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89) 『멕시코에서 온 편지』

말년일기 제1290호(2021.3.30)

이득수 승인 2021.03.28 23:33 | 최종 수정 2021.03.31 08:49 의견 0

이 소설은 여태 제가 읽은 모든 책에 가장 서글프고 한심한 내용이 담긴 책입니다. 제가 군에도 입대하기전 대학도 휴학하고 신춘문예도 낙방하고 첫사랑도 손에 잘 잡히지 않던 시절 저보다 더 심한 절망과 술에 젖은 윤정이란 동료와 술이 취해 남포동을 휘젓다 아마 보수동 헌책방 어디에서 구한 책일 것입니다. 읽은 지 50년도 더 된 그 끔찍한 책에 대한 정보를 구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도 책 제목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참으로 기괴하고 안타까운 책을 저를 비롯한 몇이 읽어보고는 기가 차서 던져버린 후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국 뉴욕 보르드웨이에는 금발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운 처녀가 하나 있었는데 누군가 걸음을 빨래 해 그녀의 앞모습, 얼굴을 보면 실망을 하다 못해 토악질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저도 어릴 때 서울에 가면 대단히 유명한 정치인(유석(維石)의 딸이 너무 특별해 하루에 세 번을 놀라는데 한 번은 그 뒷모습이 너무 예뻐서 이고 다음은 앞에서 보면 그 얼굴이 박박 얽은 곰보라서 그렇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아버지가 너무나 유명한 정치인이라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러나 이 뉴욕의 처녀는 얼굴이 단순한 곰보가 아니라 여기저기 포도송이 같은 혹이 주렁주렁 매달려 도저히 쳐다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변은 이 못 생긴 여성의 두뇌가 너무 명석해 학교성적은 도무지 적수가 없고 뉴욕의 모든 직장, 은행이나, 증권회사, 학교나 신문사에 시험을 치는 족족 무조건 수석인데 하필이면 이 못난이 천재가 그 중에서도 유명한 신문사를 지망해 울며 겨자 먹기로 뽑자 회사에서는 우선 이 쳐다보기 괴로운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 멕시코의 멕시코시티로 파견근무를 보내는데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그곳으로 떠나기를 희망했고.

특파원으로서 그녀는 과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서 대부분 가난하고 문맹인 히스패닉(백인과 아메리카원주민의 혼혈아)의 가난한 나라 마약과 살인, 혁명의 불온의 기운이 가득한 멕시코시티, 거대한 도시를 에워 산 거대한 황야와 인류의 어느 집단과 종족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찬란한 천문학과 철학의 정신세계, 18세기 서양의 돼지치기 코르테스가 침입했을 때 아주 정교한 수상도시로 세워졌던 그들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유적과 잉카의 위대한 정신력과 문화의 향기를 세상에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문장으로 뉴욕의 신무사로 보내 신문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지만 본사에서 그 누구도 이름을 담지 않고 찾지도 않는 이름(여기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네버콜로 부르기로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어릴 때 예사로 혹부리영감이 동화를 부모나 교사로 부터 듣고 자기 자녀들에게도 혹부리영감이 달고 다니기에도 무겁지만 음식을 먹기나 말하기도 힘들고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징그럽다고 등을 돌리는 그 혹을 떼기 위해 도깨비의 소굴로 침입했다 들켜 오히려 혹이 하나 더 붙은 <혹 떼러 갔다가 혹 때인 이야기>를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 했을 텐데 만약 그 혹부리영감이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였다면 우리는 얼마나 슬프고 불편했을지...

[픽사베이]
[픽사베이]

여기에서 우리의 고독한 천재(저에게 네버콜이란 이름을 받은 아가씨)는 불행하게도 누욕본사로 기가 찬 현지 르포 몇 편을 보내고 죽는데 그건 뒷모습이 예뻐 달려간 어느 히스패닉불한당이 잰걸음으로 달려가 얼굴을 보는 순가 너무나 기분이 나빠 즉시 권총을 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너무나 영리하고 착하지만 단지 얼굴이 흉하다고 인간다운 대접을 못 받고 죽어간 천재, 어쩌면 천사일지도 모르는 영혼의 고독하고 비참한 말년을 보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멕시코에서 편지가 오지 않자 뉴욕의 신문사에서는 서둘러 연재를 마치고 네버콜이라는 이름과 그 기괴한 이름을 잊으려 했을 것이고.

여러분, 우리는 모두 신체적이든 성격적이든 정신적이든 아니면 가문의 전통, 또 시대나 출생지를 잘못 만난 사람들(북한이나 아프리카의 빈민국 남수단)처럼 치명적 약점 한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장점보다는 약점이 훨씬 많은 부족하고 불편한 존재임을 망각하고 자기 눈에 조금만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면 바로 멕시코로 파견나간 아가씨처럼 경멸합니다. 간혹 티브이에서 원숭이의 사회, 서로 털을 골라주고 안아주는 모습을 보면 원래 인간은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고독한 사회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어느 새 빈부와 귀천, 또 잘 생기고 못 생긴 외모를 따져  잘 생기고 못 생긴 외모를 따져 잘생긴 사람이 못 생긴 사람을 기피해 여러 계층이 생기고 계층갈등이 생기고 거기에 밀려난 사람은 멕시코에서 르포를 보내는 천재처럼 버림받고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진면목에 대해 스스로가 이웃이나 주변,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겸손한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면 영원한 고독, 혼자라는 소외감을 애써 떨치는 위선의 삶을 사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인 것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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