있을라고 금방 주재원생활3년이 끝나고 돌아오겠지 하고 웃으며 헤어진 우리 부자는 이제 근무명령이나 무얼 다 떠나서 우선 배행기가 안 떠서 오고갈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입살이 보살>이라고 처음 인도주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병든 아비 때문에 망설이는 아들을 제가 사나이 앞길을 부모가 막는 법이 아니라며 웃으며 보냈는데 말입니다.
혼자 먹먹한 가슴을 달래는데 날마다 비슷한 뉴스에 식상한 아내는 진작 잠이 들어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오늘 점심은 돼지국밥이든 뭔가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켄터키치킨이라도 한 마리 별도로 더 사줄까 생각했습니다. 요즘처럼 그 모든 사람이 다 <님은 먼 곳에>가 된 마당에 그래도 유일하게 내 곁을 지키는 사람 <내 사랑 내 곁에>이니까요.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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