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93) 지하생활자의 수기 

말년일기 제1294호(2021.4.3)

이득수 승인 2021.04.01 14:13 | 최종 수정 2021.05.01 21:28 의견 0

어느 날 오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아침밥을 먹고 자리에 누운 자세로 아래로부터 물집이 잡힌 발바닥의 치료를 받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르지만 눈을 뜨니 방에는 노랗고 따뜻한 겨울 해 빛이 남향집의 유리창과 소파를 거실을 지나 텔레비전 화면 앞까지 스며들었고 그 빛다발 속에서 아주 미세한 먼지가 마치 자신이 살아있는 것처럼 부침(浮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깔끔한 걸 좋아하는 아내가 하루 몇 번씩이나 말끔히 닦아도 그렇게 먼지가 나는 것은 아마도 창세기에 인류의 조상 아담을 흙으로 빚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몸을 깨끗이 씻고 방을 닦고 심지어 마음까지 고요히 다스려도 사람이 앉은 자리엔 반드시 흙부스러기(먼지)가 푸석거린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새벽에 된서리가 내려도 오전 10시면 노란 햇볕이 온기와 빛남과 희망을 한꺼번에 싣고 도착하는 이 따뜻한 방에 기거하는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하다 문득 전류에 감전이 된 듯 어떤 생각에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햇빛이 안 드는 너무나도 음습한 지하실에서  제대로 된 입성이나 침구, 특히 저 차가운 땅 모스크바의 추위를 막아줄 외투도 없이 지하실에서 늘 굶주리며 비탄에 젖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외롭고 서글프고 비참하기만 한 나날을 보내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쓴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때 입대를 얼마 남기지 않고 대학도 휴학을 하고 몹시 그리워하는 여인으로부터 소식도 끊어진 상태의 가장 혹독한 절망에 젖어 늘 술에 절여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술친구와 자갈치쪽의 술집으로 갔다가 어찌어찌 보수동 책방골목에 들어 이 책 저 책 헌책을 들추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쓴 듯한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놓지 못해 연산동 3공구 콧구멍만한 철거민 주택이 곁방에서 단번에 쭉 읽으면서 몸서리를 쳤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한역판 표지

사실 저는 시골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조그만 학교도서실에 있는 소설을 모조리 읽다 어느 해 여름방학엔 너무 지루해 아마도 이 세상에 완독을 한 사람은 작가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는 침울한 러시아 장편소설들 톨스토이의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와 <백치>를 비롯해 고골리의 <외투>와 <어머니> 심지어 미국에서 제일 지루하다는 나디니엘 호손의 <주홍글씨>까지 끈질기게 읽어냈는데 이번의 <지하생할자의 수기>를 읽으면서는 몇 번이나 제 자신이 작중인물(이제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남)이 된 것처럼 참으로 우울하고 갑갑한 현실에 절규하며 책을 덮었다가는 문득 무슨 마약에다로 중독된 듯 다시 책을 잡고 읽었습니다.

<지하생할자>의 수기는 모스크바의 햇볕도 안 드는 한 빈민굴의 지하실에 웅크리고 사는 말단공무원, 당시 농노(農奴)제를 기본으로 한 봉건왕국에서 왕족도 아니고 지주계급도 아니고 하다 못해 제복에 금단추가 번쩍이는 근위병이나 군인이 아니고는 도무지 맥을 못 추는 사회에서 농노생활을 하는 부모 밑에 자라며 어영부영 글을 배워 도시의 뒷골목에서 말단 공무원이 되었지만 부모의 도움이 없어 제대로 된 거처도 없이 겨우 하루하루 식비에도 못 치는 최말단 공무원으로 눈을 뜨면 절망하고 수프나 우유도 없는 메마른 빵에도 절망하며 출근길에도 우울하고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에는 더 우울한 사내, 단벌 외투와 구두가 낡아 구멍이 뚫려도 4철을 견뎌야 하는 짐승보다도 못 한 환경에 글을 배워 책을 읽은 바람에 자의식만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젊은이의 절망이 시베리아의 입구 황막한 툰드라처럼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단 한 번 4급서기관이자 작은 관공서의 기관장인 자신의 상관으로부터 저녁초대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상관도 말만 고급공무원이지 겨우 햇빛과 바람이나 피할 작은 2층집에 일곱 자녀를 비롯한 아홉 식구가 버글거리며 살아가고 그 와중에 사춘기가 된 두 딸이 구멍 난 외투를 바꿀 생각을 못하는 자신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껴 철없는 자매끼리 질투를 하고 갈등을 하는 이상한 사태가 발생하지만 이 온몸이 어둠으로 이루어진 청년은 그마저 무시하고 자기의 지하실에 은둔, 자신에게 찾아온 처음이자 마지막인 외부와의 접속, 상관의 딸과 결혼기회를 차단하고 다시 끝없는 우울과 좌절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필하던 젊은 시절에 썼는데 당시 그는 사회적으로는 소설가지만 실지로는 알콜중독자에 노름장이로 하루하루 빵을 구하기도 힘들 정도의 형편에서 볕이 안 드는 한 지하실에서 사과상자 같은 책상을 놓고 작품을 써 원고료가 나오면 방세와 술값과 마약 값을 받으러 빚쟁이가 줄을 서 기다렸지만 어느 새 그는 뒷골목으로 도망쳐 독한 술을 마시고 노름방으로 합세했다고 합니다. 

이는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서전과 같은데 평생을 우울하게 살다간 그는 작품 속의 젊은이가 얼어 죽거나 자살을 했다거나 마음을 고쳐먹고 4등서기관의 딸과 결혼했다는 기록도 없이 흐지부지 끝을 맺고 맙니다. 우리 인간의 삶 자체가 그렇게 어둡고 절망적이며 도무지 다시 햇빛 아래로 돌아갈 수가 없는 연옥임을 천재작가 자신이 누구보다 더 절실히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비록 몸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안온한 생활을 영위하며 깔끔하고 맘씨 좋은 아내의 수발을 받으며 그런 대로 잘 지내는 제가 왜 갑자기 그 어두운 기억을 떠올렸는지 생각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삶에서 가식적인 면(재산, 학력, 직장과 사회관계, 가족사랑)을 빼고 단지 메마른 시간과 외로운 정신세계만 두고 생각하면 굳이 저처럼 병든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하나 지하생활자와 다름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어차피 죽어야 종결이 되는 삶 자체도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있는 순간순간 매번 새로운 꿈과 욕망에 함몰되는 삶, 바로 우리네 삶이 그렇게 암담하고 어두운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 때 마침 채마밭에서 돌아오던 아내가 얼굴 표정이 왜 그리 심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순간 저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이젠 동화를 써보고 싶어 공상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나이 되도록 산 것만 해도 참으로 감사한 일,  남은 생애동안은 철부지 새가 되어 앞으로는 신화(神話)와 동화(童話)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