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91) 세상만사 새옹지마2

말년일기 제1292호(2021.4.1)

이득수 승인 2021.03.30 16:18 | 최종 수정 2021.04.02 08:29 의견 0

앰뷸런스운전자의 말로 고속도로순찰대 모니터에 우리가 통도사 앞을 지날 무렵 뒤 쪽의 새까만 승용차 하나가 졸음운전으로 이리 저리 비틀거리며 사정없이 앞으로 달려 몇몇 차량은 간신히 피하는 등 아수라장이 되는데 마침내 우리 자동차를 뒤차가 추돌하는 순간 우리를 거의 따라잡은 순찰차가 뒤를 차단해 2차 충돌을 면해 우리 두 사람이 죽음을 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내와 전의 등에 진땀이 흘렀지만

“여보,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거지.”
“그럼.”

부부가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렇게 한 20분간 달려 자동차가 백양터널로 진입하는데

“그렇지. 그러니까 꿈에...”

지난해 아버님 산소를 성묘하고 절하는 필자

아내의 꿈에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한복차림으로 이 서방인 저를 찾는데 아내가 이서방은 바쁘다고 극구 만류해 돌려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수속을 마치고 한숨을 돌린 뒤 아직 배식이 안 되어 구내식당에서 둘이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내의 휴대폰이 울리더니

“아. 네. 예. 그렇지요. 아. 네.”

꽤 긴 통화가 이어지더니

“여보, 어서 병실에 가서 이빨 닦고 세수 좀 하세요. 곧 손님이 와요.” “손님, 누가?”
“아까 교통사고 낸 사람.”
“그 사람 안 다쳤는가?”
“젊어서 그런지 멀쩡하대.”

하고 병실에서 세수와 양치가 끝나기 무섭게 또 전화가 오더니 

“여보, 당신 휠체어 타고 정문현관으로 내려가자.”
“당신, 안 피로해. 중환자란 사람이 너무 생생한 모습을 보니는 것도 그렇고.”

해서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내리기 무섭게

“아이구, 어르신과 어머님,”

사고차량기사가 검은 정장차림으로 인사를 하는데 갸날프고 앳된 표정이 가수 이선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개그맨 안영미를 약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업무가 끝나 텅빈 대기실에 셋이 앉는데 

“죄송합니다.” 베지 밀 한 박스와 함께 명함을 내미는데 하필이면 보험감독원이었습니다. 자동차사고의 보험처리가 적정한지 인원이나 물적 피해는 정확한지 감독을 하는 관련조합에 근무하는데 마침 서울에 출장을 갔다가 부산에 제일 가까운 언양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그만 긴장이 풀려 졸음운전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기적이기도 하지만 묘한 인연이기도 하네. 또 이렇게 당일치기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와 사과하는 것도 그렇고.”
“예. 아무튼 대한민국 보험법에 있는 모든 조치와 혜택을 다 받도록 제가 챙기겠습니다.”

하더니 제가 입원해 있는 동안 두어 번 면회를 왔습니다.

그렇게 퇴원을 해서 명촌별서로 돌아오자 어떻게 주소를 알아 이튿날 또 찾아와

“아이구, 작가 할아버지셨구나? 눈가에 어딘가 비법한 저력이 비치더니...”

이미 모녀간처럼 친숙해진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내가 커피를 끓이고 은미양(가명, 운전자)가 세가 사온 과일을 깎아 간식을 먹으며

“자, 이것도 다 인연인데 내가 쓴 책이나 한번 읽어 봐.”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를 건네주자

“아이구, 펜스에 시화를 보는 것만 해도 좋은 추억인데 이렇게 책까지 주시다니.”

하면서 작가서명까지 받아갔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