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90) 세상만사 새옹지마1

말년일기 제1291호(2021.3.31)

이득수 승인 2021.03.29 14:30 | 최종 수정 2021.04.02 08:35 의견 0

지난 1월 16일 오후였습니다. 설날을 얼마두지 않은 겨울날씨 속으로 아내와 저는 침구와 입원도구를 싣고 개금의 백병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간 개복수술을 비롯한 수술 2번, 방사선치료 1회. 약물치료 2회를 하며 길게는 1년, 짧게는 5-6개월을 버티던 약과 치료가 아무 성과가 없어(그러니까 이젠 꼼짝 없이 죽는다는 소문이 6번이나 나며 한 4년을 버틴 뒤에) 이번에는 의료보험적용이 안 되어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옵띠브>라는 고액주사를 맞기 위해 하루 전에 미리 입원을 하러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4년을 버티느라 수술비와 검사비, 약 값 등 수천만 원의 돈을 썼음에도 이제부터 한 달에 3백만 원의 약값이 드는 주사를 맞아야 되는데 연간 4천만 원이나 드는 그 치료가  꼭 효과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그나마 주사가 효과가 없으면 한 6개월 뒤에 마지막으로 매우 고가의 경구복용 함암약이 있고 그마저 효과가 없으면 현대의학으로는 어떤 치료법도 남아있지 않아 그냥 곱다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병, 병원비, 자녀들, 소소한 살림살이의 문제 등 마음이 매우 착잡한 아내를 위해 자동차가 통도사 톨게이트를 지나 내원사 가까이 지나갈 때

“여보, 기분이 좀 그렇지?” “괜찮아.”
“당신 좋아하는 노사연의 <바램>틀어줄까?”
“아니.”

하는 순간 문득 자동차에 덜컹 뭐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우리가 탄 SUV의 거대한 동체가 사정없이 뱅뱅 돌더니 옆에 있는 가드레일과 부딪히려는 순간

“아이구야!”

급히 엔진전원을 꺼 자동차를 멎게 한 아내가 어리둥절한 나를 보고

“당신 지금 안 나오고 뭐하요? 뒤차가 덮치면 즉사하게요.”

하는 소리에 엉금엉금 기어 나와 도로 위를 살펴보니 45도 각도로 급정거를 한 우리 자동차 뒤에 금방 고속도로순찰차가 막아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저 앞에 새까만 승용차하나가 완전히 전복되어 운전석에서 검정 정장을 한 여자 한 사람이 기어 나오는데 

 “아이구, 조심 좀 안 하고? 내가 병원에 입원하러 가다가 길 위에서 죽을 뻔 했잖아?” 하니
 “죄송합니다.” 멋쩍게 인사를 하는 여성운전자가 아직 서른 안쪽의 앳된 처녀였습니다.

순간 고속도로 순찰차, 견인차, 보험회사의 두 곳의 차와 사람들이 도착해 둘러싸는 바람에 북새통이 되는데

“저, 어르신 입원하러 가시는 길이라고요?”
“예. 개금 백병원에” “어디가 안 좋아서?” “간암 말기요.”

부산백병원 [홈페이지]

하는 순간 이내 도착한 앰뷸런스에 저와 아내를 타게 하고 짐을 실은 뒤 백병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고속도로 주행 중에 이렇게 큰 사고가 나고 탑승자 아무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것이.”

모두들 이리저리 자동차와 사람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아무 걱정 마십시오. 앰뷸런스로 금방 백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사고처리는 도로교통법과 보험약관에 의해 저희 경찰관과 보험사에서 깨끗이 처리하고 자동차는 각각 정비공장에 입고(入庫)되어 수리를 받고 그간의 교통비가 보험으로 따로 지금 되겠습니다.”

하며 우리는 백병원으로 수송되었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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