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90) 이토록 애를 쓰는데 하늘인들 나를 어찌할 수 있으리오

허섭 승인 2021.03.30 16:32 | 최종 수정 2021.04.02 08:34 의견 0
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79.2×138.2), 리움미술관

090 - 이토록 애를 쓰는데 하늘인들 나를 어찌할 수 있으리오

하늘이 내게 복을 박하게 내리더라도
나는 내 덕을 두터이 하여 이를 맞을 것이며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케 하여 이를 도울 것이며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한다면
나는 내 도를 깨우쳐 이를 형통케 할 것이니

하늘인들 또한 나를 어찌 할 수 있겠는가?

  • 薄我以福(박아이복) : 나에게 복을 박하게 줌.
  • 迓之(아지) : 이를 맞이함.  之는 앞에 나온 말을 가리키는 대명사이다.
  • 勞我以形(노아이형) : 나의 몸을 수고롭게 함.  形은 ‘육신’ 을 말함. 
  • 阨我以遇(액아이우) : 나의 처지를 곤궁하게 함.  
  •  阨(액)은 ‘좁을 애, 막힐 액’ 두 가지 음으로 읽는데 여기서는 ‘막힐 액’ 으로 읽는다. 厄은 ‘재앙 액’.
  •  遇는 ‘경우(境遇)’, 즉 처한 상황을 말함.
  • 逸(일) : ‘달아나다, 제멋대로 하다, 숨다, 높다, 숨다, 뛰어나다, 편안하다’ 등의 다양한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긍정적 의미의 ‘안일(安逸)’ 의 뜻으로 쓰였다.  
  • 天且(천차) : 하늘조차.  且는 ‘또 차’ 인데 앞의 명사에 붙어 ‘~조차, ~마저’ 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 奈何(내하) : 어찌 ~하랴, 어찌 ~할 수 있겠는가.  
090 나빙(羅聘 청 1733~1799) 정경상(丁敬像) 108.1+60.7 절강성박물관
나빙(羅聘, 청, 1733~1799) - 정경상(丁敬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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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고자장(告子章) 하(下)에

하늘이 장차 큰 일을 맡기려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힘줄과 뼈를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어지럽게 하나니,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 참을성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토록 하기 위함이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천장강대임어시인야) 必先苦其心志(필선고기심지) 勞其筋骨(노기근골) 餓其體膚(아기체부) 空乏其身(공핍기신)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 所以動心忍性(소이동심인성) 增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 전집 제77장 참조

* 로마서 5장 3-4절
우리가 환난(患難)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忍耐)를, 인내는 연단(鍊鍛)을, 연단은 소망(所望)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야고보서 1장 2-4절 12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신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우공겸(于孔兼)이 <제사(題辭)> 중에

이 장은 저자(著者) 홍자성(洪自誠)의 친구로 서문(序文)을 부탁받았던 우공겸(于孔兼)이 <제사(題辭)> 에서 그를 두고 말한 대목이다. 평생 한 이름 모를 선비로 청빈한 삶을 살았던 홍자성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는 구절이 바로 이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우공겸의 <제사> 에 인용한 문장에는‘亨吾道以通之’의 ‘亨(형통할 형)’이 ‘高(높을 고)’ 로 되어 있는데, 이는 홍자성의 초고(草藁)를 우공겸이 잘못 읽은 것으로 짐작된다. 초서(草書)로 쓰면 亨과 高가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寒徹骨 撲鼻香(한철골박비향) -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이겨내어야

塵勞逈脫事非常(진노형탈사비상)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
緊把繩頭做一場(긴파승두주일장) 승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 
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 逈 : 遠(멀 원)과 같은 뜻. 
  • 繩頭 : 끈·새끼·밧줄 따위의 끄트머리. 우리말로는 ‘벼리(綱)’ 에 해당함.   벼리 :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한다.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爭 : 여기서는 문장부사인 ‘어찌’ 라는 뜻으로 쓰인 것임.

▶황벽 희운 

황벽 희운(黃檗希運) 스님은 불문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이 게송 하나로 인연하여 알려지게 된다. 그러다가 사집(四集) 과정에 들어 도서(都序)를 배우면서 배휴(裵休, 790~870) 거사(居士)를 알게 되고 아울러 황벽 스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또한 『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능록(宛陵錄)』을 만나면서 황벽 스님의 정신과 불교사에서의 위치를 가늠하게 된다. 다시 임제(臨濟) 스님을 알면서 황벽 스님의 실체가 확연해짐을 느낀다. 이렇듯 불교에 입문했어도 어떤 한 분의 성자(聖子)를 이해해 가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가 않다. 

어떤 이는 황벽 스님을 서술할 때 이렇게 시작했다.  “여기 황벽이 있다. 선문(禪門)의 위대한 고존숙(古尊宿), 중국 선불교의 사상적 수호자 황벽이 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자유인, 선승, 중국 선불교의 위대한 반항자 임제 의현(臨濟義玄)의 스승 황벽 희운이 여기 있다.”  멋이 있는 표현이며 황벽 스님과 임제 스님을 약간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서 인용하였다. 

세상에 살면서 그 흔한 남들이 다 하는 일도 성공을 거두려면 피나는 노력과 남들이 모르는 고된 나날들이 있어야 한다. 밤잠을 못 이루는 깊은 고민과 가슴조이는 수많은 날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 

이른 봄 짙은 매화 향기가 그냥 우리들의 코를 찌르는 줄 아는가. 따뜻한 겨울날 멋모르고 꽃망울을 부풀리다가 어느새 찾아온 대한 소한의 추위에 혼이 나고는 다시는 꽃이고 뭐고 피우지 않을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입춘이 가까워지면 꽃을 피우고 싶은 매화의 본능이 그냥 있지를 못하고 또 한 번의 기지개를 켜며 꽃망울을 부풀린다. 그런데 또다시 몰아닥친 입춘 추위에 쌩 혼쭐이 빠진다. 이렇게 피려고 하면 추위가 찾아오고 또 추위가 와서 뼛속 깊숙이까지 매서운 냉기가 배어든다. 그러기에 매화 향기는 남다르다. 다른 꽃들의 향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향기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아주 진하다. 정말 코를 찌른다. 이러한 향기는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어 냈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解脫)의 경지에 오르는 일에 있어서이겠는가. 인생을 포기하고 생명을 던져서 공부를 지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람으로 살 생각을 말아야 한다. 죽은 몸이라고 여기고 매진(邁進)하고 또 매진해야 한다. 적당하게 정해진 시간이나 지키고 망상(妄想)과 혼침(昏沈)으로 번갈아가며 그 생활을 즐기는 정도라면 이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자신이 하는 공부의 실마리를 굳게 붙잡고 한바탕 밀어붙여야 한다. 참선(參禪)이든 간경(看經)이든 염불(念佛)이든 주문(呪文)이든 자신이 하는 공부의 과제를 단단히 잡고 나아가야 한다. 죽음이 올 때까지다. 죽으면 쉴지언정 숨을 쉬는 동안 쉴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이러한 각오가 없이는 공부인(工夫人)이라고 할 수 없다. - 과연 불교사에 우뚝 솟은 큰 산, 황벽 선사다운 가르침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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