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86) 아직 나는 아니야

말년일기 제1287호(2021.3.27)

이득수 승인 2021.03.26 15:24 | 최종 수정 2021.03.28 00:33 의견 0

사람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원리, 즉 자신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젊을 때는 아직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조금도 않다 40대 후반이나 50대에 접어들어 남의 부음을 듣거나 장례식장에 문병을 가면 아, 죽음이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구나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문상주(聞喪酒) 한 잔에 취하면 그만 슬그머니 그 심각한 생각에서 벗어나 또래들 끼리 화투나 카드에 몰입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 후반의 건강검진에 강제로 잡혀가는 날에는 그간 자신이 지은 죄, 밤새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독히도 아내를 괴롭힌 전과를 반성하며 조바심 속에 검사결과를 기다리지만 대부분 당뇨나 혈압, 결석 같은 성인병은 물론 갑생샘이니 전립선의 심상찮은 진단을 받기도 하지만 당일로 상당히 진행된 간암이나 대장암, 췌장암의 진단을 받고 바로 병원에 입원하여 끝끝내 병원 밖의 푸른 하늘을 못 보고 죽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평소에 몸을 조금만 아끼고 운동을 하고 비타민제라도 좀 꾸준히 복용하면 그렇게 까지 심하게 망가지지 않을 걸, 경상도 사내의 호연지가가 선을 넘어 패가망신의 자살골을 넣고 말기도 합니다.

그처럼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그건 남의 문제지 자신은 아직 죽음은 나와 가마득히 멀며 결코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종합병원대기실의 수천 명이나 되는 환자와 그 가족들도 설마 나는 아니겠지, 내 가족은 아니겠지 하고 애써 병을 부인하는 마음이 꼭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니는 백병원을 예로 들면 일반병동의 환자들은 8층 암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을 흘낏흘낏 바라보며

'그래 나는 아직 아니다, 저 암 병동의 노인이 사형수라면 일반병동의 나는 아직 미결수로 아무 죄가 없는 무죄일 꺼야.'

하고 단정을 짓지만 경우에 따라서 그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겁을 내던 암 병동환자보다 많이 빠르게 영안실에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또 암도 나름대로 단계가 있어 암이 생긴 조직의 병반의 간단히 잘라내기만 하면 되는 수술환자를 1단계로 보고 마치 발가락사이의 티눈을 잘라내듯 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진 3, 4기 말기환자는 당장 수술을 하자니 그렇고 우선 몸을 좀 만들어보자고 기초치료를 하다 죽어나가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국립암센터 전경
국립암센터 전경

또 1차 수술에 성공해 나가는 사람은 이제 제 몸안에 암세포가 없으니 면역증강제 같은 처방을 받아 직접적인 치료나 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발방지를 위한 섭생만 하는데 다시 암세포가 재발하거나 전이하면 그 때부터는 처음 암이 발생하여 수술한 <원발과>에서 전이된 장기를 관리하는 부서, 폐에 전이되면 흉부외과에 보내고 위나 장에 전이 되면 소화기 내과로 보내 2차 수술을 하는데 그 경과가 좋으면 아직 일반환자(예컨대 아직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가 되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비로소 암환자가 되어 이제 혈액종양과라는 암센터로 보내지는데 그 암센터의 입구가 마치 저승의 입구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 누구든 암의 상태가 심해 그 암센터로 가면 간혹 방사선치료나 약물, 주사치료로 일시적으로 몸이 좀 나나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조금씩 또는 눈에 띠게 병세가 악화되어 마침내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호스피스>병원이나 병동 또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보내져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 호스피스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도 자신보다 조금 더 상태가 심한 환자를 보며 (나는 아직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정말 큰일이고 금방 죽을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고 여전히 자신이 죽음은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게 참 가깝게 잘 지내는 사촌처형이 한분 있는데 마침 저와 동갑이라 <갑장 처형>, <갑장 제부>로 늘 같이 외식을 하고 형제처럼 지내며 우리아들의 결혼식이나 제 정년퇴임식이 너무 기분이 좋아 꼭 새 한복을 입고 나타날 정도였고 제가 시골에 집을 짓자 너무 기뻐하며 50년 만에 아궁이에 불을 떼어보는 일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는데 지병인 췌장암이 갑자기 악화되어 새벽녘에 우리 집에서 병원으로 바로 후송 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와 함께 문병을 갔더니

“갑장 왔어요?”

하고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자기 옆 병상의 환자를 가리키며 손을 오른쪽 귀에서 가슴아래로 가로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이제 큰일 났는데 자신은 아직 아니라는 것이었겠지요. 평생 참 침착한 성격인데 당시 가톨릭으로 개종해 마지막 성경필사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던 시절인대 당시 유일한 위안이 옆의 환자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지만 그나마 나는 아니다 하는 그 손톱만큼의 안심 같은 것인 모양이었습니다.

그 처형이 돌아가신지 벌써 5년, 엊그제 저도 더는 치료법도 없어 진통제를 처방받으러 암센터에서 기다리는데 얼마나 다급한 환자인지 제 순서에 휠체어를 탄 바짝 마른 여자환자 한 사람이 새치기로 의사선생님을 뵙는데 

 “아무래도 힘들겠어요. 일단 응급실로 가서 안정부터 취하든지...”

금방 휠체어가 돌아 나오는데 전신의 살이 빠져 30킬로그램도 안 나갈 것 같은 환자의 새까만 얼굴의 이목구비가 너무 맑고 눈빛이 너무나 착해 보여 순간적으로 제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리고 휠체어들 미는 40대 후반의 남편도 체격이나 인상이 참으로 좋은데 너무 긴장해 눈도 옳게 못 뜨고...

그날 진료를 마치고 진통제를 처방해 병원 앞 식당에 추어탕을 먹으면서

“여자가 눈빛이 참 선량하던데 나이가 너무 아까워.”
“맞아. 나이로 보아 이제 사춘기가 된 아이가 한둘 있을 것 같은데 혼자 남을 남편은 얼마나 힘이 들까?”
 “그래. 저들의 미혼시절 그 예쁜 여자는 치맛자락을 날리고 면도자국이 새파란 사내는 기타를 매고 홍대 앞이나 신촌거리를 걸으면 얼마나 멋이 있었을까?”

하다 이야기가 그만 뚝 끊기면서 아내가 새삼 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불에 덴 듯 일어나 저는 계산을 하고 화장실을 갔다 오니 아내가 제 가방까지 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연산동의 딸네 집에 도착하니 테이블 뒤에 제 약봉지가 떨어져 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남의 안타까움에 빠져 제 약봉지까지 잊어버린 또 하나의 안타까움, 결국 제 약은 택배로 시골집으로 보내주기로 하였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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