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3 : 봄날은 간다 - 김소월, 당신 땜에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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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6 14:53 | 최종 수정 2021.05.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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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소설가지망생이었는데 마흔이 넘어 엉뚱한 루트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게 다 운명이라 싶어 어떻게든 시를 좀 써보려고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이 책 저 책을 읽어보다
텄다. 이 좁아터진 이 나라에서 벌써 근 100년 전에 평안도의 김소월이 이 좁은 땅의 설움과 한을 구구절절 다 읊어버렸으니...
하고 한숨을 푹푹 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입만 열면 시가 되고 시만 읽으면 눈물이 돋게 하는 온몸에 시심이 가득한 천재 김소월이 조선 땅 시정(詩情) 8할을 써버리고 나머지 2할을 북간도의 윤동주와 강진땅의 김영랑이, 또 경주의 박목월과 고창의 서정주가 야금야금 먹어가고 로맨티스트 박인환에 모더니즘의 김광균과 통영의 순애보 유치환까지 한 조각씩 떼어가고 나니 저 같은 초심자가 써나갈 시정은 작은 부스러기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70이 다 된 저는 아직도 제대로 된 시 한 편이 없는데 그의 입에서 풀려나오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은 명품시가 되는 것인지, 참으로 경이롭고도 원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를 보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불과 네 줄 겨우 40, 50자의 짧은 글에 참으로 많은 정경과 이야기가 선연히 눈에 떠오르며 독자들을 강변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이를 나훈아의 <강촌에 살고 싶네>라는 노래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는
꽃피고 새가 우는 논밭에 묻혀서
씨 뿌려 가꾸면서 땀을 흘리며
냇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조용히 살고 파라
강촌에 살고 싶네.
구구절절 꿈을 꾸는 가사와 비교하면 특별히 무얼 하겠다는 것도 없이 그냥 금모래 빛과 갈잎의 노래가 있는 강변에 살자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겠다는 남진의 <님과 함께>가 나무로 만든 탁자나 장롱이라면 <엄마야, 누나야>는 수정(水晶)으로 만든 조각 같은 이 느낌 말입니다.
굳이 미당이나 윤동주의 시와 비교를 한다면 그 들의 시가 나름대로 빛과 향을 가진 매실이나 자두 같은 자그마한 과일이라면 김소월의 시는 입에 깨무는 순간 어떤 형용할 수 없는 맛과 향과 감동이 밀려오는 잘 익은 사과, 그냥 행복하고 뿌듯한 그런 천상(天上)의 무엇인 것입니다.
벌써 봄이 한참 이운 4월초, 백두대간과 한라산, 울릉도를 번져간 <진달래꽃>은 지금쯤 LA나 시드니, 또 남아프리카나 서유럽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가슴에도 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김소월이 살던 땅에 살아 행복하고 김소월이 살던 땅에 살아 서러운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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