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9 : 봄날은 간다 - 산중별미 다래순

이득수 승인 2021.04.12 11:47 | 최종 수정 2021.05.01 21:22 의견 0
다래순

산채 중의 으뜸이 무엇일까요? 보통 향기가 깊고 은은한 곤달비(곰취)를 으뜸으로 치고 참나물이나 고사리, 도라지나 더덕을 꼽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다래순이 제일입니다.

다래순은 원래 강원도나 경북지방의 깊은 산골에서 나는 나물로 산간벽지의 간이역에서 펼쳐지는 반짝시장의 효자상품으로 그 진미를 아는 사람들끼리 사고파는 나물로서 산골할머니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기도 합니다.

어릴 때 우리 마을에선 산골인 큰 산 밑에서 시집온 우리엄마 <명촌댁>이 유일하게 다래순맛을 알았고요.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 같은 책을 읽어보면 일제 때 숯장이나 화전꾼으로 위장해 살아가는 사상가나 독립운동가 같은 수상한 산꾼들이 즐겨먹던 별미이기도 했습니다.

이이들을 다 키워 내보낸 한 15년 전에 아내와 서해안을 일주하며 지리산 온천에 묵었는데 그 때는 꽤 큰돈인 두당 2만 원짜리 산채정식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찬으로 나온 것이 울릉도 취나물을 빼면 시금치와 중국산도라지, 미역줄기무침에 황태구이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불러 산채정식에 왜 <묵나물>이 없냐고 물으니 40대의 젊은 주인은 <묵나물>이 뭐냐고 저에게 도로 물어왔습니다.

<묵나물>은 취나물, 미역나물, 삿갓대가리, 단풍취, 젓가락나물, 까막발, 비비추 등 여남은 가지 산나물을 큰 솥에 삶아말려 메주처럼 동그랗게 뭉쳐 볏짚으로 묶어 매달아 한겨울을 넘겨 구정이 지나고 햇나물이 나오기 전에 먹는 아주 귀한 나물입니다.

볏짚 때문에 건조와 발효가 동시에 이루어져 그 깊고 오묘한 맛이 일품이며 특히 도라지, 고사리나물과 함께 고추장,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정도지요.

그런데 나무꾼, 나물꾼, 사냥꾼처럼 산에 들어가는 사람이 점점 줄어 소나무, 참나무가 고목으로 변해가면서 남을 의지해 올라가는 다래덩굴도 가마득한 하늘로 올라가 서서 딸 수 있는 다래순은 점점 귀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묵은 과수원의 넘어진 나무에 얽힌 다래순의 노다지를 하나 만나 단번에 한 해 분의 다래순을 확보했습니다.

냉장고가 발달해서인지 제 아내는 그 어려운 묵나물을 삶지 않고 그냥 가볍게 데쳐 냉동실에 넣었다 해동시켜 먹는데 연두 빛이 그대로 살아 언제 먹어도 맛이 좋습니다. 뭐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그냥 깔끔하고 은은한 숲속의 향기...

명촌별서를 방문하시면 누구든지 맛 볼 수가 있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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