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워낙 숲이 짙어서 양지쪽에서 자라는 고사리가 봄에 미처 나오지 못하고 한길이나 되는 잡초 틈에서 5, 6월에 뒤늦게 나온 고사리가 너무 억세 따지도 않아 작은 나무처럼 크게 자라 말라버립니다. 그래도 시장이나 마트에 고사리가 넘치는 것은 중국산도 수입되지만 남해바닷가에 농사처럼 고사리를 많이들 재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육신 성삼문의 시조에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늘 하난 건가
아무리 푸새에 건들 뉘 땅에 낫거니
하는 구절이 있어 고사리를 자못 비장한 절의의 나물로 압니다만 옛날 초근목피로 흉년을 넘기던 시절 최후의 먹을거리로서 그마저 먹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이야기지요. 거기다 고사리를 장복하면 남자들에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에 중국산 고사리를 삶은 사람은 얼마 못가 죽는다는 소문까지 고사리의 이미지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사리가 없는 제사나물이나 고사리가 들어가지 않는 비빔밥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맛이 있기도 하지만 많이들 먹은 친숙한 식품이란 뜻이지요.
아까 시조에 고사리채취가 채미(採薇)라고 나오지만 고사리와 사촌격인 고치미를 통틀어 미궐(薇蕨)이라 부르는데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미(薇)는 고치미, 궐(蕨)은 고사리를 칭합니다. 그래서 중국산 고사리의 포장지에는 궐채(蕨菜)라고 적혀 있답니다.
10년쯤 전 일요일이었습니다. 산불이 난 남창의 야산에 고사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내외가 따라나선 일이 있었습니다. 농촌 출신 나무꾼인 제가 얼굴이 숯 검댕이 가 되도록 제법 많이 꺾은 동안 도시에서 자란 아내는 한 여남은 개를 꺾어왔지만 꽤나 재미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날 밤 곤히 잠든 저를 아내가 깨우더니
“여보, 천장에서 고사리가 돋아나고 있어. 내일 또 가면 안 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구청의 문화관광과장으로 한창 축제준비에 바쁜 제가가 들은 척도 안했지만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고사리가 왔다 간다한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목요일 날 제가 하루 연가를 내고 아내대신 아이를 볼 아이어미도 회사에 월차를 내어 두 사람의 인건비만 해도 20만 원은 날아간 셈인데 하루 종일 불난 야산을 헤며 고사리 몇 줌을 꺾어 남창역 앞에서 선지국밥에 반주까지 하고 돌아오니 교통비까지 근 30만 원이 들어간 셈입니다. 그런데 고사리는 시장에서 사면 한 3000원이면 족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고사리에 미혹(迷惑)된 아내 때문에 봄만 되면 야산을 헤맸는데 손녀가 자라면서 아내의 관절이 안 좋아져 한 5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양쪽 무릎을 수술해 조금씩 걸을 수 있는데다 마침 제 산책로 양봉장 옆의 풀밭을 벌치는 할아버지가 풀을 베는 바람에 고사리가 소복하게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고사리중독에 걸린 아내의 소원을 풀어주자고 데리고 갔습니다.
손가락만한 고사리가 빼곡하게 돋아난 걸 보고 “신이시여!”와 “하느님아버지!”를 연발하며 고사리를 꺾기에 여념이 없는 아내가 보기 좋아 저는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아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사리나 채취하다 아주 크고 살찐 놈은 아내가 손맛을 보라고 양보했습니다. 어느새 평소에 따던 양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비닐봉지가득 고사리를 채우고 돌아오며
“당신 기분 좋아?”
“아주 나이스야! 당신이 이렇게 곰 살 맞고 능력 있는 남잔 줄 몰랐어.”
바로 두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조금만 젊었다면 큰일이라도 날판인데
“여보, 벌!”
하면서 머리를 감싼 아내가 질겁해
“어디?”
하면 찾아보아도 왱왱거리는 소리만 들려
“귀를 막아! 귀안에 들어가면 큰일 나.”
하는 순간
“아이 따가워!”
아내가 아우성을 질렀습니다. 그 때서야 머리 밑에 침을 쏜 벌 한마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잠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에이, 문디같은 영감탱이!”
모처럼의 호의가 적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 잠을 깬 아내가
“여보, 비가 왔으니 고사리가 많이 올라왔을 거야.”
“고사리는 둘째 치고 당신 벌 쏘인 자리는 어때?”
“머리 밑이 부었어. 그래도 견딜 만해.”
“그럼 봉침(蜂針)을 맞은 셈 쳐. 당신 머리 아픈 증세도 좋아질 거야.”
하고 잠을 청했는데 날이 새자 벌에 쏘이지 않으려고 비닐랩까지 쓰고 당장 가보자고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온 탓인지 하루 만에 또 고사리대박이 났습니다. 바야흐로 마초할매의 전성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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